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사태‘ 후폭풍 이해찬 비토론 확산…’대선주자‘ 선두권 이낙연 총선 역할론 주목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퇴 이후 여권 내부에서 ‘이해찬 책임론’이 들끓고 있다. 최악의 경우 여당발 선수교체론이 급물살을 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친노무현계 좌장인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선 후퇴를 요구받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해찬 책임론은 공교롭게도 이낙연 국무총리가 최장수 국무총리 반열에 오른 시점 전후로 정점을 찍었다. 조국 사퇴 국면에서 사실상 연대 전선을 형성했던 당·정 원톱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른다. 이해찬·이낙연의 시소게임이 본격화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0월 30일 국회 당대표회의실에서 열린 제11차 정기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한때 여권의 대세였던 ‘20년 집권론’은 자취를 감췄다. 이해찬 대표는 지난해 민주당 8·25 전당대회 전부터 보수 궤멸론을 앞세워 20년 집권 플랜을 주장했다. 4월 17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열린 원외지역위원장 총회에서는 “원외지역위원장 125명이 내년 총선에서 다 당선되면 총 240석, 비례대표 의원까지 합하면 260석쯤 될 것”이라며 이른바 260석 싹쓸이론을 주장했다. 친문재인계 내부에서도 ‘너무 나간 발언’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공개적으로 이를 문제 삼지는 않았다.
자신만만했던 여권 분위기는 6개월도 가지 못했다. 조국 정국에서 내상을 입은 민주당은 선거대책위원회(선대위) 체제냐,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체제냐의 기로에 봉착했다. 내년 4·15 제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철희 민주당 의원은 “이 대표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일부 비문재인계와 초선·수도권 의원들 사이에선 비대위 체제를 띄워야 한다는 기류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한 의원은 “책임을 지는 이가 한 명도 없는 게 말이 되느냐”라고 비판했다. 조국 정국을 거치면서 여의도 안팎에선 ‘조·박·금(조응천·박용진·금태섭) 살생부’가 나돌기도 했다. 이들은 조국 책임론을 제기했던 당내 초선 의원이다. 당 주류가 이들에 대한 보복 공천을 단행한다는 게 조·박·금 살생부의 핵심이다. 친노 내부에서 이해찬 선수교체론을 이해찬 비토 세력의 반란 시도로 치부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선수 교체론에 시달리던 이 대표도 방어 진지구축에 나섰다. 그는 10월 30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자청했다. 애초 이 대표의 정례 간담회는 11월 5일에 열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초선 의원들이 같은 날 의원총회에서 이해찬 책임론을 제기하기로 결의하자, 일정을 앞당겼다. 다만 민주당은 문재인 대통령 모친인 강한옥 여사가 10월 29일 별세, 의총 일정을 11월 4일로 연기했다.
이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정례 간담회에서 조국 사태에 대해 “여당 대표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국민 여러분께 매우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검찰 개혁이라는 대의에 집중하다 보니 국민, 특히 청년이 느꼈을 불공정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 좌절감은 깊이 있게 헤아리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 대표가 조 전 장관 사퇴 이후 관련 입장을 표명한 것은 처음이다.
이 대표는 조 전 장관이 사퇴한 지 16일 만에 사과했지만, 지도부 책임론에는 “선거가 다섯 달밖에 안 남았는데 지도부를 물러나라는 것은 선거를 포기하라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인적 쇄신 및 당직 개편에도 선을 그었다. 중진 물갈이와 86그룹(80년대 학번·60년대 생) 물갈이에 대해선 “임의로 물갈이한다, 쫓아낸다고 하는 건 예의 없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양정철 민주연구원장 실세 역할론과 관련해서도 “당의 누구 하나가 실세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반박했다. 2선 후퇴 없이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당장 초선 의원들 사이에선 “인적 쇄신 의지가 부족하다”며 냉소적인 반응이 나왔다.
