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개혁 ‘공수처 설치’ 여야 대충돌…여권, 윤석열 사퇴 압박 기류
사의를 표명한 조국 전 장관이 14일 오후 경기도 정부과천청사를 나서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그동안 정치권 안팎에선 여권의 사법 개혁 드라이브를 ‘조국 퇴로’의 물꼬를 트는 사전작업으로 인식했다. 실제 조 전 장관도 10월 14일 사법 개혁안 발표 직후 전격 사퇴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0월 29일을 패스트트랙 처리의 분기점으로 정하고 본회의 상정을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 복수의 여권 관계자들은 사법 개혁 속도전에 대해 “11월 전 조국 정국을 정리한다는 의미였다”고 말했다. 이른바 ‘조국 11월 퇴진론’이다.
조국 퇴진을 재촉한 것은 급락한 문 대통령 지지도였다. 문 대통령 지지도가 심리적 마지노선인 40%선을 위협받자, 조 전 장관은 10월 석국 열차에서 중도 하차했다. 조 전 장관이 사퇴했던 당일 리얼미터는 YTN 의뢰로 지난 7∼8일과 10∼11일 조사(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에서 문 대통령 지지도는 취임 후 최저치인 41.4%까지 하락했다. 더불어민주당(35.3%)과 자유한국당(34.4%)은 최소 격차인 0.9%포인트 차로 좁혀졌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조 전 장관이 더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밝혔다.
조 전 장관 사퇴 직전 당·정·청이 분주히 움직였던 정황이 포착됐다. 이낙연 총리는 10월 8일 오후 청와대를 찾았다. 이날 오전 국무회의가 열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총리 청와대 방문은 긴박한 사안을 논의하기 위한 것이란 추측에 힘이 실렸다. 특히 이 총리는 하루 전인 10월 7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권노갑·정대철 전 의원 등 동교동계 정치 원로 14명과 만찬을 했다. 일왕 즉위식(10월 22∼24일)에 참석하는 이 총리의 방일 이슈 이외에 조국 진퇴 문제가 화두로 올라왔다. 동교동계 정치원로의 71%(10명)는 ‘조국 사퇴’에 찬성했다. 나머지 29%(4명)만이 ‘조국 지지’ 의사를 밝혔다. 이 총리는 당시 별다른 말 없이 “잘 들었습니다”라고만 답했다.
청와대는 10월 초부터 긴박하게 움직였다. 민정수석실은 당과 별도로 사회 원로를 비롯한 각계각층 민심 동향을 파악했다. 이 과정에서 조 전 장관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문 대통령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사이 국정을 뒷받침했던 지지도마저 무너지면서 정면 돌파만 고집하던 문 대통령도 사실상 당·정의 여론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여권 전반에 퍼진 ‘조국 불가론’이 사의 결심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9월 26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교육 사회 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답변하는 조국 법무부 장관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조 전 장관이 청와대에 사의 표명을 전달한 시점은 10월 13일 고위 당·정·청 협의회 직후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가족을 지키기 위한 고민이 매우 컸던 것 같다”며 “청와대와 상의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조 전 장관 사퇴 직후 부인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뇌종양·뇌경색 진단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조 전 장관의 사의 표명 직후 문 대통령과 독대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10월 둘째 주 주말 사이, 문 대통령과 조 전 장관, 김조원 청와대 민정수석이 만나 출구전략을 모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국 사퇴 후폭풍’은 여야의 약한 고리인 패스트트랙을 덮쳤다. 패스트트랙 두 축은 ‘사법개혁안’과 선거제 개편을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다. 사법 개혁안 뇌관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공수처를 콕 집어 “장기집권사령부”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포스트 조국 정국에서 거대 양당이 또다시 충돌하는 모양새다. 민주당은 10월 29일 본회의 상정과 함께 사법개혁 카운트다운에 불을 댕겼다.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상정일(4월 29일)을 기준으로 180일이 지나는 시점부터 가능하다는 논리다. 반면 한국당은 사개특위 연장 없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체계·자구 심사 90일을 보장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고 맞서고 있다.
패스트트랙 연대에 나섰던 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도 마찬가지다. 조국 사퇴 이후 민주당은 ‘10월 말 공수처법 처리’에 방점을 찍었다. 하지만 바른미래당을 비롯한 소수 정당은 ‘선 선거법 처리’로 맞섰다.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지난 4월 패스트트랙 공조 당시 ‘선 선거법·후 공수처법’ 처리에 합의했다. 캐스팅보트를 쥔 바른미래당의 입장이 강경해 패스트트랙 연대도 흔들리고 있다. 이들이 ‘선 선거법·후 공수처법’ 처리를 재차 합의해도 문제는 남는다. 민주당 내 연동형 비례대표제 반대파가 적지 않아서다. 지역구 공중분해 위기에 처한 지역구 인사들이 이해찬 지도부에 선거법 처리 반대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국 사퇴로 윤석열 검찰총장 거취도 시험대에 올렸다. 윤 총장은 조국 대전을 거치면서 살아있는 권력에 칼을 겨누는 ‘강골 칼잡이’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하지만 그만큼 정치적 부담도 커졌다. 조 전 장관 퇴진 전에도 석국 열차의 동반 퇴진 얘기가 끊이지 않았다. 여권이 조국 엄호 부담을 던 만큼, 조만간 윤 총장에 대한 잠금장치를 해제하고 본격적으로 사퇴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은 10월 16일 예정에 없던 법무부 김오수 차관과 이성윤 검찰국장을 청와대로 불러 “검찰 개혁이 시급하다”며 “10월 내로 마무리하라”고 지시했다. 조 전 장관 공백 기간 문 대통령이 검찰 개혁을 직접 챙기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조국 일가에 대한 수사 결과를 내놔야 하는 윤 총장으로선 문 대통령의 존재 자체가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대통령의 메시지를 알지 않겠느냐”라며 사실상 윤 총장 결단을 촉구했다.
때마침 법무부 산하 법무·검찰개혁위원회에 윤 총장 장모의 잔고증명서 위조 의혹 수사를 촉구하는 진정서가 접수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윤 총장 역시 전방위 위기에 휩싸인 셈이다. 여권 일각에서 “윤 총장도 결단 시기만 남았다”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검찰은 윤 총장 사퇴설에 대해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검찰총장 임기제(1988년) 도입 후 윤 총장을 제외한 21명의 검찰 수장 중 8명만이 임기를 채웠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