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 피해 커지자 “선처 없이 엄단”…심은진 악플러 이례적 징역형 ‘처벌 기준 달라지나’
이번 선고는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동안 유명 연예인들이 악플에 시달려 법적으로 대응을 할지라도 결국 선처를 호소하는 악플러를 용서해 훈방 조치로 마무리되는 일이 많았다. 연예인이 용서하지 않을지라도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솜방망이 처벌 때문에 악플이 반복 재생산된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런데 이번 실형 선고 판례로 인해 앞으로는 보다 적극적으로 악플러들을 처벌할 길이 열린 셈이다.
사진=심은진 인스타그램
악플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건 채 10여 년밖에 되지 않는다. 주로 TV나 신문을 통해 뉴스를 접하던 시절에는 대중이 그들의 의견을 피력할 방법이 많지 않았다. 해당 매체의 홈페이지에 접속해 댓글을 다는 정도였지만, 과정이 복잡하고 댓글의 개수도 적어 여론으로 형성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포털 사이트의 발달과 스마트폰의 보급 등은 온라인 환경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대중이 포털 사이트를 통해 뉴스를 접하면서 각 기사에 붙는 댓글의 개수가 크게 늘었다. 과거에는 주로 데스크탑이나 노트북 등을 통해 포털 사이트에 접속한 후 댓글을 달 수 있었다면, 스마트폰 시장이 열리면서 대중은 언제 어디서든 뉴스를 보고 댓글을 쓸 수 있게 됐다.
좋은 의미로 본다면 쌍방향 소통이다. 하나의 사안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청취할 수 있고, 대중이 일방적인 뉴스 수용자가 아니라 그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길이 열린 셈이다. 하지만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인, 확인되지 않은 댓글이 난무하기 시작하면서 댓글창은 더 이상 올바른 소통창구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됐다. 특히 대중의 관심이 높고 가십성으로 쉽게 소비하는 연예뉴스와 그 주인공인 연예인을 향한 악플이 금도를 넘기 시작했다.
이런 악플에 최초로 법적 대응한 연예인은 가수 겸 배우 정지훈이다. 그는 2005년 라디오 프로그램의 전화 연결과정에서 한 여성가수에 대한 입에 담지 못할 말을 했다는 속칭 ‘라디오 괴담’과 관련된 악플러들을 고소했다. 결국 이듬해 2월 검찰은 허위 사실을 인터넷에 올린 이 아무개 씨 등 4명을 명예훼손 혐의로 벌금 70만 원씩 약식 기소했다.
2006년에는 배우 김태희가 악성루머를 퍼트린 네티즌들을 대상으로 법적 조치에 나섰고 결국 11명이 불구속 입건됐다. 이들은 김태희와 관련된 기사에 얼토당토않은 인신공격성 댓글을 단 혐의를 받았다. 하지만 김태희는 입건된 11명에 대한 고소를 취하했다. 당시 김태희 측은 “수사를 통해 루머가 거짓임이 충분히 밝혀졌다고 믿는다”며 “피고소인들이 사과와 반성의 뜻을 전해왔다”며 고소 취하 이유를 밝혔다.
이로 인해 악플러의 사회적 폐단에 경종을 울리는 동시에 김태희의 인성에 대한 칭찬도 이어졌다. 하지만 이런 결정은 결과적으로 볼 때 악플러들에게 ‘연예인들은 선처를 해준다’는 잘못된 편견을 심어주는 양상으로 번졌다. 실제로 김태희 이후 여러 연예인들이 고소 후 악플러가 붙잡히면 선처해주는 사례를 반복했다. 가수 아이유의 경우 2013년 허위 사실을 유포한 악플러로부터 “사회봉사를 하라”는 약속을 받아낸 뒤 용서해줬다.
배우 박해진은 2015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악플러들 가운데 선처를 호소한 이들에게 봉사 활동을 하는 조건으로 고소를 취하한 뒤 함께 연탄 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봉사활동을 조건으로 악플러들의 고소를 취하해준 뒤 그들과 함깨 연탄 배달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배우 박해진. 사진=더블유엠컴퍼니
이후에도 악플러들이 기승을 부리고 이로 인한 피해가 더 커지자 연예인들은 “선처는 없다”고 칼을 빼들었다. 최근 악플러들에 대해 고소장을 제출한 가수 선미·지코와 배우 이승기·공효진 모두 “합의와 선처는 없이 엄단하겠다”는 입장을 취했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이는 ‘더 이상 봐주지 말라’는 대중의 바람과도 일치한다”며 “연예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각종 SNS와 온라인 공간 안에서 무분별한 루머와 잘못된 정보로 고통을 받는 사례가 늘면서 연예인을 향한 악플에 대해서도 강력 대응하라고 주문하기 시작했고, 이런 흐름에 발맞춰 연예인들의 대응 강도도 세졌다”고 분석했다.
#왜 선처와 용서가 반복되나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막상 악플러들을 붙잡고 난 뒤 피해를 입은 연예인들이 선처를 반복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처음에는 “연예인들이 자신의 이미지 때문에 용서를 해준다”고 미루어 짐작했으나, 최근 알려진 양상은 다르다.
일단, 붙잡힌 악플러 가운데 미성년자가 적잖다. 2005년 정지훈의 사례 때도 당초 17명을 고소했으나 그 중 미성년자였던 9명에 대해서는 먼저 고소를 취하한 바 있다. 이후에도 입건된 악플러 가운데 상당수가 미성년자이거나 사회 초년생이었다. 이들이 사법 처리를 받으면 소위 ‘빨간 줄’이 생기기 때문에 향후 사회생활에 큰 지장을 받게 된다.
연예인 A 씨의 경우 지속적으로 악플을 다는 네티즌을 고소해 붙잡은 적이 있다. 이 악플러는 20대 초반 B 씨였고, 선처를 호소해 결국 훈방 처리됐다. B 씨의 인생을 망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그를 용서한 A 씨는 얼마 후 또 다른 악플러를 고소했는데, 경찰서에서 마주한 이 악플러는 또 다시 B 씨였다. 이번에는 용서받기 힘들다고 판단한 B 씨는 어머니를 데리고 와서 대신 사과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B 씨는 A 씨 외에도 또 다른 연예인들을 비방하는 악플을 작성한 혐의도 받고 있었다.
이처럼 악플은 일종의 중독 현상을 보인다. 경미한 처벌 기준도 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심은진에게 악플을 달았던 악플러의 실형 선고는 꽤 의미심장한 판례라 볼 수 있다.
또 다른 연예계 관계자는 “미성년자나 사회초년생의 경우 악플로 인해 처벌을 받으면 향후 진학이나 취업에 제한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독하게 마음을 먹었던 연예인들도 결국 선처하는 경우가 잦다”며 “악플러에 대한 처벌 기준을 강화하는 등 보다 현실적인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