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3구역 이어 반포·갈현에서도 논란 줄이어…공격적인 수주, 정부 규제 움직임과 충돌
정비사업 수주전에서 선전 중인 현대건설에 바람잘 날 없는 나날이 예고됐다. 사진은 2017년 9월 27일 열린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1·2·4주구) 시공사 선정 임시총회에서 시공사로 선정된 현대건설 임원들과 조합 관계자들이 손을 흔들어 인사하는 모습. 사진=박정훈 기자
“현대건설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반포주공 주민들에게 지키지 못할 조건을 제시해 거짓말을 해놓고, 같은 약속을 한남3구역에도 하고 있다.” 지난 11월 28일 열린 한남3구역 조합 총회 현장 앞에서 반포주공 주민들이 현대건설을 규탄하는 집회를 개최하는 이례적인 풍경이 연출됐다. 이들은 ‘현대 약속 어디 갔나’ ‘현대설계 어디 있나’ 등의 피켓을 들고 현대건설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날 피켓을 들고 현대건설을 규탄한 반포주공 주민들은 ‘반포주공 1단지 1·2·4주구 재건축조합 발전위원회’ 소속이다. 비상대책위원회 격인 발전위원회는 현대건설이 무이자 이주비 대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발전위 주장에 따르면 당초 현대건설은 입찰제안서를 통해 모든 조합원들에게 무상 이주비 7000만 원 지급을 명시했지만, 국토교통부가 위법 결론을 내려 제재하자 이를 시정했다. 그러나 이후 약속한 이주비 5억 원 무이자 대출 조건의 경우 불법 소지가 없는데도 이를 지키지 않았다.
발전위 소속 한 조합원은 “현대건설이 이주비와 특화설계 등 좋은 조건을 내걸어 선택됐지만, 선정된 뒤 돌변했다. 우리에게 제시했던 약속은 모두 지키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다른 사업장에서 수주전을 할 때에는 또 다시 우리에게 제시했던 것과 같은 이주비 지원 약속을 꺼내들고 있다”고 토로했다. 발전위는 서울 종로구 현대 계동사옥,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 건물 앞에서도 시위를 벌였다.
이에 대해 현대건설 관계자는 “조합원들 간 소송으로 사업이 중단된 상황이라 소송 결과를 기다리며 지켜보고 있다”며 “현재로서는 반포주공 관련 이주비 문제 등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거나 별다른 대응을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다”고 전했다. 현대건설 측의 이 같은 답변은 현재 반포주공 1단지 조합원 266명이 불공평한 분양 조건을 문제로 조합을 상대로 제기한 관리처분계획 무효확인 소송에 대한 설명이다. 이 소송에 대해 법원은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반포주공 1단지 재건축 사업은 10조 원에 달하는 사업비로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으로 불렸다. 현대건설은 GS건설과 치열한 수주경쟁 끝에 지난 2017년 9월 반포주공 1단지(1·2·4주구) 재건축 사업을 따냈다. 당시 두 건설사가 반포주공 사업을 따내기 위해 경쟁을 벌이면서 과열 논란이 불거지자, 국토교통부는 2018년 10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을 개정해 시공 외 재산상 이익 제공을 금지했다.
반포주공 1단지 수주 이후 현대건설의 수난이 시작됐다. 현대건설은 2018년 4월 재건축 수주 비리와 관련해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이에 앞서 강남권 아파트 재건축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조합원들에게 금품을 제공했다는 혐의로 경찰의 내사를 받았다. 경찰 조사 결과 현대건설은 반포주공 1단지 재건축 사업 시공권을 따내기 위해 조합원들에게 1억 1000만 원 상당의 선물과 금품을 제공한 정황이 드러났다.
반포주공 수주전 과열경쟁의 폐해 때문에 국토부가 개정한 도정법이 한남3구역 수주전에서 현대건설을 발목을 잡기도 했다. 현대건설은 GS건설, 대림산업 등 한남3구역 재건축 사업 입찰에 참여한 다른 건설사들과 함께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앞서 국토부와 서울시의 합동점검 결과 3사에 대해 총 20여 건의 위법사항이 확인됐기 때문. 검찰 수사결과 위법 판결이 나오면 3사는 2년간 정비사업에 대한 입찰 참가 자격이 제한되는 치명타를 입게 된다(관련기사 “왜 유독 우리만…” 정부 철퇴 맞은 한남3구역 재개발의 운명).
