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설립비 대납, 차명 메일 통해 임단협 등 적극 관여, KT “회사 차원 개입 없다”
서울 종로구 KT 광화문 빌딩. 고성준 기자
KT MOS는 KT의 5G, LTE 기지국 등 무선망을 유지·보수하는 담당 계열사다. 하청업체 7개사가 지난해 8월 KT MOS 남부와 북부로 통합한 뒤 같은해 10월 KT그룹으로 편입했다. KT는 KT MOS 남부와 북부의 지분을 각각 75.07%와 80.87%를 보유하고 있다. 현재 직원 수는 KT MOS 남부가 890명, 북부 906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KT 본사는 7개사 합병 과정에서 향후 조직될 통합 노조를 사측 마음대로 움직이기 위해 MOS부산 등에 ‘어용노조’를 직접 설립하고, 그 운영 과정에 구체적으로 개입함으로써 노조를 직접 지배하는 부당행위를 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이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서 엄금하는 명백한 지배개입,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 그동안 KT는 본사는 물론 계열사 노조에 사측이 개입하고 의도대로 움직이게 하려 했다는 의혹이 수차례 제기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이 유독 주목받는 이유는 차명 메일 및 이를 통해 주고받은 문서 등 사측이 개입한 증거가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22일 KT 본사 소속 노무담당 조 아무개 팀장은 울산역으로 내려가 어용노조 설립 관련 사전 미팅을 했다. 이 자리에는 MOS부산 경영지원팀 함 아무개 팀장과 회사와 우호적 관계에 있는 위원장 후보 직원 2명 등이 함께했다. 이어 4월 6일 조 팀장이 위원장 후보 면담을 통해 노조위원장 후보가 추려지고, 조 팀장의 지시 하에 사무국장과 조직국장, 대의원 등 노조 조직이 회사에 우호적인 직원들로 꾸려진다.
KT 본사 노무담당 조 아무개 팀장이 ‘박결’ 차명의 계정으로 MOS부산 경영지원팀장에 노조설립에 대한 구체적 방법이 담긴 문서를 보낸 메일. KT새노조 제공
조 팀장은 ‘박결’이라는 차명을 사용해 ‘park109kul@gmail.com’ 메일계정을 만들고 함 팀장에 지시를 내리기 시작한다. 조 팀장이 4월 12일 함 팀장에 보낸 메일에는 현수막 문구, 임원명단 및 주소록, 회의록 작성 방법과 대사, 창립총회 참석자 명단 작성 방법, 투표용지 작성 방안 및 노조 가입서 양식 등 노조 설립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이 담겨 있었다. 조 팀장의 지시로 다음날 부산의 한 장소에서 MOS부산 노조 창립총회까지 개최됐다. 이날 장소 사용료 3만여 원은 KT 측에서 지불했다. 투표용지, 투표함, 인주 등까지 공급했고, 현수막과 노조위원장 직인 제작비도 KT가 추후 대납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팀장은 차명메일을 통해 MOS부산 노조 가입현황을 매주 두 번 상시 보고 받았다. KT새노조 제공
MOS부산 노조가 만들어지자 KT 본사는 박결의 차명 메일을 통해 직접 노조 규약을 작성, 함 팀장에 보내 노조위원장에 전달했다. 또 함 팀장에게 MOS부산 노조 가입 현황을 매주 두 번 상시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실제 함 팀장 등 MOS부산 노조는 KT가 만든 노조가입현황표 양식에 맞춰 보고를 했다. 또 노조 설립신고증을 받자마자 박결 차명 메일을 통해 사측에 보고하고, 교섭창구단일화절차 현황을 구체적으로 알리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단체협약서도 KT가 작성해 보내준 내용 그대로 진행됐고, KT 본사의 지시에 따라 단체교섭합의서도 체결됐다.
