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급제 도입 갈등 한발 물러선 선수협, 샐러리캡 도입은 미정
2018년 말 KBO 측이 제안한 FA 제도 개선안을 선수협이 거부하면서 양의지는 총액 115억에 FA 계약을 맺는 대박을 터뜨렸다. 사진=박정훈 기자
FA 기간 단축과 등급제 도입은 KBO와 10개 구단,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가 오랜 시간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해온 화두다. 1999년 처음 도입된 FA는 소속팀 선택이 불가능하고 계약 기간을 보장받지 못하는 프로야구 선수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하지만 점점 시장이 확대되면서 몸값 100억 원(4년 계약 기준)을 넘는 선수들이 잇달아 탄생해 구단들의 부담이 커졌고, 반대로 준척급 베테랑 FA들은 보상선수 규정 때문에 ‘미아’가 돼 시장을 떠돌아야 하는 부익부 빈익빈 상황이 계속됐다. 결국 구단들과 선수협 모두 FA 제도 손질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양측 이해관계가 달라 합의가 쉽지 않았지만, 2년에 걸친 밀고 당기기 끝에 큰 변화의 첫 걸음을 뗐다.
#FA 제도 개선 둘러싼 대립, 작년 한 차례 홍역
지난해 말에도 야구계는 FA 기간 단축과 등급제 도입 문제로 시끄러웠다. 지난해 9월 KBO가 이미 선수협에 10개 구단의 의견을 반영한 FA 개선안을 제시했다가 무산된 사례가 있어서다. 다만 당시 개선안의 진짜 목적은 ‘FA 계약 총액 상한선’을 도입하기 위해서였다는 게 다른 점이다.
당시 KBO가 선수협에 전달한 FA 제도 개선안에는 △FA 계약 총액을 4년 최대 80억 원으로 제한 △계약금 비중을 계약 총액 30% 이내로 제한 △FA 자격 요건을 고졸 선수 9시즌→8시즌, 대졸 선수 8시즌→7시즌으로 각 1년 단축(해외 진출 자격은 현행 7년 유지) △연봉 기준에 따른 FA 등급제 도입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등급제 시행 내용도 상세하게 분류해 놓았다. 등급은 최근 3년 동안 각 구단 선수 평균연봉 순위(연봉 순위 산정시 FA 계약선수 및 해외 진출 복귀 계약선수 제외)에 따라 A·B·C로 구분해 보상 선수와 보상 금액에 차등을 뒀다. 최초로 FA 자격을 얻은 선수는 A등급이 보호선수 20명 외 1명과 전년도 연봉 200%, B등급이 보호선수 25명 외 1명과 전년도 연봉 100%, C등급이 보상 선수 없이 전년도 연봉 100%를 각각 보상 기준으로 삼았다.
또 FA 자격을 다시 얻은 선수의 경우엔 A등급이 보호선수 25명 외 1명과 FA 계약기간 평균 연봉 150%, B등급이 보호선수 30명 외 1명과 FA 계약기간 평균 연봉 100%, C등급이 보상 선수 없이 FA 계약기간 평균 연봉 70%를 기준으로 각각 보상하게 되는 규정이었다.
