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지대 급부상 중이지만 이끌 만한 인물 없어…김종인 윤여준 성낙인 박영수 등도 꾸준히 언급
대통령 직속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한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장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오른쪽)이 5월 2일 오후 국회를 방문해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제3지대 한 축은 바른미래당이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10월 2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당내 문제가 정리되는 대로 제3지대를 열어 통합개혁정당을 만드는 데 앞장 설 것”이라며 “중도개혁과 실용적, 합리적 정치세력을 다 모으겠다”고 말했다. 유승민 의원 등 비당권파의 탈당 예고로 분당이 가시화되자, 제3지대 신당 창당을 선언한 것이다.
신당 창당은 바른미래당 당권파를 형성하는 호남계의 ‘빅텐트론’이 받아들여진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4·3 보궐선거 참패를 계기로 비당권파 측이 ‘손학규 간판’을 바꿔야 한다고 요구하자, 박주선(4선, 광주 동구남구을) 김동철(4선, 광주 광산구갑) 의원 등 호남계 중진의원들은 ‘빅텐트론’으로 맞서왔다. 내홍에 휩싸인 바른미래당을 뛰어넘어 모든 세력을 규합하는 신당을 차리고, 손 대표가 단계적으로 내려오도록 퇴로를 열어주자는 게 골자다. 손 대표의 한 측근은 “통합개혁정당으로 모든 세력을 규합하는 빅텐트를 차리면 손 대표는 자리를 물려주게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바른미래당엔 손 대표 퇴진파인 ‘유승민-안철수’ 연합 세력도 자리한다. 유승민 의원을 중심으론 비당권파 모임인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변혁)도 꾸려진 상태다. 탈당을 예고한 변혁은 창당추진위원회 구성을 본격화했다. 유승민 의원 구상은 ‘조건부 보수통합론’과 ‘독자세력화’다. 한국당이 중도를 포섭할 수 있을 만큼의 대대적 혁신에 나선다면 통합이 가능하지만, 이것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독자세력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독자세력 구축은 유 의원이 개혁보수를 내걸고 제3지대로 나설 수 있음을 시사한다. 정계복귀를 미룬 안철수 전 의원이 어떤 선택을 할지도 관건이다.
제3지대 또 다른 축은 민주평화당과 대안신당(가칭)이다. 지난 7월 민평당 진로를 두고 당권파(정동영계)와 갈등을 겪던 비당권파(박지원, 천정배 의원 등 10명)는 탈당을 결행했다. 비당권파는 따로 대안신당(가칭)이라는 연합체를 꾸렸고, 연내 창당을 목표로 12월 17일 창당준비위위원회를 출범하기로 했다.
이처럼 제3지대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호남계(중도 및 진보), 유승민 안철수(개혁보수 및 중도), 정동영 민평당 대표(진보), 대안신당(중도 및 진보)으로 갈라져 서로 간 치열한 계산을 하는 중이다.
제3지대에 기대감이 실렸던 배경에는 가까워지는 총선 시간표와 더불어 이른바 ‘조국 사태’를 거치며 무당층이 급증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여론조사기관 칸타코리아가 SBS 의뢰로 지난 9월 9~11일 성인 1026명을 대상으로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 중앙여론조사심의위 참조)한 결과 ‘지지정당이 없다’거나 ‘모르겠다’ 응답자 비율은 38.5%로 나타났다. 국민 10명 중 4명은 민주당도, 한국당도 싫다는 것이기에 여론조사 결과는 정치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 사진=이종현 기자
참석자들은 향후 창당할 신당의 대표직을 맡아달라고 홍 회장에게 제안했으나, 홍 회장은 완곡하게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대안신당 관계자는 “홍 회장은 민주당과 한국당을 떠나 제3지대에 가장 가까운 인사다. ‘빅텐트’ 필요성에는 그도 인식을 같이 했다. 다만 지금 제3지대를 어떻게 재편하고 통합할지 판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상황에서 홍 회장이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으로 보였다. 아직은 상견례 성격으로 보고, 향후 판을 정리한 뒤 다시 시도를 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안신당에서는 우선 바른미래당 호남계 등과 통합하는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다.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 역시 인물 영입에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그는 신당 창당에 구심점 역할을 할 새 대표자를 영입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로부터 며칠 전, 그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물밑 접촉했다는 전언이 돌기도 했다.
손 대표의 ‘반기문 러브콜’은 예전부터 있어왔다. 그는 지난 3월 미세먼지 대책 범국민 기구 구성을 정부에 제안하며 반 전 총장을 위원장으로 추천했다. 기구가 정부 차원에서 받아들여지고, 반 전 총장은 위원장직을 수락하며 화답했다. 그보다 더 이전인 2017년 손 대표는 당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으로 대선 출마 선언을 하며 반 전 총장과의 ‘빅텐트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다만 손 대표는 반 전 총장과의 만남에 대해서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와 최근 만났다는 한 정치권 인사는 “손 대표가 반 전 총장 만남에 대해선 일축했고, 대신 인재영입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했다”고 귀띔했다. 반 전 총장의 경우 2017년 ‘대망론’이 허무하게 꺼진 뒤, 현재까지 정계복귀에 선을 긋는 상태다.
이 밖에 제3지대에서 꾸준히 언급되는 인물들은 김종인 전 민주당 비대위원장, 윤여준 전 장관, 정의화 전 국회의장 등이다. 김한길 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의 경우 지난 5월 바른미래당 혁신위원장 후보군에 오르내리며 등장한 바 있다. 폐암 투병 중이지만 건강은 상당히 회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대표적인 헌법학자인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했던 박영수 전 특별검사 등도 거론된다.
과거를 떠올려봤을 때도 제3지대 성공은 결국 ‘인물’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2년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4대 총선을 한 달 앞두고 세운 통일국민당은 31석을 확보하며 3당 지위를 따냈다. 고 김종필 전 총리가 이끈 자민련도 15대 총선에서 50석을 획득하며 양당 체제를 위협했다. 둘 다 당시 대권주자로 불릴 만큼의 영향력이 존재했다.
가장 최근 제3지대 성공 사례는 안철수 전 대표가 꼽힌다. 20대 총선을 불과 두 달 앞두고 만든 국민의당은 38석을 따내며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현재 정계를 잠시 떠난 안 전 대표가 다시 국내에 복귀했을 때, 과거 영향력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아직까지는 제3지대를 이끌 만한 강력한 인물은 눈에 띄지 않는다. 제3지대 결집 작업을 여러 차례 했던 한 유력인사는 사석에서 “대통령제 하에 양당 체제가 워낙 공고한 상태이기 때문에 제3지대가 넓어졌다고 해도 생존 가능성은 상당히 희박하다. 무엇보다 제3지대를 이끌 만한 대권주자급의 인물이 없다.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지지율 한 자리수대의 바른미래당이나 대안신당에 발길을 할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권준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