“국가보안법보다 더 무서운 게 있죠. 그건 세법이에요. 있는 놈한테 높은 세금을 부과하고 안 내는 사람은 감옥에 보내면 돼요. 그렇게 혁명을 완성할 수 있어요.”
엄상익 변호사
자식들은 국가에 땅을 바치겠다고 했다. 정부는 현물은 받지 않겠다고 했다. 자식들은 그러면 정부가 이미 공원으로 사용하는 그 땅을 사라고 했다. 정부는 그 땅을 사지 않겠다고 거절했다. 자식들은 그 땅을 팔기 위해 내놓았다. 그다음은 어마어마한 양도소득세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에게 아버지의 땅은 저주였다.
법망은 작은 땅을 가진 사람을 서서히 질식시켰다. 한 가난한 여인이 품팔이로 번 돈으로 지방도시에 손바닥만 한 땅을 샀다. 집 한 채 제대로 지을 수 없는 좁은 땅이었다. 그녀는 자식만은 자기 같은 가난을 절대 겪지 않기를 소망했다. 그녀가 죽자 정부는 그 땅의 가격을 높여놓은 시가로 산정해 반가량을 상속세로 부과했다.
세금을 내기 위해 자식은 그 땅을 팔았다. 땅을 팔자마자 다시 고액의 양도소득세가 부과됐다. 그 아들은 어머니의 피와 땀인 땅을 빼앗긴 게 살점이라도 뜯긴 듯 아팠다. 땅을 가진 계급의 재산권은 거의 무력화 됐다. 산을 가진 사람들도 규제에 묶여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유럽이나 미국을 가보면 집들은 산 위에 있다. 그리고 평지는 다운타운이라고 해서 거기에 가게나 음식점들이 있다. 그렇게 자연 속에서 인간들이 조화를 이루며 어우러져 살게 돼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산의 효용은 조금 과장하면 산수화의 배경 이외에는 의미가 없을 정도다.
세금의 고통은 정도를 넘어선 것 같다. 엊그제 한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는 길거리 리어카에서 산 싸구려 등산 조끼를 입고 값싼 운동화를 사서 신으면서 근면과 검소로 돈을 모은 친구였다. 그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10년 전에 딸에게 돈을 얼마간 주었어. 그런데 세무서에서 이제 통보가 왔어. 증여세 신고를 하지 않았으니까 매년 10%의 이자와 가산세 20%까지 내야 한다는 거야. 딸에게 준 돈보다 더 뜯어갔어. 이런 망할 놈의 나라가 있나? 나 더 이상 여기서 살기 싫어.”
평생 사업을 하던 노인이 소득세를 내지 않았다고 징역형을 선고받고 사업이 망한 걸 봤다. 사람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원래 세금은 오리도 모르는 사이에 털이 다 뽑히듯 그렇게 걷어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그러나 촛불혁명 정부는 세금을 무자비하게 뜯는 극단의 정치성향을 보이고 있다. 따뜻한 피가 흐르지 않는 세무서와 검찰의 오만에 대해서도 시민의 분노가 임계점에 도달했다. 세금에 고통받는 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떠난다.
말레이시아 장기비자 신청이 급속히 늘고 미국 이민 설명회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법관을 지낸 선배 변호사는 이미 대한민국은 사유재산권이 보장되는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라고 하고 있다. 오래전 한 정치인이 세금으로 가진 자를 숙청하는 혁명을 할 수 있다고 한 말이 현실로 돌아온 걸 나는 실감했다.
친구인 한 재벌 회장은 내게 “나는 공공의 적이야”라고 자조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어느 날 국회의원에게 간 특활비가 여성에게 줄 고급핸드백을 사는 선물로 사용되었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국민의 세금을 특활비라는 명목으로 빼돌려 도둑질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회적 담론과 이념으로 가장했던 촛불정권 핵심 인물의 반칙과 위선이 청문회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얼마 전 온유한 선비 같은 고교선배가 일부러 내게 전화를 했다.
“광화문으로 나가, 이제 저항할 때가 됐어.”
거리가 정치 전쟁터로 변했다. 사람들이 거리에 파도같이 넘치고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그들도 국민이다.
엄상익 변호사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