당초 KBO는 10개 구단이 논의 끝에 합의한 이 개편안을 지난 시즌 직후 곧바로 시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야구계는 대체적으로 환영의 목소리를 냈다. 야구계 관계자는 “갑자기 몸값을 80억 원으로 제한하는 게 선수들은 말도 안 된다고 하겠지만, 사실 한 시즌 입장 수익이 80억 원이 안 되는 구단들도 있다. 천문학적으로 치솟는 몸값을 언제까지나 감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며 “구단들도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구단이 손해를 볼 수도 있는 여러 대안을 내놓은 것이다. 고액 연봉 선수 한 명의 몸값을 아끼면 더 많은 선수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 역시 ‘구단 이기주의’의 또 다른 단면이라는 비판도 있다. 야구계 다른 관계자는 “사실 FA 선수 몸값을 과도하게 부풀려 놓은 것은 구단들인데 이제 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선수들을 ‘돈만 아는 사람’으로 몰아붙이는 모양새”라며 “사실 2~3년 전만 해도 ‘FA 자격 취득 연수를 1년 줄이자’는 얘기만 나와도 모든 구단이 펄쩍 뛰었다. 그런데 이제는 더 큰 목표가 생기자 이 문제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선수협은 왜 반대했나
선수협은 기자회견까지 열어 강경한 반대 의사를 표현했다. 가장 단호하게 반발한 부분은 역시 ‘FA 계약 총액 상한제’다. “공정거래법 위반의 소지가 있는 것은 물론이고, 이미 FA 총액 100억 원을 넘긴 선수들이 여럿 등장한 상황에서 이런 제한은 오히려 다른 파행이나 편법을 만들어낼 우려가 있다”는 얘기였다.
김선웅 당시 선수협 사무총장은 ‘FA 총액 제한이 왜 시장의 거품을 빼고 구단 운영비를 감축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없는지’를 설명하는 데 기자회견의 상당 시간을 할애했다. “FA는 KBO 리그에서 가장 중요한 선수 권익 보호 제도인데 구단들이 너무 금액 감축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 같다”며 “수년 전 FA 다년 계약 금지 조항이 생겼다가 곧 없어졌듯이 이 문제도 그저 임시방편에 그치고 말 수 있다는 위험이 있다. 그렇게 되면 애꿎은 선수들이 결국 또 피해를 보게 되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KBO와 구단들이 제시한 ‘당근’들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김선웅 사무총장은 “FA 등급제와 최저 연봉 인상이 선수들에게 유리한 조항임은 분명하다”면서도 “일본 프로야구와 비슷하게 분류한 등급제의 경우 등급 선정의 문제뿐 아니라 각 구단이 보상해야 하는 부분이 여전히 작지 않기 때문에 소위 B나 C등급 선수들이 쉽게 팀을 찾을 수 있는 개선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반박했다. KBO가 제시한 기준대로 선수를 등급별로 나눈다면, 각 구단 연봉 상위권 선수 대부분이 FA나 해외 복귀 선수로 빠지게 돼 큰 의미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시즌이 끝난 뒤 즉각 시행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이런 변화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논의가 이뤄져야 하는 문제다. 최소한 시즌 개막 전까지는 예고됐어야 했다고 본다”며 “시행까지 시간이 채 한 달도 주어지지 않은 상황이라 더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KBO는 중간에서 난감해했다. “당장 올해부터 시행해야 한다”는 10개 구단과 “충분한 시간을 두고 논의해야 하는 문제”라는 선수협의 입장이 너무 많이 달라서다. KBO 관계자는 “선수협도 일부 의견은 수용하고 검토할 부분이 있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FA 계약 총액을 80억 원으로 상한선을 긋는 문제 때문에 다른 안들도 다 수용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며 “구단들도 그들대로 어려운 부분이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2~3년 안에 정상적인 구단 운영이 어려울 것 같다는 얘기가 많이 나왔다. 양쪽 모두 고려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일단 첫 번째 협상은 ‘결렬’로 끝났다. 선수협은 추후 다시 논의할 여지를 열어 두면서도 FA 총액 상한만큼은 용인할 수 없다는 의지를 확고히 했다. “현재 FA 시장 상황이 과열을 넘어 거품을 만들고 공멸의 길을 걷고 있다면, 선수협도 이를 안정화하는 KBO 리그 정책에 협조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전제하면서도 “총액 상한은 실정법에도 저촉되고 과열 현상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는 정책은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그 후 NC는 2018 FA ‘최대어’였던 현역 최고 포수 양의지를 4년 총액 115억 원에 영입했다. 이 제도가 시행됐다면 양의지는 가장 큰 피해자, NC는 가장 큰 수혜자가 될 뻔했던 셈이다. 양의지는 올해 35년 만의 포수 타격왕에 오르면서 이른바 ‘돈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
#다시 불거진 갈등, 또 거부한 선수협
이후 FA 제도 개선에 대한 논의는 더 활발해졌다. 지난 9월 프로야구 10개 구단 단장들이 모인 KBO 실행위원회에서는 FA 제도를 어떻게 손질하느냐를 놓고 4시간 넘는 토론이 이어졌을 정도다. 한 구단 단장은 “FA 보상안 중 선수 보상안을 없애자는 선수협의 요구가 가장 많았던 만큼 관련 아이디어 이야기를 가장 많이 나눴다”며 “FA 등급제 시행과 별도로 35세 이상 선수가 FA 시장에 나오면 선수 보상을 하지 말자는 대안 등이 오갔다”고 했다.
