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선거제 개편 부정적 기류 확산…심상정 총대 멘 ‘의원정수 확대’ 변수로 부상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0월 2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패스트트랙 시간표는 나왔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본회의 부의 날짜를 12월 3일로 못 박으면서다. 이날 검찰개혁 및 선거제 개편 법안 동시 부의가 유력하다. 법안이 부의되면 60일 이내에 상정한 뒤 표결을 진행해야 한다. 패스트트랙에 따라 60일을 넘기더라도 다음 첫 본회의 땐 무조건 상정을 해야 한다. 문 의장은 여러 차례 신속하게 상정할 뜻을 밝혔다. 정치권에선 연말을 넘기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주를 이룬다.
그 전까지 여야의 수 싸움은 치열하게 벌어질 전망이다. 관전 포인트는 민주당과 야3당(바른미래당 정의당 민주평화당)의 공조 여부다. 법안 통과를 위해선 297석 중 149석이 필요하다. 민주당(128석)으로선 최소 21석의 우군을 확보해야 한다. 정의당(6석)과 대안신당(10석) 민주평화당(4석) 여권 성향 무소속 의원들 찬성을 전제로 바른미래당 당권파(9석) 협조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런데 민주당은 검찰개혁에 방점이 찍혀있는 반면, 야3당은 정치개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동안 야3당은 선거법을 먼저 처리한 뒤 검찰개혁을 다루자는 입장이었다. 더군다나 민주당이 사활을 걸고 있는 공수처 설치에 반대하는 의원들도 적지 않다. 한국당은 이 틈새를 노린다. 민주당과 야3당의 공조를 무너트려 법안 통과를 무산시키겠다는 것이다. 한국당 중진 의원은 “민주당과 야3당 간 신경전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게 우리 쪽 전략이라면 전략”이라고 귀띔했다.
야3당은 민주당이 선거법과 관련해 적극적인 논의에 나서지 않고 있다며 불만을 터트린다. 바른미래당 당권파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익명을 요구하며 “민주당은 시한이 촉박하다며 선거제 협상은 뒤로 하고 자꾸 공수처 얘기만 꺼낸다. 그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겠느냐만 총선을 앞두고 선거제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겠느냐”면서 “이대로 가다가 검찰개혁만 통과돼 민주당 좋은 일만 시키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고 말했다. 정의당의 한 의원도 이렇게 말했다.
“조국 정국에서 ‘2중대’란 말을 들으면서까지 민주당과 협조했던 것은 선거제 때문이었다. 그런데 최근 당직자들 사이에서 ‘민주당에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이 선거법 개정에 반대표를 던질 것이란 얘기 때문이다. 물리적 충돌을 감수하면서 패스트트랙에 겨우 올렸는데, 이를 좌초하려는 시도 또는 각 당과의 암묵적 동의를 깨려는 행위는 엄청난 국민적 비난에 직면할 것이다.”
민주당 측은 패스트트랙 공조는 굳건하다며 이를 일축했다. 하지만 내부 기류는 달랐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의원들 중 일부는 “당론과 다른 투표를 하겠다”고 털어놨다. 이는 ‘밥그릇 문제’ 때문이다. 패스트트랙에 올라탄 선거제에 따르면 지역구는 253석에서 225석으로 줄어든다. 나머지 75석은 각 정당이 권역별로 얻은 득표율에 따라 배분한다. 소수 정당의 원내 진입이 더욱 용이해질 것이란 전망이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물론 민주당 의원들도 지역구 축소에 대해 달가워하지 않는다. 패스트트랙에 올라탄 선거제를 대체할 여러 제안들이 민주당에서 제기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지역구 축소 폭을 줄이자는 게 주요 골자다. ‘지역구 250석, 비례대표 50석안’도 그중 하나다. 민주당의 한 친문재인계 의원은 “지역구 하나 줄이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느냐. 지역구 획정하다가 시간 다 갈 것이다. 현실적으로 선거제 바꾸려면 이번엔 최소한으로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한국당의 의원정수 축소(270석)와 비례대표제 폐지 주장을 받아들이자는 말까지 나온다. 한국당 안대로라면 지역구 의원은 오히려 17석이 늘어나는 셈이다. 앞서의 친문 의원은 “한국당 반대를 핑계로 내걸고 있지만 민주당 의원들 상당수가 선거제 개편에 반대한다. 오히려 공수처 문제가 부각된 게 다행스런 측면이 있다”면서 “내년 총선은 현행대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 다른 민주당 중진 의원도 비슷한 얘기를 들려줬다. 그는 “당내에서 선거제 개편을 반대하는 대표적 인사들이 몇 명 있다. 친문도 포함돼 있다. 그들이 의원들을 매일 접촉하며 설득 작업을 벌이는 것으로 안다. 시간이 너무 촉박하니 다음 국회로 넘겨 제대로 논의를 해야 한다고도 했다”면서 “당 지도부가 아무리 독려해도 막상 투표장에서 선거제 개편 반대표를 던지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정의당 등 야3당과의 공조 파기에 따른 후폭풍이 예상된다”고도 덧붙였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10월 31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의원정수 확대를 다시 거론한 것도 선거제 개편이 수포로 돌아갈 것이란 전망과 무관하지 않다. 심 대표는 10월 27일 “(의원 세비 총액 동결을 전제로) 현행 300석에서 10% 범위 확대하는 그런 합의가 이뤄진다면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지역구 축소를 반대하는 의원들 목소리가 높아지자 심 대표가 ‘총대’를 멘 셈이다. 야3당 공조를 다지고, 민주당을 압박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이에 대해 호남에 기반을 둔 민주평화당, 대안신당 등은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민주당과 한국당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국민 요구는 그게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도 “범여권의 의석수 늘리기 야합이 갈수록 노골화하고 있다”며 “국민 여론을 무시하고 밥그릇에만 골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심 대표가 말을 바꿨다는 지적도 나왔다. 심 대표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 시절이던 지난 3월 “국민들이 300석 이상 늘리지 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300석 이내에서 해야 되고…”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결은 다소 다르다. 민주당은 일단 의원정수를 늘리는 부분에 대해서 신중하지만 어느 정도 여지는 열어두자는 기류가 감지된다. 야3당과 민주당이 의원정수 확대를 놓고 보조를 맞출 수도 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또 다른 친문 의원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문제였다. 누군가는 꺼냈어야 했다. 처음 패스트트랙에 올릴 때부터 국민들에게 양해를 구했어야 했는데, 어물쩍 넘어갔다”면서 “심 대표가 용기를 낸 것이다. 당장에 비판은 받겠지만 많은 의원들이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법안 통과를 위해선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당은 강하게 반발하는 모양새다. 심 대표가 의원정수 확대와 관련 자유한국당과도 합의를 했다는 언급에 대해 나경원 원내대표는 “정치적 허언증”이라며 공개사과를 요구했다. 조경태 최고위원은 “정의당과 일부 세력은 국민을 개구리, 붕어, 가재로 생각하느냐”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한국당 중진 의원은 “의원정수 확대 반대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은 상황에서 민주당+야3당과는 다른 스탠스를 보이기 위한 것이다. 또 총선 판세를 점쳐봤을 때 의원정수 확대는 범 진보진영에 유리하지, 우리에겐 불리하다”면서 “협상 테이블에 올라올 수없는 카드”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