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태 독주에 뿔난 조현아, 다른 주주와 손잡고 재선임 반대표 던진다면…
한진그룹이 조원태 회장 취임 7개월 만에 남매의 난에 휩싸였다. 필리핀 가사도우미를 불법 고용한 혐의를 받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지난 7월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는 모습. 사진=고성준 기자
#잠잠하던 조현아, 칼 빼든 이유는?
한진가 삼남매의 경영권 분쟁은 조양호 회장 별세 직후부터 예견됐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조 회장이 후계자 지목이나 자식들의 계열사 분담에 대한 언급 없이 갑작스레 눈을 감았기 때문이다. 조 전 회장 지분을 남매가 동일하게 나눠 가진 모습도 서로 견제를 위한 것으로 갈등이 내재함을 반증한다는 분석이다. 앞서 한진 일가는 지난 10월 고 조양호 회장의 한진칼 지분을 법적 상속 비율인 1.5(배우자) 대 1(자녀) 대 1 대 1로 나눠 상속받았다(관련기사 조원태 한진 회장 경영계획 ‘지분구조 함수’에 대입해보니).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 박주근 대표는 “3남매가 내부 갈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버지 지분도 똑같이 나눠 가진 것”이라며 “그간 외부 경영권 방어를 위해 갈등을 숨겨놨을 뿐 계열사를 나누는 과정에서 남매 간 분쟁이 발생하면 누구 하나라도 이탈해 다른 주주들과 손잡을 수 있는 구조”라고 관측했다.
조현아 전 부사장이 입장자료를 낸 것은 조원태 독주 체제에 대한 반발이자 2020년 주총을 앞둔 경고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우선 최근 인사에서 조 전 부사장의 복귀가 이뤄지지 않은 점이 직접적 원인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한진그룹은 11월 29일 조원태 체제 아래 첫 정기 임원인사를 단행했지만, 조 전 부사장은 명단에서 제외됐다.
당시 재계에서는 2020년 주총을 앞두고 KCGI(강성부펀드) 공세에 방어하려면 총수 일가가 힘을 합쳐 우호지분을 늘려야 하는 만큼 조 전 부사장 복귀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왔다. 조원태 회장도 지난 11월 19일 미국 뉴욕에서 한국 특파원과 간담회를 열고 “아버님 뜻에 따라 맡은 분야를 충실하기로 셋이 합의했다”며 가족경영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나 조 전 부사장 측은 입장문에서 조 전 부사장의 복귀 등에 대해 어떤 합의도 없었음에도 대외적으로 합의가 있었던 것처럼 공표됐다고 전면 반박했다.
임원 인사를 계기로 조 회장 체제가 견고해지면서 권력이 집중되는 점도 누나 조현아 전 부사장의 큰 반감을 산 것으로 보인다. 한진그룹은 이번 인사에서 임원 수를 20% 이상 줄였다. 고 조양호 전 회장의 최측근 서용원 (주)한진 사장과 강영식 한국공항 사장이 퇴임했고, 조 전 회장의 ‘오른팔’ 석태수 대한항공 부회장도 한진칼 대표이사 사장직만 유지한 채 물러났다.
대신 대한항공 우기홍 부사장이 사장에 올랐고, 이승범 전무 등 3명이 부사장, 박정우 상무 등 6명은 전무로 승진했다. 이를 두고 항공업계에서는 조양호 전 회장의 측근들을 조원태 회장 사람으로 물갈이한 세대교체 인사라고 해석했다.
박주근 대표는 “조현아 전 부사장의 복귀 무산에 대한 반발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며 “경영은 혼자 할 수 없는 만큼 자기 사람을 등용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임원 인사 이후 갈등이 표출된 모습을 보면 조 회장이 이번 인사에서 조현아 측 인사를 정리하고 자기 사람을 심는 등 정리 작업을 단행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추측했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도 “이번 임원 인사 폭이 적어 크게 손쓰지는 못한 것 같지만 조현아 측 중요 인물 몇몇은 손을 댔다는 얘기가 있다”고 귀띔했다.
