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경그룹-HDC현대산업개발 2파전 양상…매각 당사자 금호산업 이해관계 복잡해 속단 어려워
인수전 승부는 입찰가격이 결정지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다만 아시아나항공이 국내 2위의 국적항공사란 특수성 탓에 가격 외 다른 요소들도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는 만큼 결과는 쉽게 예단하기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아시아나항공의 새 주인을 가리는 인수전의 막이 올랐다. 사진=박정훈 기자
아시아나항공 매각 주관사 크레디트스위스(CS)는 지난 7일 오후 2시까지 인수제안서를 제출 받았다. 애경그룹·스톤브릿지캐피탈 컨소시엄과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 KCGI·뱅커스트릿 컨소시엄, 세 곳이 인수전에 참전했다. 시장의 관심을 모았던 신세계, SK 등 대기업들의 ‘깜짝 등장’은 없었다. 시장에선 사실상 애경그룹과 HDC현대산업개발 컨소시엄을 유력 주자로 점치고 있다.
매각 측인 금호산업 등은 이날 곧바로 본입찰 서류 검토에 착수했다. 항공 산업은 국토교통부의 대주주 면허 심사를 받아야 한다. 가격 등 정량적 요인과 향후 경영계획서 등 정성적 요인 등을 평가하고 국토부와 협의를 거쳐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방침이다.
그동안 인수후보들 가운데 대외적으로 가장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온 곳은 애경그룹이다. 일찌감치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사를 드러냈고, 본입찰 마감 직후엔 이례적으로 입장 자료를 내면서 자신감을 보였다. 애경그룹 관계자는 “(애경이) 아시아나항공 인수 이후 한국 항공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애경그룹은 저비용항공사(LCC) 제주항공을 국내 3위 항공사로 키워낸 경영능력을 앞세운다. 2005년 제주항공을 설립해 6년간 적자를 거듭했지만, AK면세점을 매각하면서 꾸준히 투자를 이어왔다. LCC 가운데 최초로 항공기를 직접 사들이고 정비 자회사를 설립한 게 대표적이다.
제주항공은 최근 국내 LCC 1위이자 국내 항공사 빅3로 통한다. 보유 항공기는 45대로, 국내선 6개, 국제선 85개 정기노선을 운항하고 있다. 취항도시는 48곳이다. 적자를 벗어난 2012년부터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수익률은 국내 항공사를 통틀어 가장 높고, 부채 비율은 가장 낮다. 애경그룹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게 되면 그룹 자산규모는 5조 원대에서 15조 원대로 뛴다. 만년 3등 제주항공은 대한항공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서는 등 항공업계 판도 자체를 뒤집을 수 있다.
다만 자금력은 상대적으로 열세로 평가 받고 있다. 투자은행(IB)업계는 애경그룹이 인수 의사를 밝힌 직후부터 부족한 자금 탓에 인수가능성이 낮을 것으로 전망했다. 앞서 예비입찰에 별도로 참여한, 1조 원 이상의 운용자산을 굴리는 토종 PEF(사모펀드) 스톤브릿지캐피탈과 연합하고 본입찰이 임박한 시점엔 한국투자증권을 컨소시엄에 참여시키면서 분위기를 바꿔놨다.
