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2025 전략’ 그룹 명운 걸고 61조 원 투자…국내 규제 등 장벽 뛰어 넘어야
현대차가 통합 모빌리티 플랫폼사로 전환을 꾀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이 지난 10월 15일 열린 미래차산업 국가비전 선포식에서 ‘현대차그룹 미래차 전략’을 발표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현대차는 12월 초 중장기 혁신 계획인 ‘2025 전략’을 발표하면서 내연기관 자동차 제조사에서 전기·수소차를 생산하는 글로벌 전동차 업체이자 모빌리티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복합 플랫폼 업체로 변신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현대차는 2020~2025년 전동화·모빌리티·자율주행 등 미래 기술 분야에 20조 원, 기존 사업 경쟁력 강화에 41조 원 등 총 61조 원을 쏟는다.
이러한 계획은 천문학적인 투자비용과 완성차 제조업체가 모빌리티 플랫폼업체로 거듭나겠다는 혁신안으로 시장의 관심을 끌었다. 스마트폰 하나로 통신과 쇼핑 배송 음식주문 영화관람 등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듯 현대차 플랫폼 하나로 모든 이동 수단과 차량 관련 서비스를 비롯한 복합 생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그림이다. 현실화할 경우 소비자들은 자율주행 모드는 물론 커넥티드 카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운전자 성향과 다양한 상황에 적합한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개인 맞춤형 음성비서도 이용할 수 있다.
차량뿐 아니라 생활에 필요한 각종 서비스도 누릴 수 있다. 앱으로 자동차 대여와 중고차·타이어 구매, 보험 가입은 물론 주유소·전기차 충전소·정비소·세차장 정보도 받아본다. 쇼핑과 음식 주문, 영상 스트리밍 등 생활 서비스는 물론 킥보드 택시 버스부터 기차 비행기까지 모든 교통수단을 하나의 앱으로 이용 가능하다.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아도 차량 전동킥보드 에어택시 공유서비스 등의 카셰어링과 대중교통 등 여러 교통수단을 조합해 이동 편의성을 최적화하는 다중 모빌리티 서비스다.
현대차가 모빌리티 플랫폼사로 탈바꿈하려는 이유는 제조만으론 생존이 힘든 탓이다. 현대차 전망이 밝지 않다. 자동차산업은 낮은 생산원가로 고품질 차를 만들어내는 것이 경쟁력인데, 현대차는 강성 노조의 파업 등에 따른 높은 인건비로 유수한 글로벌 제조사보다 생산성이 떨어진다.
반일감정에 따른 국산화 압박도 기술적 독립에는 긍정적이지만 기업 입장에선 부담이다. 일본산 센서나 수소차 제조에 필요한 탄소섬유 등은 현지에서 더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지만, 국산화 시 품질도 떨어지고 생산업체가 적어 가격이 비싸진다. 차 가격 상승과 대외 수출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한일관계 등 외교 상황이 우리나라 기업 수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데다 현대차는 강성 노조 입김으로 인건비를 낮추기도 어렵다”며 “전망이 아주 좋지 않다”고 봤다.
현대차의 해외 시장 점유율이 줄어든다는 점도 전망이 흐린 이유다. 현대차의 11월 판매량은 내수의 경우 6만 3160대로 전년 동월 대비 1.5% 줄었다. 해외 판매도 32만 9087대로 3% 감소했다. 국내 내수 침체, 사드 보복 사태 등 외교 갈등과 중국차 품질 향상에 따른 중국 시장에서의 점유율 하락 등이 이유다.
2021년 인도네시아 공장 신설 등 대체 시장으로 동남아를 택했으나 아세안 시장은 일본차 비중이 80%로 뚫기 쉽지 않다. 현대차 관계자는 “세계 경기 침체와 품질 향상에 따른 평균 보유 기간 연장으로 판매량이 정체됐다”며 “환경 규제로 친환경차 수요는 늘어난 만큼 전기·수소차 개발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차 판매 감소 추세는 기술 발달과 생활방식 변화로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업계는 예측한다. 미세먼지 등 환경문제가 중시되고 소유에서 공유로 소비패턴이 바뀌고 있다. 여기에 자율주행 발달로 차량 이용 효율성이 높아지면 차 구매 수요는 줄어든다는 것.
