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출입기자 베넷 ‘프리 멜라니아’ 출간 “각방생활이 오히려 결혼 지속 동력…영부인 패션 많은 의미 함축”
최근 CNN의 케이트 베넷이 출간한 책 한 권이 미국 서점가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73)의 영부인인 멜라니아 트럼프(49)에 대한 비공식 전기다. 그동안 수수께끼 같은 인물로 여겨졌던 멜라니아에 대해서는 사실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워낙 언론과 대화도 하지 않는데다 조용한 성향 탓에 이런저런 추측과 설들만 무성했다. 이런 점에서 베넷의 전기는 주목할 만하다.
과거 수년간 백악관 출입기자로 일했던 베넷은 특히 트럼프 부부와 그 가족에 초점을 맞춰 취재를 해왔으며, 이에 따라 멜라니아를 둘러싼 추측과 소문에 대해 누구보다 확실하게 응답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를테면 슬로베니아에서 보낸 유년기와 청소년 시절은 어땠는지, 백악관에 입성한 후에는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백악관에서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인지 등에 대해 다루고 있다. 과연 멜라니아는 어떤 인물이며, 백악관에서 그 존재감은 어느 정도일까.
멜라니아 트럼프의 비공식 전기 ‘프리, 멜라니아’가 미국 서점가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처럼 멜라니아를 향한 걱정과 우려의 시선을 보냈던 사람들은 “멜라니아는 집에 갇혀있는 죄수와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하면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구조 신호를 보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아마 베넷 역시 이를 의식했던 듯 책 표지사진으로 취임식에서의 멜라니아 사진을 택했다. 이와 관련, 베넷은 책에서 트럼프 부부가 현재 각방을 쓰고 있으며, 심지어 다른 층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현재 트럼프는 백악관 2층의 마스터 침실에서(트럼프는 잠을 잘 때면 꼭 문을 잠그도록 지시한다), 그리고 멜라니아는 3층에서 잠을 자고 있다. 멜라니아가 머물고 있는 이 공간에는 방이 두 개 있으며, 과거 오바마 정부 시절에는 미셸 오바마의 어머니인 마리안 로빈슨 여사가 사용했다.
베넷은 트럼프 부부의 이런 각방 생활에 대해 자신의 사견을 덧붙였다. 요컨대 만일 트럼프 부부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도록 강요당했다면 오히려 둘의 결혼은 오래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베넷은 책에서 “트럼프는 과거에는 전 부인들과 각방을 쓰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다만 지금보다(14년) 더 오래 결혼생활을 지속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트럼프는 백악관 2층에서, 멜라니아는 3층에서 자고 있다. 이런 각방 생활이 오히려 둘의 결혼을 오래 지속하게 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영부인의 패션에 관해서는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고 베넷은 소개했다. 베넷은 “멜라니아를 나름 오랜 기간 취재하면서 느낀 사실은 그가 하는 모든 행동에는 의미가 있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그가 입는 옷까지도 의미가 있었다”고 적었다.
가령 2016년 10월, 두 번째 대선후보 TV 토론회가 열리던 날 입고 등장한 진분홍색 블라우스가 그랬다. 당시 멜라니아가 착용했던 이 블라우스는 ‘구찌’ 제품으로 가격은 1100달러(약 130만 원)였다. 하지만 문제는 가격이 아니었다. 논란은 다른 데서 불거졌다. 바로 목까지 높이 올라온 스타일과 커다란 리본에 있었다. 이런 스타일의 블라우스는 보통 전문직 여성이나 일하는 여성을 상징한다. 가령 마거릿 대처 여사가 즐겨 입었던 스타일이기도 하며, 1980년대 영화 ‘나인 투 파이브’에서는 사회에서 치열하게 일하는 직장 여성을 연기한 제인 폰다가 비슷한 스타일로 등장한 바 있다.