KT 본사는 임금단체협약(임단협) 과정도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5월 말 차명메일을 통해 함 팀장에게 보낸 ‘2018 임단협 추진 계획안’에는 노조가 ‘교섭요구안 마련을 위한 설문조사’와 ‘의견수렴’을 노조를 위해 진행한 것으로 위장하게끔 했다. 현장설문조사 지시안에 따르면 “모든 기업이 회사 간 합병시 비용절감을 위해 인력효율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으며, 이는 KT도 예외가 아닐 것임을 넌지시 말함”, “‘몇 프로 올려줄 것이냐’ 등 구체적 수치를 제시하라는 요구에 대해 ‘여론 수렴 후 결정할 예정’이라고 즉답 회피”, “합병 진행 경과를 지속 질의시 일반사항만 공유하고 임금교섭과 관련된 의견수렴 자리이므로 합병사항 질의는 자제 당부” 등 매우 구체적으로 사측에 유리한 여론을 조장한 것으로 확인됐다.
KT 본사는 임단협 과정에도 개입하기 위해 차명계정 메일을 통해 ‘2018 임단협 추진 계획안’을 보냈다. KT새노조 제공
특히 임단협 추진 계획안에는 KT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제2노조인 KT새노조를 견제하는 내용도 담겼다. 문서 안에 “만에 하나 있을 수 있는 새노조의 개입 차단 위해 주요 안티(Anti) 직원에 대해 지속 모니터링하라”고 적시돼 있었다.
이러한 KT 본사의 지시 속에 지난해 8월 KT MOS 남부와 북부의 통합 노조가 결성됐다. 기존 MOS부산 노조는 남부노조 소속으로 통합됐다. KT의 노조 설립 개입 및 직접 지배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KT새노조와 노무사사무소 하율의 박사영 대표노무사는 KT MOS 남부 노조를 여전히 본사의 지배를 받고 있는 어용노조로 보고 있다.
이 사건은 현재 수원지검 성남지청의 수사 지휘로 고용노동부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성남지청에서 조사하고 있다. 노조 설립 과정에서 차명 메일로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진 KT 조 팀장의 소환조사도 실시, 구속영장 청구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MOS부산과 관련해 명백한 증거들이 나온 것을 비롯해 나머지 하청업체 6개사에도 비슷한 작업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실제 조 팀장이 ‘박결’ 차명메일로 보낸 메일 중 일부는 ‘받은 사람’에 함 팀장 외 MOS충청·호남·대구의 담당직원의 메일주소가 함께 기재돼 있다. 이들 3개사는 MOS부산과 함께 KT MOS남부로 통합됐다.
MOS강서·강북·강남이 통합된 KT MOS북부 노조도 KT 본사가 개입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나오고 있다. 박사영 노무사는 “북부노조 설립 과정에도 남부의 조 팀장과 같은 역할을 한 직원이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을 동시에 움직였을 때는 윗선의 지시 없이는 힘들다. 그 위를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동청 역시 이 부분에 대해 집중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황창규 KT 회장에 대한 책임론까지 나오고 있다. 박 노무사는 “모회사인 KT가 직접 노조 설립을 지시하고 운영 과정에 개입했기에 부동노동행위가 명백하다“며 ”모회사 KT 소속 노무담당 팀장이 KT MOS 직원들에게 직접 업무지시를 해온바, 이는 불법파견으로 인한 직접고용의무 대상에 해당하는 등 KT가 법적·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KT 측은 “회사 차원의 노조 설립 개입 의혹은 없었다”면서도 “조 팀장이 소환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고는 있지만 수사 중인 사안이라 따로 할 말이 없다”고 전했다.
한편 조 팀장은 조사 과정에서 ‘본인이 KT MOS로 가게 될 것으로 알아 경험을 바탕으로 노조 설립에 필요한 참고자료를 몇 가지 전달했을 뿐’이라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차명 메일 사용에 대해서도 ‘보안문제로 사내메일로 자료를 못 보내 다른 계정을 사용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