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한국당과 통합 여지 내비치며 ‘군불’…안철수 통합보다는 제3지대 구축에 무게
반면 독일에 체류하던 안철수 전 의원은 최근 미국행을 택하며 정계복귀를 미뤘다. 중도에 방점이 찍힌 안철수계 의원들은 유승민발 통합론에 부정적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권에선 이러한 양측의 힘겨루기가 보수통합의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점친다.
지난 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열린 한국은행 국정감사에서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이 질의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바른미래당 유승민-안철수계 의원 15명은 9월 30일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변혁)을 꾸렸다. 지난 4·3 재보궐선거 참패 이후 손학규 대표 퇴진을 요구하며 결성된 유-안 연합이 정식 모임으로 출범한 셈이다. 대표는 바른정당계 수장인 유승민 의원이 맡았다. 유 의원은 “바른미래당은 실패했다. 결심해서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실패’는 손 대표 체제를 향한 비판, ‘결심과 행동’은 탈당으로 해석됐다.
유 의원은 당내외 인사들을 두루 만나는 등 세력화에 나서며 탈당 준비에 들어갔다. 조국 정국을 거치며 범보수권의 반 문재인 연대 흐름이 생성됐다는 점도 유 의원 행보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예상됐다. 10월 2일 조국 사퇴를 외치며 단식 중이던 이학재 한국당 의원을 직접 찾아간 게 대표적이다. 이 의원은 바른미래당 창당에 일조했다가 2018년 12월 한국당으로 복당했다.
유 의원은 10월 9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한국당과의 통합 선결조건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인정 △개혁보수로 나갈 것 △보수 구체제 타파를 제시하며 조건부 통합론을 띄웠다. 16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는 “보수 재건을 위해 황교안 대표와 만날 생각이 있다”며 “탄핵의 강을 건너자. 탄핵은 역사니까 받아들이고 그 문제로 더 이상 싸우지 말자는 것”이라고 제안을 구체화했다.
유 의원 제안 중 핵심은 ‘탄핵의 강을 건너자’라는 것이 중론이다. 바른미래당 한 의원은 “더 이상 탄핵의 잘잘못을 따지지 말고 일단 인정을 하고 가자는 의미”라며 “문재인 정부에 대항하기 위해, 범보수 승리 위해 서로 책임 논쟁을 하지 말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전까지 탄핵의 정당성을 인정하라는 것이 유 대표의 제안이었다면 이보다 열린 주장으로 해석된다.
유 의원 제의에 황교안 대표는 “대화가 필요하면 대화하고 만남이 필요하면 만날 수 있고 회의가 필요하면 회의체도 할 수 있다”고 화답했다. 또 “대의(大義)를 생각하면 소아(小我)를 내려놓을 수 있다”며 탄핵을 둘러싼 논쟁을 그만둘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양측이 만남에 호응하며 보수대통합에 한걸음 다가섰다는 분석이 나왔다.
물론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다. 황 대표는 유승민 복귀에 ‘비토’를 놓는 당내 반발 세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황 대표 지지 기반인 친박계의 김재원 의원(3선‧경북 상주시군위군의성군청송군)은 유 의원에 대해 ‘구역질이 난다’는 보수논객의 글을 인용, 주변 의원들에게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한국당 친박계 중진의원은 “보수 분열에 명백한 책임이 있는 유승민이 자꾸 조건을 내거는 것에 불쾌해 하는 의원들이 많다”며 “현재 한국당은 상승 기류다. 유승민이 안 들어와도 어차피 잘 되는 집”이라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한국당 내 ‘유승민 논쟁’이 시작된 것 자체가 통합 열차 시동이 걸린 것을 의미한다는 반응이다. 친박계 중에서도 중도층 포섭이 필요한 수도권 의원들은 유승민 복귀를 반기고 있다. 윤상현 의원(3선‧인천 미추홀구을)은 “탄핵의 강을 건너자는 제안이 탄핵이 절대적으로 옳았다거나 불가피했다는 뜻은 아닐 것으로 이해한다”고 호응했다. 이처럼 내년 총선이 다가올수록 황교안-유승민의 통합 논의가 더욱 활발해질 것이란 관측이다.
안철수 전 의원. 사진=박은숙 기자
지난해 6·13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한 뒤 독일 유학길에 오른 안철수 전 의원은 최근 미국행을 택하며 정계복귀 임박 관측을 일축했다. 변혁을 꾸린 유승민 의원이 복귀를 요청하며 문자까지 보냈으나, ‘고민해 보겠다’는 답변만을 남겼다.
연구 활동을 이유로 미국으로 떠났지만 정치 상황을 관망하는 것으로 읽힌다. 안 전 의원 측근 그룹은 손학규 대표가 버티는 상황에서 복귀해봤자 실익이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패스트트랙에 오른 선거법 개정안도 관건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등 선거지형이 바뀔 경우 다당제 방식이 유리해 복귀 전략도 새롭게 짜야 한다.
독일에 머물던 안 전 의원의 보수대통합 참여설은 지난 8월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가 “안 전 의원부터 우리공화당에 이르기까지 모두 같이 하는 게 진정한 반문연대”라고 제안한 데서 군불이 지펴졌다. 이후 조국 정국을 거치며 반문연대가 확산되자 안철수 이름이 꾸준히 소환됐다.
안 전 의원이 보수대통합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안 전 의원이 본인의 정치철학을 극중주의(극도의 중도)로 내세웠고, 20대 총선에서 호남에 전폭적 지지를 받은 국민의당의 기억을 떠올릴 때 보수대통합보다는 제3지대를 구축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이를 반영하듯 안철수계 일부 의원들은 보수대통합에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안철수계로 변혁에서 활동 중인 권은희 의원은 17일 YTN 라디오에 출연해 “유승민 대표가 한국당에 요구하고 있는 쇄신의 조건은 한국당 특성상 절대 달성하기가 불가능한 조건들”이라며 “통합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없다’라고 평가하고 있다”고 일축했다.
통합을 가로막는 현실적 문제도 있다. 안철수계 의원 7명 중 6명은 비례대표다. 비례대표는 자진탈당 시 의원직을 잃는다. 대신 당이 제명하면 의원직을 지킬 수 있다. 제명은 의원총회에서 재적 의원 3분의 2가 동의해야 하지만 손 대표가 이를 용인할 가능성은 지금으로선 없다.
결국 안 전 의원의 등판 여부가 보수통합의 열쇠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안 전 의원이 보수통합에 손을 들어주면 탈당-신당창당-한국당과 ‘당 대 당’ 통합 협상에 이르는 시나리오가 유력하다. 하지만 안 전 의원이 통합에 부정적이거나 끝내 복귀를 미루면 통합 동력은 실기할 수 있다. 안철수계 의원의 한 측근은 “안철수 대표는 향후 대권을 감안해 내년 총선 전 복귀해 세력을 확보해 갈 가능성이 크다”며 “보수통합에 어떤 입장인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준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