이에 당시 언론들은 멜라니아가 의도적으로 이런 스타일을 택했다고 수군거렸다. 이유인즉슨, 토론회 이틀 전 불거진 녹취 테이프 파문 때문이었다. ‘액세스 할리우드’가 독점 공개했던 이 녹취에서 트럼프는 여성의 성기를 움켜잡았다는 등 성차별적인 발언을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있었다. 이 발언은 대선 당시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고, 이에 많은 사람들은 멜라니아가 의도적으로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의미로 침묵의 항변을 한 게 아닐까 추측했다.
베넷은 또한 2018년 국정연설에서 멜라니아가 입고 등장한 흰색 바지 정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에 대해 베넷은 “트럼프 부부의 사이가 나쁠 때마다 멜라니아가 바지정장을 입는다는 소문이 있다. 왜냐하면 트럼프는 여자들이 몸에 꽉 끼는 짧고 섹시한 여성스러운 원피스를 입는 걸 좋아하기로 악명이 높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논란을 일으킨 멜라니아의 4만 5000원짜리 ‘자라’ 재킷. ‘난 신경 안 써, 넌?’이라는 문구가 쓰여진 이 재킷을 이방카에 대한 조롱의 의미로 입었다고 저자는 책에서 설명했다. 사진=AP/연합뉴스
하지만 지금까지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멜라니아의 의상은 따로 있다. 2018년 텍사스주 멕시코 접경지역에 있는 이민자 아동 수용시설을 방문할 때 입었던 야상 재킷이었다. 군청색인 이 재킷은 SPA 브랜드인 ‘자라’의 제품으로, 가격은 39달러(약 4만 5000원)였다.
논란이 된 부분은 재킷 뒷면에 크게 쓰여 있던 ‘난 신경 안 써, 넌?(I REALLY DON‘T CARE, DO U?)’이라는 문구였다. 당시 이를 두고 설왕설래가 오가자 멜라니아의 공보 담당관인 스테파니 그리셤은 “그저 재킷일 뿐이다. 그 어떤 숨겨진 메시지는 없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를 두고 다양한 추측을 제기했다. 가령 트럼프를 향한 발언이라는 둥, 이민자 아동을 향한 메시지라는 둥, 자신에게 비판적인 언론을 향한 비난이라는 둥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하지만 베넷은 책에서 조금은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베넷의 주장에 따르면, 문구의 표적은 다름 아닌 트럼프의 장녀인 이방카였다.
이에 대해 베넷은 책에서 “나는 이 재킷이 이방카를 향한 조롱이라고 믿었고, 지금도 그렇다”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멜라니아가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 즉 패션으로 이방카를 비난했다는 의미다. 평소 비싼 디자이너 브랜드를 즐겨 입던 멜라니아가 갑자기 이방카가 종종 입는 저렴한 ‘자라’의 재킷을 입었다는 사실부터가 그랬다.
그러면서 그 배경에 대해서는 이방카가 자신의 공로를 가로챘다는 불편한 심기가 담겨 있었다고 지적했다. 당시 트럼프는 불법적으로 국경을 넘어오다 체포된 이민자 부모와 그 자녀들을 격리 수용하는 정책을 내놓았다가 안팎으로 거센 비난을 받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얼마 후 트럼프는 비난에 못 이긴 듯 기존의 입장을 철회했으며, 당시 언론에서는 트럼프를 설득한 인물이 바로 이방카였다고 보도했었다.
멜라니아는 열한 살 차이인 의붓딸 이방카와 “아주 가깝지는 않은 사이”라고 한다. 사진=EPA/연합뉴스
하지만 사실은 달랐다고 베넷은 책에서 말했다. 베넷에 따르면, 이방카와 멜라니아 모두 트럼프를 설득하긴 했지만 실제 트럼프가 입장을 바꾸도록 설득한 결정적인 인물은 바로 멜라니아였다.
