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두달 새 3배 이상 급등락 종목 잇따라…“내부 고발자 없으면 처벌도 어려워”
전형적인 주가조작 세력 개입에 따른 흐름이었다. 문제는 실패였다는 점이다. 최대주주 변경 및 신사업 아이템 추가를 시장에 제한적으로 흘리면서 개미 투자자를 유도하는 방식이었지만 ‘자금 동원’의 실패로 무너졌다. 그리고 이처럼 최근 급등락하는 종목들이 너무 많아지고 있는데 주가조작 세력 내에서도 ‘말’이 나올 정도로 혼탁해졌다는 우려도 나온다.
증권거래소 전광판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임준선 기자
CB(전환사채) 관련 큰손 가운데 한 명인 B 회장에게는 하루에도 수십 통의 전화가 온다. 주가를 ‘띄울’ 계획이니, 채권에 투자하면 수익을 보게 해주겠다는 제안이다. 시장의 다른 큰손 C 회장에게도 하루에 수십 명이 찾아오거나 전화로 “10억~20억 원을 투자해 달라”는 제안이 쏟아진다. 회사 인수 자금을 요구하는 게 가장 일반적이다.
이 과정에서 얼마나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웠는지가 투자를 결정짓는 대목이 된다. 실제 기자가 B 회장과 C 회장을 만나는 1시간 동안, 이런 제안 전화는 3~4통 이상 계속됐다. 하지만 B 회장과 C 회장이 하나같이 하는 얘기는 “최근 시장이 너무 지저분해졌다”는 점이다. 회사에 납입하기로 했던 자금 동원에 실패했다는 뉴스가 이젠 새삼 놀랍지도 않다는 것. 자금 동원 실패를 너머 ‘주주총회 연기’라는 공시가 나면, 주가조작 세력이 추진하던 계획이 실패했다는 것인데 이처럼 급등락을 반복하는 종목들이 급증하고 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A 사 말고도 최근 주가가 급락해 시장의 관심을 끌었던 미디어 관련 회사가 있다. 별다른 호재가 없었던 D 사 주가는 2019년 10월 10일 1700원대에 거래되다가 12월 초에는 1만 3000원을 돌파했다. 최대주주가 변경될 것이라는 공시 하나뿐이었지만, 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랐다. 개미 투자자들조차 “왜 오르는지 모르겠다”며 ‘묻지마 투자’를 할 정도였다. 인터넷 포털 종목 투자자 토론방에는 “주포(주가조작 세력을 일컫는 말) 형님 운전 실력 죽인다”는 칭송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계획은 일시적으로 틀어졌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이 과정에서 몇몇 투자자들이 투자 원금을 회수했는데, 이를 미리 인지한 세력들이 대거 주식을 처분하면서 주가는 5000원대까지 급락했다. 크게 세 세력이 뭉쳐 투자자들을 끌어 모았지만, 한 곳이 갑자기 ‘배신’을 하면서 계획이 틀어졌다는 후문이다. D 사 주가조작을 시도한 나머지 세력들이 새로운 투자자금을 확보해 다시 움직이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실제 최근 주가도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하지만 계획대로 ‘성공’할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라는 평이 나온다.
실제 B 회장과 C 회장 모두 “D 사로부터 제안을 받았지만 투자하지 않았다”면서 “하루 주가 상승폭이 30%로 바뀐 다음부터 시장에서 ‘장난질’을 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다. 매물로 나온 비상장사를 사들여 우회상장하는 등 주가를 몇 배로 튀겨서 돈을 벌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여기에 중국계 자금이 홍콩 등을 거쳐 대거 들어온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차트로만 보면 쉬운 주가조작. 1000원대 종목을 1만 원 넘게 올리면 단순하게 10배를 번 것으로 생각하지만, 많은 이해관계 세력들이 연결돼 있어 생각보다 힘들다는 게 큰손들의 설명이다.
최근 의도적으로 주가 관리에 나섰던 E 사도 그런 케이스다. 수만 원에 달하던 주가가 5분의 1토막 나면서 시장에 의도적으로 호재성 이슈를 풀었던 회사다. 하지만 당초 목표로 했던 주가까지 도달하는 데 실패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세력 사이의 이해관계 충돌이 주된 실패 원인이었다. 예상만큼 시장에서 반응을 얻어내지 못하자 일찌감치 떨어져 나갔다.
E 사는 그나마 성공적이다. 일부 종목은 아예 신사업 추진이라는 ‘계획된 뉴스’를 만들지도 못하고 무너졌다. 앞선 D 사도 다시 신사업 추진을 동력 삼아 주가를 올린다는 계획이지만, 이 과정을 알지 못하는 개미 투자자들의 손실은 엄청나다. 취재 결과 실패한 곳은 3~4곳이 넘는다.
주식 관계자들은 “무료로 주식 관련 정보를 준다는 문자에 회사 이름이 들어갔다면 돈을 빼내는 작업이 시작됐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그런 추세를 보인 F 사 관련 정보를 담은 문자 메시지. 사진=주식 관련 정보 문자 메시지
실제 4000원 이하에 매수하라고 대거 문자가 돌았던 F 사는, 문자가 돈 직후 5000원이 넘으면서 주가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그 뒤 “추가로 매수하라, 다시 올린다”는 메시지와 함께 급락을 이어갔다. 연말 1000원대까지 떨어졌는데 그 사이 기존 최대주주는 주가 하락에 따라 전량 반대매매로 지분을 다 털고 나갔다. 새로운 최대주주는 아직 확인이 되지 않았다고 공시한 게 F 사가 밝힌 내용이다.
앞서의 세력 관계자는 “상장사 하나를 가지고 성공하면 4~5배를 먹을 수 있다”며 “과거 ‘조작’ 공식에는 믿을 수 있는 투자자와 확실한 아이템이 필수였다면 최근에는 ‘돈’만 붙여서 올리려는 세력들이 너무 많다. 대주주가 ‘사모펀드’인 곳은 다 목적이 있는 곳”이라고까지 언급했다.
홍콩을 거쳐 들어오는 중국계 자금도 시장을 흐리는 데 한몫하고 있다. 몇몇 업체들은 아예 중국 국적 소유자들이 임직원의 이름을 올리기도 했는데, 이들은 중국 관련 시장 확대나 우회상장 이슈를 통해 주가를 의도적으로 띄우는 방식이다. 앞서의 B 회장은 모두 “최근 중국 자금들이 대거 들어와 1년 동안 이자와 수수료 개념으로 20% 안팎을 받아 챙겨가고 있다”며 “사업을 영위 중인 상장 법인도 피해를 보고, 개미 투자자도 피해를 보는 구조가 더 심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주가를 띄우려고 ‘거짓말’을 하지 않은 이상 처벌이 어려운 게 현실이다. 금융범죄 수사 경험이 많은 검찰 출신 변호사는 “명백하게 사기를 쳐서 주가를 띄운 게 아니라면 처벌이 불가하다”며 “결국 횡령, 배임 정도밖에 처벌이 안 되는데 이마저도 내부 고발자가 없으면 힘든 게 수사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