대신 구단들도 △외국인 선수 3명을 보유하고 한 경기에 2명만 출전할 수 있는 현행 규정을 3명 보유와 3명 출전으로 바꾸겠다는 안과 △육성형 외국인 선수를 보유하겠다는 안을 내밀었다. 선수협도 원하는 안을 이루기 위해 외국인 선수 문제에선 한 발 양보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였다.
이어 정규시즌 종료 뒤 열린 다음 실행위원회에선 좀 더 심도 깊은 대화가 오갔다. 쟁점은 역시 등급제 시행에 따른 선수 보상제도 철폐 혹은 완화와 관련된 문제였다. 선수협에서 ‘FA 선수 전 해 연봉의 300% 또는 200%와 선수 1명’이라는 일률적인 보상안보다 등급에 맞게 차이를 두는 보상 대책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FA 선수 등급에 따라 보호 선수를 몇 명으로 묶느냐를 두고 견해의 차가 컸다. 예를 들어 A급 선수의 경우 보호선수 20명 이외의 선수 중 보상 선수를 주는 방안, B급 선수의 경우 보호 선수 23명 이외의 선수 중 보상 선수를 주는 방안 등이 논의됐다.
그러나 선수협은 “A급으로 평가받는 선수 수가 그리 많지 않은 상황에서 B급 선수의 보상 보호 선수를 23명으로 묶는 건 지나치게 제한적”이라고 반발했다. “구단들이 한국 야구의 수준 향상과 선수 인권 개선이라는 큰 틀에서 사안을 바라봐야 한다”며 “1년 전 제안보다 후퇴한 조정안을 받아들일 순 없다”고 강경하게 맞섰다. 대신 FA 자격 취득 기간을 고졸과 대졸 모두 1년씩 단축한다면 구단들이 제시한 외국인 선수 관련안을 전격 수용하겠다는 의사는 내비쳤다.
어쨌든 실행위원회는 두 차례에 걸친 장고와 토론 끝에 구단들이 합의한 여러 관련 안건을 선수협에 보내 합의를 시도했다. 하지만 협상은 또 결렬됐다. 지난 11월 24일 열린 선수협 이사회에서 이 FA 제도 개선 안건을 수용하지 않기로 결론내렸다. 실행위원회는 최근 3년간의 연봉을 기준으로 FA 선수들의 등급을 A∼C등급으로 나누고 등급에 따라 보상안을 달리하는 개선안에 합의했지만, 선수협은 바로 그 보상 완화안에 불만을 표현했다. 또 “FA 재취득 연한 4년 폐지와 고액 선수 연봉 감액 폐지 등의 조처도 이뤄지지 않았다”며 구단의 FA 개선안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뜻을 모았다.
선수협이 문제를 제기한 규약은 연봉 3억 원 이상의 선수가 경기력 저하 등의 이유로 1군 현역 선수로 등록하지 못하면 선수 연봉의 300분의 1의 50%와 미등록일수를 곱한 액수를 연봉에서 감액하는 조항이다. 선수협은 이 부분을 공정거래위원회에 문제 삼는 방식으로 법적 판단을 받겠다는 태도까지 취했다.