현대건설은 한남3구역 재개발사업과 함께 총 공사비 9200억 원 규모로 서울 강북권 재개발 대어로 꼽히던 은평구 갈현1구역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대건설은 지난 10월 11일 갈현1구역 입찰에 참가하면서 입찰보증금 1000억 원을 제출했다. 그러나 조합은 현대건설이 제출한 입찰제안서 건축도면 중 변경도면이 누락된 데다, 담보를 초과하는 이주비를 제안해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조합은 지난 10월 26일 대의원회를 열고 현대건설에 대해 입찰무효 및 입찰제한, 입찰보증금 몰수 결정을 내렸다.
이에 현대건설은 조합을 상대로 입찰무효 등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 12일 법원에 의해 기각됐다. 법원은 “입찰참여 안내서에 특정한 하자가 있는 경우 대의원회의 의결로 입찰을 무효화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며 “규정을 위반한 경우 채무자의 결정에 이의 없이 따르겠다는 이행각서를 제출하기도 한 점을 종합해 채권자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로 현대건설은 갈현1구역 재입찰에 참여할 수 없게 됐다. 입찰보증금 1000억 원에 대해서는 본안 소송을 통해 몰수 여부가 가려진다.
현대건설 측은 현재 본안 소송 진행 여부를 검토 중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판결과 관련해 법무팀 등에서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직까지 공식적인 입장은 나온 것이 없다”고 말을 아꼈다.
현대건설은 올해 1월 경기도 과천 주암장군마을 재개발을 시작으로 서울과 경기도, 대구, 청주, 인천 등 다수 지역에서 총 9건의 정비사업을 수주했다. 현재 출사표를 던져놓은 부산 사하구 감천2구역 재개발사업과 대구 수성구 수성지구 2차 우방타운 재건축사업 또한 공격적인 수주 전략에 힘입어 수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논란이 재현될 여지가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현대건설은 그간 규모에 비해 주택사업 비중이 높은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올해 브랜드 홍보를 강화하고 주택사업 수주에 공격적으로 뛰어드는 모습을 보였다”며 “현재 위법 여부에 대한 정부의 기준 자체가 애매한 상황이라 현대건설 같은 대형 건설사가 어려움을 많이 겪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건설업계 다른 관계자도 “현대건설은 업계 맏형 격이라 대형 프로젝트를 다수 수주한 것이 당연해보인다”면서도 “큰 건을 많이 맡은 만큼, 정부의 규제 강화에 따른 논란도 겪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화약고 같은 강남권 정비사업…곳곳서 법적분쟁 최근 서울의 굵직한 정비사업들이 저마다 갈등과 법적분쟁에 휩싸인 모양새다. 서초구 반포동 반포주공 1단지 3주구는 앞서 선정했던 HDC현대산업개발의 시공권을 박탈하고 연내 시공사 교체를 추진 중이다. 반포주공 1단지 3주구는 8087억 원의 사업비로 강남 재건축 대어로 꼽혔다. HDC현대산업개발은 2018년 7월 반포주공 1단지 3주구 재건축사업 수주에 성공했지만, 조합원들과 특화설계 등과 관련해 갈등을 빚었다. 결국 조합은 지난 1월 총회를 통해 시공사 선정 취소 안건을 가결했고, 현대산업개발은 총회 무효 가처분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현대산업개발의 손을 들어줬으나, 갈등은 계속됐다. 결국 지난 10월 현대산업개발을 반대하는 새 조합집행부가 선출됐다. 서초구 반포동 신반포 15차 재건축 조합 또한 기존 시공사인 대우건설과의 계약을 해지하고 시공사 교체를 추진 중이다. 신반포 15차 재건축 조합은 지난 5일 임시총회를 열고 대우건설과의 계약해지 안건을 가결하고 일반분양을 후분양할 것을 확정했다. 조합과 대우건설은 그간 공사비 증액 규모를 두고 이견을 보였다. 이에 대우건설은 총회 결의 무효 및 시공자 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다. 조합원 간 내분으로 법적 분쟁을 겪는 곳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다. 은마아파트는 서울 강남 재건축의 상징으로 꼽힌다. 은마아파트는 2003년 재건축 조합설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승인 받았지만, 아직까지 사업은 제자리걸음이다. 그 사이 조합원 간 내분은 더욱 심화됐다. 지난 8월에는 비상대책위원회 격인 은마소유자협의회가 재건축 추진위원장을 도정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최근에는 내년 재건축 추진위원장 선거를 앞두고 강남구청 개입 논란까지 불거졌다. 은마소유자협의회가 강남구청에 위원장 선거관리위원회 구성을 반대하는 서명을 제출했고, 구청이 이를 받아들여 선관위 구성을 위한 소집회의를 열지 말 것을 추진위에 통보했기 때문이다. 강남구청은 구청 차원이 아닌, 담당부서 차원에서 은마아파트 재건축과 관련해 대응책을 마련할 것으로 알려졌다. 여다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