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배서 신진서는 커제, 박정환은 타오신란 꺾고 결승서 만나…신 ‘9연패 사슬’ 끊어낼지 관심
신진서(오른쪽)가 중국랭킹 1위 커제를 누르고 LG배 결승에 진출했다.
2019년 10월은 세계바둑대회가 많았다. 단체전은 제21회 농심신라면배 1차전(1국부터 4국)이 중국 베이징에서 벌어졌고, 제6회 오카게배가 일본 미에현에서 열렸다. 제1회 편강배 한중국수초청전도 중국 웨이하이시에서 개막해 이창호, 서봉수, 녜웨이핑, 마샤오춘 등 바둑계 전설들이 4:4로 맞대결했다.
개인전은 제4회 몽백합배가 64강부터 16강전까지 3회전이 중국기원에서 치러졌고, 제24회 LG배 8강과 4강전이 한국 강릉에서 열렸다. 한국은 한중국수초청전과 오카게배에서 우승했지만, 메이저 대회인 몽백합배에서 16강 전원 탈락, 농심배 1차전에서 두 명이 무너지며 중국세에 눌렸다. 지난 9월 삼성화재배 악몽(8강 전원탈락)까지 겹쳐 웃지 못 할 상황이었다.
히어로는 막판에 등장한다. 역시 신진서와 박정환이다. 10월 30일, LG배 4강에서 신진서가 커제를 꺾고 결승에 올랐고, 박정환도 중국에 다크호스 타오신란에게 대역전승을 거둬 한국우승을 확정했다. LG배는 지난 3년 중국 기사에게 우승트로피를 내줬다. 삼성화재배와 몽백합배에서 주춤했던 한국바둑은 LG배를 탈환하며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LG배는 결승에서 자국 기사 대결이 유난히 많았다. 1회 대회 이창호-유창혁을 시작으로 이창호-이세돌이 두 번, 유창혁-조훈현, 이창호-목진석, 이세돌-한상훈, 박정환-김지석, 강동윤-박영훈, 내년 예정된 박정환-신진서까지 한국 기사끼리 결승이 총 아홉 번이다. 중국 기사 간 결승 격돌도 적지 않았다. 10회 대회 구리-천야오예부터 파오원야오-쿵제, 퉈자시-저우루이양, 당이페이-저우루이양, 양딩신-스웨까지 다섯 번이다.
박정환(오른쪽)도 중국의 다크호스 타오신란에게 대역전승을 거두고 한국 기사의 우승을 확보했다.
한국 주최 세계대회는 삼성화재배와 LG배가 쌍두마차다. 매년 열린다. 중국은 격년 개최가 많은데 춘란배, 백령배, 몽백합배, 천부배가 대표적이다. 2019년 10월을 기준으로 하면 삼성화재배는 탕웨이싱 9단, LG배는 양딩신 9단이 우승트로피를 들고 있다. 춘란배·몽백합배는 박정환 9단, 백령배 타이틀은 커제가 쥐고 있다. 천부배는 천야오예 9단이 정상을 지켰다. 한국 바둑이 밀리고 있다고 하지만, 유일하게 박정환만 2관왕이다. 정월 하세배에서 활약과 지난 3월 월드바둑챔피언십 우승까지 생각하면 올해 상반기는 박정환이 세계 바둑계를 휩쓸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창호나 이세돌 같은 ‘정복자’는 아니었다. 그래도 지난 몇 년 동안 박정환은 한국바둑에 든든한 울타리 역할을 하며 영토를 지켰다. 그 사이 성장한 여자 프로기사들은 세계대회에서 펄펄 난다. 현재 세계여자바둑대회는 궁륭산병성배는 최정 9단, 오청원배는 김채영 5단이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지난 오카게배 우승에도 여자선수 오유진 7단 4연승이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만약 신진서가 가세해 세계를 흔들면 패권은 다시 한국에 올 수 있다.
한국랭킹 1위 신진서(왼쪽)는 기이하게도 박정환(오른쪽)만 만나면 졌다. LG배 결승에선 과연 연패를 끊어낼 수 있을까.