조현아 전 부사장이 동생의 경영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후문도 나온다. 앞의 관계자는 “조 전 부사장은 삼남매 중 가장 먼저 경영에 참여해 호텔·레저 부문을 총괄하며 사업을 이끌어본 경험이 있다”며 “반면 조 회장은 아버지의 강한 실권 아래 배우는 단계였고 별다른 경영실적이 없다는 생각이 있다는 얘기가 많다”고 전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을 겨냥해 가족 간 합의 없이 경영권을 행사했다며 칼을 빼들면서 남매 간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지난 6월 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연차총회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모습. 사진=박정훈 기자
#2020년 한진칼 주총서 표 대결 가능성
조현아 전 부사장의 선전포고로 남매 간 분쟁의 서막이 오르면서 2020년 3월에 있을 한진칼 주주총회에 업계 시선이 쏠린다. 한진칼은 주총에서 조원태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을 처리한다. 조 회장이 주총 참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지 못해 연임에 실패하면 대표이사직을 내려놔야 한다. 지분 10%의 델타항공이 조원태 회장 우군으로 알려져 있으나 조현아 전 부사장이 델타를 포섭하거나 다른 주주 및 동생인 조현민 한진칼 전무와 어머니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 등 다른 가족과 손잡고 반대표를 던져 재선임을 막을 수 있다.
이 같은 가능성이 나오는 까닭은 총수 일가의 한진칼 소유 지분이 비슷한 탓이다. 조원태 회장은 6.52%, 조현아 전 부사장 6.49%, 조현민 전무 6.47%, 이명희 고문 5.31%를 보유했다. 조양호 회장 유족들과 특수관계인의 지분 합계도 28.94%에 그친다. 반면 한진 일가에 적대적인 KCGI는 지분 17.29%, 미국 델타항공 10%, 대호개발 등 반도건설 계열사 6.28%, 국민연금 4.1%를 보유했다. 총수 일가 중 누구 하나라도 이탈해 다른 주주와 결합하면 최대주주가 뒤바뀔 수 있다.
박주근 대표는 “KCGI와 델타 등에 접근해 주총에서 조 회장 연임에 반대표를 던질 수 있다”며 “이 밖에 그룹 내부 자료로 아킬레스건을 꺼내들며 국민연금의 도움을 받는 등 방법은 여러 가지”라고 예측했다. 박 대표는 이어 “법률대리인을 통해 입장발표를 한 것은 법적 사항도 검토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업계 다른 관계자도 “법무법인을 통했다는 것은 조 전 회장 유훈을 어기고 독단경영을 하는 등 조 회장 행동이 적절한지 법적 시비를 가리겠다는 뜻”이라며 “그러기 전에 원하는 요구를 들어달라는 압박”이라고 해석했다.
조원태 회장이 어떻게 대응할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가족 간 타협을 통해 사내이사 연임이란 급한 불부터 끄지 않겠느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조양호 전 회장이 2018년 3월 대한항공 주총에서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했으나 미등기 임원으로 경영권을 유지했듯, 조원태 회장도 연임 실패시 당장 경영권 박탈로 이어지지 않을 수는 있겠으나 타격이 적지 않다.
박주근 대표는 “사내이사 연임 실패는 등기이사에서 물러나 이사회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는 것으로, 엄밀히 말해 경영권을 잃는 건 아니다”라면서도 “다만 회장으로서 인정받지 못했다는 뜻으로 경영권 행사 명분이나 정당성 측면에서 큰 타격을 입을 수 있기에 조 회장으로선 가족 간 의견을 일치시키는 게 가장 시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조원태 회장이 자기 세력을 넓혀 조현아 전 부사장의 견제를 막아낼 것이란 의견도 있다. 조 회장은 대내외 행사와 인터뷰에서 그룹 총수로 나서며 이름을 알렸고, 최근 임원 인사로 친정체제를 공고히 했다. 앞으로도 내부 실무진을 포섭하는 한편 구조조정, 실적 개선을 통한 주가 상승, 배당금 인상 등을 통해 주주를 설득하면서 그룹 안팎으로 세력을 넓히려고 할 텐데 주총 3개월을 앞두고 다른 형제가 경영권을 탈환하긴 힘들다는 것.
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조 회장이 자기 체제를 공고히 다져온 데다 조현아·현민 남매는 여전히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며 “아울러 장남 승계 원칙이 지배적인 우리나라 정서상 누나와 동생이 주주들의 지지를 받긴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진그룹 측은 이와 관련, 공식 입장을 통해 “어려운 경영 환경에서 국민과 고객의 신뢰 회복과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며 “이게 곧 조양호 전 회장의 유훈”이라고 밝혔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