물론 이 결정을 놓고 반응은 좋지 않았다. 한 구단 고위 관계자는 “프로야구 관중 수가 4년 만에 시즌 800만 명 밑으로 떨어지고 중계권료도 깎이면서 야구계가 전반적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선수들도 이런 현실을 인지해야 한다”며 “각 구단이 운영 자금을 줄이는 판국에 선수들의 요구는 비용 상승으로 이어진다. 구단들이 받아들이기가 어렵다”고 한탄했다.
FA 제도 개선안을 받아들인 이대호 선수협회장은 샐러리캡 도입과 관련해선 “KBO의 보충안을 검토한 뒤 수용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박정훈 기자
#마침내 시행되는 FA 취득 기간 단축과 등급제
KBO 역시 선수협이 거부한 FA 개선안을 처음으로 언론에 전면 공개하면서 공개적으로 재논의를 요청했다. 지난 11월 28일 10개 구단 사장들이 모인 KBO 이사회에서 뜻을 모으고 “12월 초 열리는 선수협 총회에서 수용 여부를 다시 결정해 달라”고 강조했다.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각 구단은 △전력 평준화를 위한 샐러리캡(총액 연봉 상한제) 도입과 FA 취득 기간 단축을 연동해 이른 시일 안에 추진하고 △2020년 시즌 종료 후부터 FA 등급제를 시행하겠다는 방침을 굳혔다.
골자는 이렇다. 신규 FA의 경우 기존 FA 계약 선수를 제외한 선수들의 최근 3년간 평균 연봉과 평균 옵션 금액으로 순위에 따라 등급을 나누고 이에 따른 보상도 등급별로 완화하는 안을 내놨다. A등급(구단 순위 3위 이내, 전체 순위 30위 이내)의 경우 당해연도 연봉의 300% 또는 당해연도 연봉의 200%와 보호선수 20명 외 선수 1명 보상이라는 기존 보상 방안을 그대로 유지한다.
B등급(구단 순위 4∼10위, 전체 순위 31∼60위)의 경우 보호선수를 기존 20명에서 25명으로 확대하고, 보상 금액도 전년도 연봉의 100%로 완화한다. C등급(구단 순위 11위 이하, 전체 순위 61위 이하) 선수의 경우 선수 보상 없이 전년도 연봉의 150%만 보상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동시에 만 35세 이상 신규 FA는 연봉 순위와 관계없이 C등급을 적용해 선수 보상 없이 이적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두 번째로 FA 자격을 얻은 선수는 신규 FA의 B등급과 동일하게 보상하고, 세 번째 이상 FA 자격을 취득하면 신규 FA의 C등급과 같은 보상 규정을 적용한다. KBO 리그 선수 최저 연봉을 2021년부터 2700만 원에서 3000만 원으로 올리는 안 역시 포함했다. 이 내용이 공개된 뒤 선수협이 “역시 귀족 선수들만을 위해 일하는 단체가 아니냐”는 비난에 휩싸인 이유다. KBO 고위 관계자는 “저액 연봉 선수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많도록 제도 개선안을 준비했다”며 “선수들이 리그 전체 성장을 위해 전향적으로 검토하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선수협은 총회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지난 2일 서울 한 호텔에서 열린 총회에서 유효투표수 346표 중 찬성 195표, 반대 151표로 샐러리캡(총연봉상한제)을 제외한 KBO 제도 개선안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마침내 변화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FA 제도 도입 이후 가장 커다란 변화도 찾아오게 됐다. 선수협 회장인 이대호(롯데)는 이후 인터뷰에서 “KBO의 개선안을 수용하지만, KBO는 샐러리캡에 관해 명확한 금액을 제시하지 않았다”며 “KBO의 보충안 내용을 검토한 뒤 최종 수용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