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한 수:귀수편’ 전작보다 디테일 잘 살려…한승주·이다혜 등 실제 기사들 출연…김선호 3단이 기보 90% 이상 창작
영화 ‘신의 한 수:귀수편’에서 귀수(왼쪽)와 장성무당이 일색바둑을 두는 장면.
이번 영화는 배우 권상우(43)가 주인공 귀수를 맡아 전면에 나서 바둑판에 사활을 걸었다. 시대적 배경은 1988년부터 시작한다. 전편에서 언급된 귀수라는 인물의 15년 전 이야기다. 주인공 귀수와 함께 허일도 역으로 배우 김성균, 부산잡초 역 허성태, 똥선생 역 김희원, 외톨이 역 우도환, 장성무당 역 원현준 등 출연진들이 열연해 러닝타임 1시간 46분을 꽉 채운다. 프로기사 중에선 한승주 6단, 이다혜 5단, 이유진 2단, 이동휘 2단이 실제로 영화에 출연했다. 아마바둑인 김지명과 내셔널바둑리그 선수 김규리, 채현지도 영화제작을 도왔다.
일요신문과 인터뷰하는 리건 감독.
바둑 디렉터는 따로 있다. 프로기사 김선호다. 그는 지난 4년 동안 리건 감독과 함께 일하며 제작과 편집까지 참여했다. 영화 속에 바둑대결이 서른 번 정도 있는데 이 바둑판에 올린 기보를 대부분 만들었다. 100인 다면기 기보도 대부분 김선호 3단에 창작품이다. 일요신문과 인터뷰에서 김선호는 “신의 한 수는 1편부터 제작에 관여했다. 1편과 달리 이번 귀수편의 기보는 90% 이상 내 창작품이다. 영화 상황에 맞는 착점 장면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배우가 말하는 실제 대사와 몸짓까지 고려해서 만들었다. 캐릭터마다 실력이 다르기 때문에 그 기력에 맞는 내용으로 바둑을 구성했다. 촬영을 위해 준비한 판은 총 200국이 넘는다”라고 말했다.
영화에서 신들린 바둑을 두는 장성무당(원현준 분).
리건 감독도 “기보를 대충 표현하는 것은 바둑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기원의 꾼들, 귀수의 바둑 실력을 모두 계산했고, 프로가 질 수 있는 상황까지 고려하면서 세밀하게 디자인하는 데 4년이 걸렸다. 촬영할 때도 김선호 프로가 틈틈이 나와 배우들에게 바둑을 가르쳤다. 처음에는 동작 위주였다. 영화를 찍다가 동작이 어색하면 집중할 수 없기에 동작이 아주 중요했다. 대역은 쓰지 않았다. 나중에는 배우가 직접 열 수 이상 외워서 착수할 수 있었다. 바둑을 배운 배우들이 서로 경쟁심이 생겨서인지 촬영장에서도 바둑을 두었다. 나도 열심히 둘 때는 6급까지 승급했었다”라고 설명했다.
영화에서 가장 스타일리시한 대국은 투명한 바둑돌로 두는 일색바둑이다. 일색바둑을 두는 귀수(권상우 분).
영화에선 6인 6색의 바둑이 나온다. 이 중 가장 스타일리시한 대국은 투명한 바둑돌로 두는 일색바둑이다. 감독은 중국설화에 나온 귀신사냥꾼 이야기에서 나온 일색바둑 장면에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영화에선 신들린 바둑으로 상대 마음을 꿰뚫어보는 장성무당이 귀수와 대결한다. 영화에선 투명한 바둑돌로만 채워져 있을 뿐이다. 관전하던 똥선생(김희원 분)은 “이거야 누가 이기는지 어떻게 알어”라고 중얼거린다. 영화 속 일색바둑에 흑돌을 추가해 주요 장면을 살펴본다.
“반상을 채운 유리알은 햇빛에 반짝이고…” 영화 속 일색바둑 흑돌·백돌로 다시 보기 ●귀수(권상우) ○장성무당(원현준) 결과: 249수 흑3.5집승 장면도1 #장면도1 ‘집 따위는 없다’ 귀수는 첫수를 화점에 둔다. 장성무당이 바로 날일자로 걸쳐가 심기를 건드린다. 반면은 똑같이 생긴 유리알 네 개가 놓여있다. 백4를 두면서 장성무당은 나지막이 “집은 의미가 없어. 너나 나나 집 따위가 있을 리 없잖아. 그러니 지키려 하지마”라고 말하며 심기를 흔들기 시작한다. 장성무당은 바둑실력보다 반외 현혹술이 장기다. 기보를 제작한 김선호는 “장성무당의 기력은 아마추어 7단 정도다”라고 말한다. 장면도2 #장면도2 ‘누나 목소리’ 장성무당은 천천히 백1을 둔다. 서서히 바둑판에 쌓이는 투명 유리알. 귀수가 흑4로 뚫어버리는 순간 장성무당이 “죽은 니 누나”라고 말한다. 귀수의 손은 공중에서 멈췄다. 이후 누나 목소리까지 빙의하며 귀수를 현혹한다. 우하귀 진행에서 마음이 동요한 귀수에게 무리수가 나오면서 형세가 점점 나빠진다. 장면도3 #장면도3 ‘사석작전’ 장성무당은 백10으로 두어 중앙 백돌들은 버린다. 영화 소개에 나온 스틸컷, 투명한 바둑알로 채워진 그 장면이다. 김선호 3단은 “장성무당이 계속해서 귀수를 말로 현혹했다. 이 장면은 백에 형세가 좋아야 영화 설정에 맞다. 중앙 빈 공간으로 멋지게 내려치는 장면을 상상하고 백10에 위치를 잡았다”라고 설명했다. “짧은 인연인데 좀 더 봐두려고”라면서 귀수는 상대의 얼굴에 눈을 떼지 않고 흑A, 백B, 흑C, 백D로 중앙을 접수한다. 이후 몇 수 두지 않아 귀수는 바로 역전에 성공한다. 장면도4 #장면도 4 ‘계가’ 반상에 가득한 유리알이 햇빛에 반사되면서 반짝인다. 마지막 공배를 메우는 마지막 수가 흑1이다. 기보로는 249번째 수다. 백 사석이 3개, 흑 사석이 6개며 흑이 반면으로 10집을 남겨 덤을 제하고 흑 3.5집승이다. |
박주성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