이 대표는 정면 돌파를 택했지만, 11월 2일 세종시 자택에서 가지려던 당 소속 의원들과의 만찬도 취소하며 당분간 몸을 낮출 뜻을 내비쳤다. 이 의원 측은 “주말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촛불 집회가 열리는 점을 감안했다”고 밝혔지만, 당 내부에서 분출하는 혁신 요구가 만찬 연기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만찬 연기를 공지(10월 28일)한 날 국회에서 이철희·표창원 의원을 따로 만났다. 이번 만남은 이 대표가 먼저 요청했다. ‘이해찬 책임론·당내 혁신’을 주장했던 이들까지 끌어안겠다는 시그널을 비주류에 보낸 셈이다. 두 의원은 이 대표와 만남 후 기자들과 만나 “리더십을 가지고 당을 혁신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에 이 대표는 “혁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초미의 관심사였던 ‘이해찬 선수교체론’ 등은 일절 논의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향후 관전 포인트는 당·정 원톱의 ‘관계 설정’이다. 이 대표는 원조 친노다. 여의도의 대표적인 책사다. 이 대표의 사석 자리에서 빠지지 않은 얘기는 김대중(DJ)·노무현 정부 탄생 뒷얘기다. 여기에는 자신이 민주정부 1, 2기 개국공신이라는 자부심이 깔렸다. 다만 친문과는 결이 다르다. 민주당 친문 성향 당원들이 조국 사퇴 이후 당원 게시판에 “무능력한 이 대표로는 총선 필패”라고 맹폭을 가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세력은 견고하지만, 현재 입지는 약한 셈이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 10월 11일 국회 본회의에서 열린 교육·사회·문화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답변하기 위해 단상으로 나가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이낙연 국무총리의 상황은 이해찬 대표와 정반대다. 이 총리는 10월 28일을 기점으로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최장수 총리의 반열에 올랐다. 하루하루 한국 정치사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쌍두마차를 형성했다. 여권 내부에서도 ‘이낙연 선대위’, ‘이낙연 서울 종로 출마’ 등 이낙연 간판으로 총선을 치르자는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이 총리는 친문 직계는 아니다. 현재 입지는 견고하지만, 세력은 약한 고리다.
‘이해찬·이낙연’의 관계 설정은 셋 중 하나다. 환상의 조합 아니면 전략적 동거, 완전한 결별이다. 조국 사퇴 당시 이들은 연대 전선을 형성한 모양새를 취했다. 당 안팎에선 당·정 원톱이 조 전 장관 사퇴를 BH(청와대)에 건의했다는 말도 돌았다. 당·청 복수의 관계자들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지만, 조 전 장관에게 날짜 세 개를 주고 택일하라고 종용했다는 설도 있다. 킹메이커인 이 대표가 ‘이낙연 대망론’을 밀어 페이스메이커를 탈피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시나리오도 심심치 않게 나왔다. ‘킹 메이커 이해찬·대권주자 이낙연’ 조합은 전·현직 총리가 민주정부 4기를 만드는 최상의 시나리오다.
문제는 여당발 선수교체론이 나오는 시점에 이들이 공존할 수 있느냐다. 이 대표는 이 총리의 여의도 복귀와 관련해 “차기 대선주자로 지명도가 높아 내년 총선에서 역할을 해주길 기대하는 당원이 있다”면서도 “이 총리 의향뿐 아니라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뜻이 매우 중요하며, 인사권자가 따로 있는 만큼 당이 더 말씀드리긴 적절치 않다”고 말을 아꼈다. 앞서 이 총리는 최장수 총리 기록을 세운 10월 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향후 거취에 대해 “저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조화롭게 하겠다”고 말했다. 이해찬 책임론 이후 친노 내부에선 이 총리의 여의도 귀환에 대한 부정적인 기류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 대표 측은 “소설”이라고 반박했다.
당·정 원톱이 전략적 동거에 나설 수도 있다. 이 대표가 공천과 인재영입을 맡고 이 총리는 선대위원장을 맡는 식이다. 이 대표는 ‘예선전 마무리’, 이 총리는 ‘본선 지휘자’로 역할 분담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당·정 원톱의 전략적 동거는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카드로 꼽힌다. 당내 분열 없이 이낙연 간판으로 총선을 치를 수 있어서다. 이 경우 차기 대선 과정에서 친노 원로그룹이 이낙연 대망론을 주도, 새로운 당내 세력으로 부상할 수도 있다. 이른바 당·정 원톱의 윈윈 전략이다.
마지막 경우의 수는 결별이다. 이 대표는 2선 후퇴하고 이 총리가 당 전면에 나서는 시나리오다. 앞서 이 대표는 2012년 대선 때도 당 안팎의 친노 패권주의 논란에 선거 막판 2선 후퇴했다. 애초 당내 중진 의원들 사이에 퍼진 이해찬 비토론 기류는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수도권·초선으로 확산했다. 당 중진들은 “청와대에 할 말은 못 하면서 칼만 휘두르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이철희 의원은 “청와대 뒤에만 숨었다”고 힐난했다.
청와대 참모진을 비롯한 친문 직계 내부에서도 ‘이 대표가 자기중심으로 선거를 치르려고 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여권 한 관계자는 이 대표가 밀었던 김태년 의원이 낙마한 민주당 5·8 원내대표 경선을 거론, “이해찬 비토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선거였다”고 말했다. 이에 이 대표 측에선 친문 직계와 일부 비문 내 개혁파 의원들이 이해찬 밀어내기를 하려는 것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친노·친문 분화 여부도 이해찬·이낙연 시소게임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