수요가 줄어들지 않더라도 지금처럼 품질 좋고 저렴한 차만으론 승부할 수 없다. 빅데이터와 AI(인공지능)로 이용자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차량이 앞으로 각광받을 것이란 주장이다. 강경우 한양대 교통물류학과 교수는 “많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경험과 학습을 쌓아 이용자 성향과 시공간적 상황 환경에 적합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마트한 차가 팔릴 것”이라고 관측했다.
현대차가 자율주행과 커넥티드부터 쇼핑 등 생활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플랫폼 업체로 거듭나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은 가운데 각종 국내 규제로 자율주행과 같은 신산업 진출이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낙연 국무총리(오른쪽)와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지난 1월 경기 화성시 현대·기아차 기술연구소에서 자율주행 수소전기차량에 탑승한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완성차 제조업체 현대차가 모빌리티 플랫폼사로 거듭나려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단순 제조 판매가 아닌 서비스 혁신으로 승부하겠다는 것. 강경우 교수는 “지금은 사람이 운전하니 가격 성능이 중요하지만 자율주행이 가능해지면 차량 내 업무 오락 등 다양한 활동이 가능하기에 차 안에서 얼마나 많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라며 “자율주행 커넥티드 서비스와 차 구매 관리를 비롯한 각종 생활 서비스를 하나의 플랫폼에 넣겠다는 것이 세계적 흐름”이라고 덧붙였다.
서비스 질을 높이려면 이용자를 더 정교하게 파악할 수 있는 방대한 데이터가 필요하다. 뒤늦게 플랫폼사로 전환하는 현대차가 모빌리티 업체 인수에 힘쓰는 이유다. 현대차는 동남아 최대 카헤일링(호출형 차량공유서비스) 업체 그랩과 인도 올라, 미국 미고, 호주 카넥스트도어, 국내에서는 마카롱 택시를 운영하는 KST모빌리티에 투자했다. 서울 제주 대전 등지에서 전동킥보드 전기자전거 공유플랫폼도 운영 중이다.
카카오와 타다가 사양산업인 택시사업을 하는 이유도 데이터 확보 차원이란 분석이다. 4차산업은 많은 데이터를 확보하고 딥러닝에 따른 시행착오를 거쳐 AI로 구현하는 것이 핵심인데 모빌리티는 이동에 따른 행동반경과 생활방식, 시공간 자료를 얻을 수 있어 데이터 축적에 효율적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국내 규제를 극복해야 하는 건 큰 숙제다. 우리나라는 법에서 허용한 것 외엔 모두 금지하는 포지티브 규제 체제다. 관련법이 미비한 신산업은 자유로운 추진이 어렵다. 현행법상 규제도 적지 않다. 예컨대 개인정보보호법상 실증운행을 통해 수집한 영상정보는 개인 동의 없이 활용할 수 없어 자율주행차가 도로를 달리며 수집한 영상에서 찍힌 인물이 누군지 인식될 수준일 경우 특정인을 확인할 수 없도록 비식별화 조치를 해야 한다. 현대차가 자율주행에서 미국 오로라·메타웨이브에 투자하거나 미국 자율주행업체 앱티브와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지난 11월엔 모빌리티 미국법인 모션랩을 신설하는 등 해외 위주로 사업하는 이유다.
이호근 교수는 “금지된 것만 빼고 자유롭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미국 등과 달리 우리나라 강점은 IT기술이지만 각종 규제가 산업과의 융합을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이유로 현대차의 통합 모빌리티 플랫폼 서비스도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먼저 실현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모빌리티 업계 관계자는 “규제가 많고 여론에 따라 정책이 바뀌는 등 국내 분위기가 투자에 불리해 현대차는 해외 위주로 신산업에 투자해 왔다”며 “국내에서는 일부 모빌리티 업체에 투자하고 기술 이전하는 정도로 서비스하지 않겠느냐”고 예측했다.
일각에서는 대형 자동차 제조사가 복합 모빌리티 서비스 업체로 덩치를 키울 경우 정비 중고차 보험 리스 등 중소 중견업체 영역을 침범해 충돌하는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현대차가 기존 중소 중견기업들이 영위하던 사업 분야로 진출해 영역을 침범하면 국내 시장에서 충돌이 생길 수 있다”며 “정부가 규제로 막기 전에 대기업 스스로 상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