의붓딸과 새엄마 관계인 이방카와 멜라니아의 사이에 대해서 베넷은 “다정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가깝진 않다”고 묘사했다. 멜라니아가 트럼프와 결혼했을 당시 이방카의 나이는 스물세 살이었으며, 둘의 나이 차이는 열한 살이다.
베넷은 이방카의 잦은 해외순방 역시 멜라니아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백악관 선임 보좌관으로 일하고 있는 이방카는 보좌관 자격으로 아버지의 해외순방에 종종 동행하고 있으며, 이런 까닭에 영부인과 겹치는 역할을 맡기도 한다. 사정이 이러니 둘 사이에 종종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고 말한 베넷은 책에서 “소식통에 따르면, 자신의 영역을 이방카가 침범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멜라니아에게 그런 동행은 편안하기에는 너무 가까운 거리다”라고 전했다.
또한 베넷은 2018년 5월, 신장질환으로 수술을 받았던 멜라니아의 건강이 언론에 보도된 바와 달리 사실은 꽤 심각한 수준이었다고도 소개했다. 당시 백악관은 “영부인이 ‘양성 신장질환 치료를 위한 색전술을 받았다”고 밝혔지만 사실 멜라니아의 측근들은 신장을 적출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크게 걱정했었다.
이와 관련, 베넷은 “멜라니아의 수술은 절대 간단하지 않았다. 신장 색전술은 위험하고 복잡한 수술이었다”면서 “가까운 친구들에 따르면, 멜라니아는 수술을 받기 전까지 오랜 기간 고통스러워했으며, 만약 제대로 회복을 못할 경우에는 신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베넷은 다른 한편으로는 멜라니아의 ‘기술’이 부족하다는 점을 여러 차례 지적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이렇다 할 배경이 없다는 것이다. 가령 명문 프린스턴대학을 졸업한 미셸 오바마나 변호사 출신인 힐러리 클린턴에 비해 멜라니아는 스스로 자신을 둘러싼 언론을 통제할 수 있는 ‘기술’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점이야말로 멜라니아의 대외활동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베넷은 말했다.
이런 까닭일까. 멜라니아는 대신 다른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연례행사인 백악관의 크리스마스 장식이나 부활절 축제인 ‘이스터 에그 롤’ 같은 행사들이다. 백악관의 주요 행사를 직접 감독하고 테마를 기획하는 데 큰 관심을 갖고 있는 멜라니아는 여기에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한다. 하지만 이 역시 종종 논란을 불러일으키긴 마찬가지였다.
멜라니아가 디자인한 크리스마스 트리. 백악관을 핏빛으로 물들였다.
가령 첫해 선보인 빨간색 크리스마스트리가 그랬다. 멜라니아는 5개월 동안 백악관의 크리스마스 장식 디자인에 골몰했고, 그 결과 백악관을 핏빛으로 물들였다. 이런 이례적인 빨간색 크리스마스트리를 보고 경악한 누리꾼들은 각종 패러디와 비아냥을 쏟아냈으며, 심지어 ‘영부인의 정신 상태는 과연 괜찮은가’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멜라니아는 이 논란에 대해 “우리는 지금 21세기에 살고 있다”는 짤막한 답변으로 대신했다.
그럼에도 베넷은 멜라니아가 사실은 매우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백악관 직원들을 친절하게 대하고 있으며, 문자를 보낼 때면 이모티콘도 즐겨 사용하고 있다. 이와 관련, 베넷은 “멜라니아는 종종 대변인인 그리셤에게 행복감, 실망감 또는 놀라운 감정을 전하기 위해 이모티콘을 자주 사용한다”라고 소개했다.
트럼프가 내년 재선을 앞두고 있는 시점인 만큼 과연 멜라니아가 앞으로 트럼프의 선거 운동에 어떤 역할을 할지도 관심사다. 다만 지금까지 보여 온 멜라니아의 조용한 모습에 비추어보건대 이번에도 전면에 나서지 않을 것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다만 그간 영부인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었던 미국인들에게는 아마도 이 책이 조금이나마 궁금한 점을 해소해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