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면이 살아있는 강렬한 캐릭터로 밋밋한 스토리에 포인트…장르적 한계는 아쉬워
영화 ‘신의 한 수: 귀수편’ 스틸컷.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다만 이처럼 도에서 모까지 거기서 거기인 이야기더라도 양념만 잘 갖췄다면 관객들의 입맛을 돋우는 것까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신의 한 수: 귀수편’은 그 양념을 인상적인 캐릭터로 버무려 그저 그럴 수 있을 밥상에 그럴 듯한 풍미를 더했다. 완벽하다고는 말할 수 없어도 실망스럽지는 않다.
2014년 개봉한 ‘신의 한 수’의 프리퀄 ‘신의 한 수: 귀수편’은 전작에서 언급됐던 ‘귀수’(권상우 분)라는 인물의 과거사를 다룬다. 바둑으로 스승과 가족, 모든 것을 잃은 귀수가 세상을 향한 복수를 계획하며 냉혹한 내기 바둑판으로 뛰어들게 되는 일대기를 담았다.
앞서 전작이 바둑과 범죄액션의 만남이라는 신선한 조합으로 눈길을 끌었던 가운데, 이번 작품은 전작에서 하나의 ‘떡밥’처럼 여겨졌던 바둑 고수 귀수의 과거편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다. 특히 귀수 역을 맡은 배우 권상우의 오랜만의 ‘액션물’ 복귀도 기대감을 높이는 기폭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실제로 극중 골목길, 화장실, 주물공장으로 넓어지는 ‘싸움판’에 맞춰 폭발하는 권상우의 액션은 결코 관객들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다. 대사가 거의 없는 귀수의 캐릭터에 맞춰 ‘신의 한 수: 귀수편’에서의 액션은 불필요한 대사나 욕설 없이 거친 호흡만으로도 충분한 긴장과 카타르시스를 전달한다.
영화 ‘신의 한 수: 귀수편’ 스틸컷.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29일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점에서 열린 ‘신의 한 수: 귀수편’ 언론배급시사회에 참석한 권상우는 이에 대해 “귀수는 대사가 많지 않기 때문에 각 신마다 존재감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평이해 보이면 어쩌나 하는 고민을 했다”며 “촬영장에서 고민하면서 표정이나 감정선을 혼자 자기 최면을 걸어 연기하려고 노력했다. 잘 표현됐는지는 관객 분들이 평가해주실 것”이라고 연기의 후일담을 밝혔다.
그의 말대로, 복수만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는 귀수의 절제된 감정은 입이 아닌 다른 곳에서 터져 나온다. 꼭 필요한 말을 할 뿐인 귀수의 과묵한 캐릭터성에 동화된 그의 감정선은 떨리는 속눈썹이나 턱근육, 그리고 물기 어린 눈동자로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특히 중반부에 이르러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에 흔들리고 있는 그의 내적 고뇌를 눈빛 하나 만으로 표현하는 신은 권상우가 단순히 액션에만 특화된 배우가 아니라는 사실을 완벽하게 입증하고 있다.
9일 오후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영화 ‘신의 한 수: 귀수편’ 언론시사회에서 권상우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고성준 기자
‘범죄액션 오락 영화’의 범죄액션 분야를 권상우가 책임지고 있다면, 오락 부분은 가히 ‘김희원의 재발견’이다. 귀수와 함께 전국을 돌아다니며 ‘판’을 짜는 똥 선생 역의 김희원은 이 영화에서 코믹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자칫 너무 무겁거나, 너무 가벼운 싸구려 19금 액션으로 흐를 우려가 있는 영화의 중심에 서서 흐려지는 관객의 시선을 잡는 것 역시 김희원의 ‘똥 선생’이다.
영화 ‘아저씨’에서 만석, 드라마 ‘미생’에서 박 과장 등 주로 악역을 맡으면서 강렬한 카리스마로 관객들에게 잊히려야 잊히지 않는 마스크를 각인시켜온 그다. 그런 김희원의 예상외로 독보적인 귀여운 모습은 이 영화의 또 다른 관람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시사회에 참석한 김희원은 연기에 대해 “영화 캐릭터 전부 다 만화를 찢고 나온 캐릭터고, 내용도 스타일리시하고 하드하다”라며 “제가 너무 코믹하게 가면 분위기를 흐트러뜨릴 것 같았고, 같이 진지하기만 하면 존재감이 없을 것 같았다”라며 연기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오래 연기 생활을 했지만 자신의 연기에 믿음을 갖지 못할 정도로 흔들렸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다. 배우의 고민만큼 캐릭터에게도 무게감이 실린 셈이다.
9일 오후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영화 ‘신의 한 수: 귀수편’ 언론시사회에서 배우 권상우 김희원 김성균 허성태 우도환 원현준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고성준 기자
이들과 함께 하는 캐릭터의 면면도 강렬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내기 바둑으로 악명 높은 ‘부산 잡초’(허성태 분), 귀수를 바둑의 길로 이끈 스승 ‘허일도’(김성균 분), 바둑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고 귀수를 쫓는 ‘외톨이’(우도환 분), 수는 물론 상대방의 과거까지 꿰뚫어 보는 ‘장성무당’(원현준 분) 등은 주역들에 밀리지 않는 아우라로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특히 각 캐릭터의 등장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색감과 질감, 공간적 배경도 이 영화의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다만 이처럼 생생히 살아있는 남성 캐릭터와 확연히 대비될 정도로 여성 캐릭터의 활용이 촌스러운 것이 아쉽다. 이제까지의 범죄 액션 오락 영화가 으레 그렇듯 별 다른 고민 없이 구습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가는 모양새다. 없느니만 못한 캐릭터를 구색 갖추기, 또는 각성과 복수라는 테마의 채도를 더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만으로 넣어 비판을 자초할 필요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한편 영화 ‘신의 한 수: 귀수 편’은 바둑고수 ‘귀수’(권상우 분)가 냉혹한 내기바둑판으로 뛰어들어 전국을 돌아다니며 ‘귀신 같이 바둑을 두는 자’들과 한 판 대결을 펼치는 일대기를 담았다. 눈을 뗄 수 없는 권상우의 ‘바디’ 액션 사이에서 정과 동을 가르며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바둑’ 액션도 놓칠 수 없는 관전 포인트. 106분, 15세 이상 관람가. 11월 7일 개봉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