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각 지연시 칸서스는 ‘지주사 전환’ 숙제…산은은 KDB생명 가치 떨어져 손실 커져
서울 용산구 KDB생명보험 본사 전경. 사진=최준필 기자
산은은 11월 초 투자의향서(LOI)를 접수받아 숏리스트를 작성, 올해 안에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최근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있고, 보험업의 업황 자체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인수 의향을 밝히는 기업이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보험사 M&A시장에 푸르덴셜생명과 더케이손해보험 등 ‘알짜’ 매물이 속속 등장했고, MG손해보험, 동양생명보험, ABL생명보험 등도 잠재적인 매물로 꼽히고 있다. 이에 따라 KDB생명은 상대적으로 후순위로 밀린 모양새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반드시 매각을 성사시키겠다는 것이 산은의 의지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지난 4일 산은 본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KDB생명 매각과 관련 “시장에 매물로 내놓은 걸로 1차 목표는 달성했다고 본다”며 “시장이 가격을 맞추면 따라갈 생각”이라고 전했다. 이 회장이 ‘시장 가격’을 강조한 것은 가격이 기대를 밑돌아도 이번만큼은 매각을 성사시키겠다는 의지로 읽혔다.
산은은 KDB생명 매각을 통해 이익은커녕 투자한 원금도 회수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실제 KDB생명 인수 의향을 보인 사모펀드(PEF) 등이 제시한 가격은 산은이 기대하고 있는 매각가 6000억 원을 크게 밑돈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서는 KDB생명 매각가를 낮게는 2000억 원까지도 보고 있다. 산은이 그동안 투입한 1조 원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산은 관계자는 “인수의향이 있는 곳의 지원을 계속 받고 있는 중”이라며 “이동걸 회장도 강조했듯 가격보다는 매각이 성사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KDB생명 매각 지연으로 자산운용사 칸서스자산운용도 곤란한 상황에 몰리고 있다. 이번 매각 대상은 KDB칸서스밸류PEF 지분 26.93%와 자회사인 특수목적법인 KDB칸서스밸류유한회사 지분 65.80% 등 총 92.73%(8800만여 주) 및 경영권이다. 최대주주인 KDB칸서스밸류PEF는 산은이 68.20% 지분으로 최대주주에 올라있고, 칸서스자산운용도 2.47%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2010년 금호생명(현 KDB생명)이 시장에 매물로 나오자 칸서스자산운용이 인수자로 나섰다. 하지만 투자자 모집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인수 실패 가능성이 제기됐다. 그때 산은이 공동인수자로 나섰다. 이해 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대대적인 공기관 민영화 계획을 발표하면서 산은 역시 물밑에서 민영화 작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산은 입장에서도 금융지주사 요건을 갖추기 위해선 생명보험사가 필요했다. 칸서스자산운용 측에서는 추후 민영화된 산은이 KDB생명 지분 전체를 인수하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산은은 칸서스자산운용과 PEF를 구성, 금호생명 인수를 완료했다.
하지만 2013년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며 공기업 민영화 계획이 재검토에 들어가면서, 산은의 민영화도 무산됐다. 이에 따라 산은은 비주력 자회사 매각에 나섰는데, KDB생명도 그 명단에 포함됐다.
칸서스자산운용이 입주해있는 서울 여의도 SK증권 건물 전경. 사진=고성준 기자
그러는 사이 칸서스자산운용이 KDB생명 지분을 보유한 지 10년이 가까워지고 있다. 문제는 PEF 형태로 KDB생명 지분 보유한 지 10년이 넘으면서 금융지주사 요건을 갖추지 않으면 금융당국과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지주사가 아닌 형태로 금융사를 보유할 수 있는 기간은 최대 10년이다. 일종의 유예기간을 주는 셈이다. 그 전에 금융지주사에 매각을 하든지, 금융지주사의 요건을 갖추라는 것이다. KDB생명의 경우 유예기간은 오는 2020년 2월까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칸서스자산운용은 오는 2월까지 KDB생명 매각이 완료하지 않으면 금융지주사 요건을 갖춰 등록을 해야 한다. 아니면 금융지주사법 및 공정거래법상 제재를 받을 수도 있다”며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매각하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KDB생명처럼 PEF가 10년 넘게 회사를 보유한 경우는 흔치 않다”며 “이들 입장에서는 매각이 이뤄지지 않으면 금융위에서 유예기간을 연장해 주는 등 법적인 해석을 내려주는 게 가장 좋은 시나리오일 것”이라고 귀띔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