남은 산은 박정환뿐이다. 신진서가 한국랭킹 1위지만, 기이하게도 박정환만 만나면 졌다. 공식대국에서 9연패했다. 상대전적은 박정환이 15승 4패로 앞서있다. 그 사이 결승 무대가 두 번 있었고, 모두 2-0 완봉패였다. 신진서가 저승사자면 박정환은 염라대왕이다. 이번 4강에서 신진서는 커제에게 당한 6연패 사슬을 끊었다. 결승에선 박정환에게 받은 연패를 끊어낼 차례다. 화려한 대관식은 이뤄질까? 누가 이겨도 피의 길을 뚫고 온 두 영웅이 표효하는 무대다. LG배 결승 3번기는 내년 2월 10일부터 13일까지 열린다. 신진서는 2020년 3월에 만 스무 살이 된다.
박주성 객원기자
[승부처 돋보기] 신진서 완력으로 커제 팔 비틀었다 #제24회 LG배 4강 ●신진서 9단 ○커제 9단 195수 흑불계승 장면도1 장면도1 ‘멋진 감각, 완벽한 형세판단’ 초반은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은 형세였다. 백(세모 표시)이 우변을 누르며 하변을 키웠다. 일요신문과 전화인터뷰에서 원성진 9단은 “장면도 흑1이 유리한 변화를 이끈 실마리가 되었다. 백18이 완착, 백22가 패착이다”라고 지적했다. 만약 흑21을 말뚝삼아 상변을 둘러싸면 흑 전체 집은 거의 100집이 넘는다. 그래도 AI 참고도는 백22로 들어가는 수보다는 밖에서부터 삭감을 추천한다. 그러나 인간은 감당하기 어려운 길이었다. 상변에서 커제는 힘의 대결로 역전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장면도2 장면도2 ‘수읽기에서 압도했다’ 중앙 전투는 복잡했다. 커제가 끊으면 신진서도 끊었다. 버티기와 노림이 끈질겼지만, 신진서는 특유의 완력으로 커제 팔을 꺾어버렸다. 흑1이 좋은 수다. 흑3으로 부드럽게 우상귀를 접수했다. 상변 집도 지켜냈다. 백은 애초에 중앙에 들어왔던 돌(세모표시, 장면도1에서 백22)이 넉 점으로 키워서 잡혔다. 원성진은 “신진서 9단이 워낙 잘 둬서 쉽게 이긴 듯 보이지만, 상변에서 이어진 전투들도 어려운 변화가 많이 숨어있었다. 그래도 수읽기에서 압도했다. 명국이다”라고 칭찬했다. 흑이 반면 10집 넘게 유리한 형세다. 백은 좌하귀(X표시) 사활을 추궁하는 게 유일한 희망이었다. 혹시 차단하면 패 정도는 낼 수 있었다. 백4가 은은한 노림을 품은 수였지만, 신진서는 좌변 흑돌을 완벽하게 살리면서 항서를 받아냈다. #제24회 LG배 4강 ●박정환 9단 ○타오신란 7단 383수 흑3.5집승 장면도3 장면도3 ‘패가 마술사, 역전은 중앙에서’ 박정환은 패로 망했다가 패로 부활했다. 실전진행에서 84수 째부터 좌상귀에 패모양이 만들어져 144수까지 60여 수가 패싸움으로 수순이 진행되었다. 도중에 AI가 측정하는 흑승률은 점차 낮아졌다. 백(세모표시)로 이으면서 좌상귀 패가 정리된 시점에 흑 승률은 10%에 불과했다. 흑1로 이어 버텼을 때 백2가 과수였다. 그냥 A 정도로 끝내기해 중앙을 천천히 지워갔으면 백이 이겼다. 흑5로 차단하자 다시 중앙에서 패모양이 생겼다. 이후 결과는 흑이 X표시를 모두 빵 따내며 패를 이겼다. 이렇게 승률 50%를 회복했고, 이후 우하귀 B로 두는 패까지 이겨 거꾸로 승률 95%를 기록했다. 그리고 완벽한 끝내기로 3.5집을 남겼다. 박주성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