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엔 직장인 주말엔 바둑선수로, 5년 넘게 여자랭킹 1위…“바둑서 배운 집중력·끈기면 못할 것 없어”
김수영은 5년 넘게 여자랭킹 1위를 유지했던 아마 강자다. 주 5일은 직장에 출퇴근하고, 주말은 바둑선수로 전국을 누빈다.
김수영은 5년 넘게 여자랭킹 1위 유지했던 아마강자다. 현재 포스코 O&M 행정지원그룹에 다니는 직장인이다. 주 5일은 출퇴근하고, 주말은 바둑선수로 전국을 누빈다. 그녀에겐 일이 곧 삶이고, 바둑 또한 일이다. 그래서 워라벨(Work-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은 없다. 대신 ‘워바밸(Work-baduk balance)’을 잡았다. 일과 바둑에서 모두 최전선에 선 가장 이상적인 아마추어 바둑인이다.
“여섯 살, 외삼촌 권유로 바둑을 시작했어요. 나이 많은 언니, 오빠들을 이기는 게 재미있어서 19로 매력에 푹 빠졌어요. 승부욕이 있는 편이라 더 고수가 되기 위해 도장에 다녔고, 바둑과 함께 10대를 보냈어요. 명지대 바둑학과를 졸업했고, 취업해서 이제 11월이면 만 6년 차 중견사원입니다. 포스코는 들어가고 보니 너무 큰 회사였어요. 입사 전까진 정말 몰랐어요. 일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졌습니다.”
김수영의 자기소개다. 입단대회는 2012년 이후는 나가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 그때부터 아마바둑계에 ‘김수영 천하’가 열렸다. 2011년 전국체전 금메달을 따고, 각종 아마대회 우승을 휩쓸었다. 내셔널리그도 9년 연속 선수로 출전하고 있다. 2017년은 이단비(현재 프로기사)를 꺾고 ‘바둑 춘향’ 타이틀도 얻었다. 내셔널리그에서는 대구바둑협회 소속이다. 대구바둑협회는 내셔널리그에서 여러 차례 정상에 오른 명문팀이다. 선수들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팀으로도 유명하다.
2017 국제바둑춘향 선발대회에서 우승한 김수영.
직장인 바둑대회에 나갈 선수 충원이 필요해 먼저 회사에 취업한 선배들도 있었다. 그들이 워낙 일을 잘해서 자신도 혜택을 받았다고 말한다. “직장을 다니면서 바둑선수로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이를 악물고 공부해 여자 랭킹 1위 유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입니다. 사회생활에선 바둑계를 대표한다는 마음으로 일합니다. 10대 시절 바둑에만 전념했던 사람도 누구 못지않게 잘한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요. 나중에 제가 후배들이 나갈 길을 열어줄 지도 모르니까요. 제가 운이 좋은 케이스지만, 원래 ‘미생’은 없습니다. 주변에 어린 친구들이 좌절하는 걸 자주 봐요. 입단에 실패했다고 인생 낙오한 거 아닙니다. 지나고 나면 20대 초반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때죠. 절대 늦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충고하고 싶어요. 바둑을 통해 체득한 집중력과 끈기면 사회에서 못할 일이 없습니다.”
지방대회에 출전한 김수영의 대국 모습.
김수영은 내셔널리그 대구바둑협회 소속이다. 대구팀은 여러차례 우승한 명문이다.
김수영은 안정과 모험, 두 개의 갈림길이 있다면 모험을 선택하는 편이라고 한다. 바둑도 형세와 관계없이 강하게 압박하는 걸 즐기는 스타일이다.
“프로기사가 되었다면 승률이 별로였겠지만, 아마추어 세계에선 제 기풍이 최강입니다. 대회에 나가면 감정이 살아있는 승부를 즐겨요. 특히 결승전에 올라가면 짜릿합니다. 마주 앉은 상대가 떨고 있다는 게 온몸으로 느껴져요. 전 그 순간 이미 제가 이겼다는 걸 알지요.”
박주성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