자금 지원을 받은 애경그룹은 이번 인수전에 1조 5000억 원 안팎을 써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애경그룹의 자금은 여전히 빠듯한 것으로 평가된다. 한 투자은행 관계자는 “아시아나의 부채는 7조 원이 넘는다. 여기에 이번 매각은 아시아나항공과 에어서울, 에어부산 등 항공사 세 곳과 계열사인 아시아나IDT, 아시아나에어포트 등 6개 회사를 통매각하는 방식이다. 천문학적인 부채와 ‘딸린 식구’들까지 고려하면 애경그룹이 준비한 자금은 여전히 빠듯한 것으로 보인다”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애경그룹 관계자는 “항공사업은 자금력만으로 경영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항공산업 이해도가 부족한 곳이 인수하면 혼선이 생길 수밖에 없다. 실제로 글로벌 항공사들의 인수합병도 항공사들끼리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애경그룹 컨소시엄은 제주항공을 통해 항공사 경영 능력을 앞세우며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은 이번 인수전의 또 다른 한 축이다. 시장 일각에선 HDC 컨소시엄의 ‘독주’를 점치기도 했다. 자본이 넉넉해서다. HDC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지난해 말 기준)만 1조 1773억 원이다. 애경 지주사 AK홀딩스(2013억 원)보다 많다.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한 미래에셋 대우는 올해 상반기 기준 국내에서 자기자본 8조 원을 돌파한 유일한 금융투자회사다. 인수 의사가 확실한 곳엔 가격을 높게 적어내는 과감한 베팅을 해오고 있다. 실제 이번 인수전에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 컨소시엄은 인수금액을 2조 5000억 원에 가깝게 써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HDC현대산업개발과 미래에셋도 약점이 있다. 두 회사가 각각 건설업과 금융업이 주력인 만큼 항공업과 관련한 경험이 거의 전무하다. HDC산업개발은 면세점과 호텔사업을 항공산업과 연계해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애경그룹에 비하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미래에셋대우 역시 금융사업을 통해 항공사들과 협력 해왔지만 직접 경영에 참여하는 것은 다른 얘기다.
HDC현대산업개발과 미래에셋 관계자들에 따르면, 두 회사는 그동안 인력을 별도로 차출해 팀을 꾸리고 외부 전문가들을 영입해 현대산업개발 본사에 마련한 사무실에서 인수전을 준비해왔다. 이 자리에서 가격 전략과 동시에 아시아나항공과 글로벌 항공산업 전반을 분석하고 경영 전략 개발에 상당한 시간과 인력을 쏟아 온 것으로 전해진다. 복수의 컨소시엄 관계자들은 “가격 외에 다른 부분들에 대한 준비도 충분히 이뤄졌다”며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HDC현대산업개발 컨소시엄은 탄탄한 자본력을 내세웠다. 사진=이종현 기자
시장에선 가격을 월등히 높게 써 낸 HDC현대산업개발 컨소시엄의 우세를 점친다. 그러나 이번 아시아나 매각에는 변수가 많아 쉽게 예단하기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 5000억 원 이상의 공적자금을 투입한 KDB산업은행 등 채권단, 이를 토대로 정부의 직간접적인 판단까지 모두 고려 대상이라서다.
특히 매각 당사자인 금호산업의 이해관계는 더 복잡하다. 회사는 구주 인수 가격을 더 높게 써낸 곳으로 무게추를 실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번 매각은 금호산업이 보유한 아시아나 지분 31.05%(구주)와 아시아나가 유상증자를 통해 발행하는 보통주식(신주)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구주는 금호산업이 가져가고 신주는 아시아나항공에 남아 인수자가 가져간다.
금호산업 측은 구주가격에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얹어지길 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인수전에 참여한 컨소시엄 세 곳은 구주 가격을 4000억 원 안팎으로 써낸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7일 종가 기준 금호산업이 보유한 지분(31.05%) 시장가는 3650억 원이었다. 경영권 프리미엄이 거의 없는 셈이다. 애경그룹이 HDC현대산업개발보다 구주 가격을 더 높게 써낸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전 향방에 대해 업계 의견은 엇갈린다. 다른 투자은행업계 관계자는 “아시아나 매각은 영업환경이 심각하게 위축되거나 경영상 어려움에서 추진됐다기보다는 금호아시아나그룹 내부 이슈와 오너리스크가 발단이 됐다”며 “인수를 하면 아시아나항공이 가진 인력과 인프라를 모두 가져가게 된다. 사실상 자금만 충분하면 운영에 문제될 게 없다. 가격이 이번 인수전 결과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대로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은 사실상 국가 기간산업과 다름없다”며 “가격 외에 다른 여러 조건들을 종합해 판단이 내려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앞으로의 계획’과 ‘실제 경험’을 두고 저울질을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은 늦어도 11월 중순께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금호산업 관계자는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일주일 정도를 예상하고 있지만 상황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며 “발표 이후 주식매매계약 체결 등을 거쳐 가능하면 올해 안에 매각을 마무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