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정보 프로 인접 채널서 관련 제품 판매 빈번…“무검증 상품 소개도, 적절한 제재 필요”
‘쇼’와 ‘닥터’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인 닥터에게는 상업적 목적보다는 ‘인술’(人術)이라 불리는 직업적 소명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합편성채널의 득세와 함께 대중의 심리를 자극하는 쇼닥터들의 영향력은 날로 커지는 모양새다.
게다가 이를 문제 삼는 목소리와 제재에도 불구하고 쇼닥터의 영역은 더 넓어지고 있다. 특히 쇼닥터와 홈쇼핑의 연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닥터와 상업성의 최정점에 있는 홈쇼핑의 ‘잘못된 만남’이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이 중론이다.
의사이기 전에 사업가고 본인의 인지도를 높여 건강기능식품을 팔기 위해 방송에 출연하는 쇼닥터가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사진=이종현 기자
평일 저녁이나 주말 오전 시간대가 되면 건강 상식을 전하는 프로그램이 대거 방송된다. 특정 식품이나 약재, 생전 처음 들어본 무언가의 효능에 대해 설명하는 영상 끝에 의사와 같은 전문가들이 나와서 신뢰감을 주는 한마디를 얹는다. 아예 토크쇼 형식으로 의사가 직접 프로그램에 출연해 몇몇 음식이나 약재를 소개하기도 한다.
그러다 채널을 돌리면 놀라운 풍경이 펼쳐진다. 조금 전 지상파나 종합편성채널에서 소개된 약재나 음식의 주요 성분을 함유한 건강식품이 판매되고 있다. 현란한 말솜씨를 가진 쇼호스트들이 전하는 건강식품의 효능은 엄청나다. 먹으면 당장 만병을 이겨내고 회춘할 수 있을 듯하다. 적잖은 시청자들이 구매를 위해 전화를 걸거나 해당 홈쇼핑의 앱에 접속하고, 이내 ‘매진임박’이라는 자막이 화면 하단에 뜬다.
반드시 TV를 지켜보고 있을 필요도 없다. 이렇게 소개된 식품이나 약재의 이름은 포털 사이트 검색어 상단을 장식한다. 별다른 이유 없이 이런 이름이 검색어에 오르는 경우는 뻔하다. TV에서 소개됐기 때문이다. ‘검색어=대중의 관심’이다. 게다가 대중은 군중 심리 때문에 타인의 관심사에 크게 반응한다. 이 생소한 검색어를 클릭하면 여지없이 이와 관련된 건강식품들이 줄줄이 검색된다.
이런 연계 과정의 핵심에는 단연 쇼닥터가 있다. 대중은 권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습성이 있다. 특히 몸 한 구석이 불편한 사람들의 귀는 더 크게 열릴 수밖에 없다. 결국 의사 면허를 가진 이들이 갖고 있는 신뢰성은 그들이 소개하는 제품의 신뢰성으로 바뀌어 구매로 이어진다. 쇼닥터의 완성이다.
자유한국당 김순례 의원실이 2018년 8월부터 2019년 9월까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받은 자료를 토대로 자체 조사한 결과 방송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제품 등이 동시간대 홈쇼핑에서 판매된 경우가 39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우연이라고 보기 어려운 수치다. 게다가 홈쇼핑 채널과 주요 채널은 인접해 있다. 15번(JTBC), 13번(채널A), 11번(MBC), 9번(KBS1), 7번(KBS2), 5번(SBS)이 지상파나 종합편성채널이라면 그 중간의 빈 번호는 대다수 홈쇼핑이 차지하고 있다.
한 방송 관계자는 “요즘은 다채널 시대이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특정 채널의 국번을 일일이 외워서 누르는 경우는 많지 않다. 주요 채널이 몰려 있는 구간에서 리모컨을 위아래로 누르며 볼 만한 콘텐츠를 찾는다. 그 과정 중 자연스럽게 방송국 채널과 채널 사이에 놓인 홈쇼핑에 노출된다”며 “지상파나 종합편성채널에서 전문가들의 입을 통해 소개된 재료가 포함된 건강식품을 동시간대에 홈쇼핑에서 파는 것은 결코 우연이라 볼 수 없다. 어떤 루트를 통해서든 정보가 공유된 것이다. 이는 시청자들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쇼닥터 퇴출 안 하나, 못하나?
쇼닥터의 폐해에 대한 지적은 이미 5년 전부터 흘러 나왔다. JTBC의 초창기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닥터의 승부’는 여러 의사들이 의학 상식을 쉽게 전달한다는 측면에서 시청률이 높았지만 일부 확인되지 않은 의학 정보를 전하고, 전문가의 발언이기 때문에 이를 검증하기 어렵다는 측면에서 구설에 오르다 4년여 만에 폐지됐다. 성형을 소재로 다뤘던 메이크오버 프로그램인 ‘렛미인’ 역시 화제성이 높았지만 미용 성형을 부추기고 외모지상주의 풍토를 만든다는 반복된 지적 속에 막을 내린 바 있다. 당시 한국여성민우회, 서울YWCA, 여성환경연대 등 여성단체들은 ‘렛미인’에 대한 반대 성명을 발표하고 쇼닥터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10월 21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쇼닥터를 둘러싼 문제가 주요 안건으로 다뤄졌다. 특히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검증되지 않은 시술이나 식품을 소개하고, 홈쇼핑이 이와 연계된 제품을 판매하는 쇼닥터의 폐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이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특히 유튜버로 활동 중인 한의사 김재석 씨는 국정감사에 참석해 “쇼닥터는 의사이기 전에 사업가로서 본인의 인지도를 높여 건강기능식품을 팔기 위해 방송에 나온다”며 “10년 전부터 의사협회와 한의사협회에서 쇼닥터를 제재했지만, 보건복지부는 환자에게 큰 위해를 끼치지 않았다면서 징계하지 않았다”고 정부 차원의 적절한 조치가 없었던 것을 비판했다.
특히 김 씨는 쇼닥터로 활동하며 대중에게 혼란을 줘도 그들이 의사 면허를 유지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에 그런 행태를 반복하는 것이라며 일침을 놓았다. 또한 김 씨는 “자극적인 내용이나 ‘꿀팁’, 특정 물질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었다”며 제작진 역시 쇼닥터의 활동을 조장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관계 당국과의 합동 모니터링이 방안이 될 것이라고 보고, 그 전이라도 전문단체에서 건강기능식품의 위해성을 확인한다면 상응하는 조처를 하겠다”며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