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YP 사옥 찾아 “나연 어딨나” 캐묻고, 비행기 동승해 소란 피우다 제지당해
독일인 스토커에 시달리는 트와이스 멤버 나연. 사진=박정훈 기자
지난 1월 8일 JYP엔터테인먼트는 나연의 스토커 독일인 A 씨에 대해 업무방해죄를 적용, 서울 강남경찰서에 형사고발했다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전날인 7일에는 서울중앙지법에 A 씨에 대한 접근금지가처분 신청도 했다.
JYP 측은 “스토커 본인에게 절대 접근하지 말 것을 이미 수차례 경찰관 입회하에 경고한 바 있다”며 “그럼에도 스토커는 이를 무시하고 급기야 지난 1일에는 해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는 비행기에도 탑승, 나연에게 또 접근을 시도해 기내에서 큰 소란을 야기했다”고 형사 고발 이유를 밝혔다. 앞서 JYP는 트와이스 팬덤으로부터 A 씨와 관련한 제보를 받고 그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A 씨에 대한 이야기가 국내에 알려진 것은 2019년 9월이다. 자신을 독일인이라고 소개한 A 씨는 같은 해 10월과 12월께 한국을 찾았다. “나연을 만나고 싶다”는 게 그의 한국 방문 목적이었다. 당시 JYP 사옥을 방문해 나연의 행방을 물었으나 직원들은 “나연은 여기에 없다”며 A 씨를 돌려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A 씨는 JYP 사옥 인근의 카페와 식당 등을 돌며 나연의 행방을 찾기 시작했다. 그를 단순히 ‘트와이스를 좋아하는 외국인 관광객’이라고 생각한 일부 가게에서 나연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심지어 나연이 거주 중인 건물까지 A 씨에게 알려준 사람도 있었다. 이처럼 단편적인 정보를 짜맞추면서 A 씨는 계속 나연의 주변을 맴돌았다.
‘2019 SBS 가요대전’ 레드카펫에 선 트와이스. 사진=고성준 기자
이 과정에서 A 씨는 나연의 브이라이브 등 일상생활을 담은 영상을 보고 나연이 들렀던 가게를 전부 찾아다니기도 했다. JYP 인근의 한 가게 점원은 이와 관련해 “지난해 말 한 외국인 남성이 우리 가게에 와서 ‘나연이 이곳에 자주 오나’라고 물은 적이 있다”며 “해외 팬들이 많이 오기 때문에 그런 부류라고 생각했고 잘 모른다고 대답하니 그냥 나갔다. 다른 가게들도 몇 군데 들렀다고 들었다”고 설명했다.
A 씨가 단순한 해외 열성 팬의 수준을 넘어서 스토커로 낙인찍힌 것은 그의 유튜브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12월 한국을 방문한 뒤 나연을 찾아 헤매는 것을 그대로 촬영해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렸다. 멤버들의 숙소, 나연이 자주 방문하는 카페와 미용실을 언급하거나 사진을 찍어 영상에 올리는 모습에 팬덤은 물론 JYP 측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사옥 인근에 머물다 다른 트와이스 멤버들에게 접촉하려 한 A 씨에 대해 직원들은 다소 강경하게 대응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마찰을 빚은 후 A 씨는 인근 경찰서를 들러 “JYP 측이 나에 대해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있고 나와 나연의 만남을 방해하려 한다”며 JYP를 고발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나연에게 직접적인 신변의 위협이 생긴 것은 지난 1월 1일의 일이다. A 씨가 나연이 타고 있는 비행기에 올라 탄 뒤 나연에게 접근하려다 매니저에게 제지를 당한 것이다. 충돌이 생기기 직전 트와이스 멤버 가운데 한 명이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A 씨를 겨냥해 ‘집에 돌아가주세요, 제발 그만해 주세요’라는 내용의 글을 올리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일 트와이스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
실제로 A 씨의 행위는 단순히 나연에게 SNS로 연락을 취하는 것에서 △JYP 사옥을 방문해 나연의 일정을 캐물은 것 △나연이 방문한 가게를 찾아 자신의 명함과 편지를 나눠주며 ‘나연이 오면 알려 달라’고 요구한 것 △다른 멤버와 매니저에게 접근한 것 △나연의 귀국편을 미리 알고 나연에게 접근한 것 등 점점 과감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A 씨는 이에 대해 “만일 나연이 내게 ‘이런 관계를 원하지 않는다’고 직접 거절한다면 그 의견을 존중해서 독일로 돌아가겠다고 JYP 측에 수차례 말했다”며 “그런데 나연이 내게 직접 말한 것이 없지 않나. JYP도 이 사실을 알면서 왜 나연이 말을 하지 못하게 막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반박했다. 접근금지가처분신청 및 고발 건과 관련해서도 “JYP 측이 무슨 조치를 취하든 나연에게서 직접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면 어떤 것에도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2007년 국내에서 외국인이 자신에게 잘 대해준 여성을 집요하게 스토킹하다 검거돼 추방된 사례가 있다. 국내 첫 외국인 스토커 검거 사례다. 당시 이 스토커에게 적용된 혐의는 정보통신 이용 촉진 및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이었다. 한 여성에게 “결혼하자” “남편과 이혼하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와 전화를 수백 차례에 걸쳐 보내면서 불안감을 조성했다는 혐의였다.
이처럼 외국인의 스토킹은 직접적으로 얼굴을 맞댄 피해보다 문자메시지나 전화 통화, SNS 쪽지 및 계정 해킹 등을 통한 간접적인 사례가 대다수다. 더욱이 이들을 검거하더라도 경범죄로만 처벌되기 때문에 ‘강경 대응’에 나선다고 해도 성에 차는 처벌을 받아낼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앞서 JYP는 2019년 7월께 소속 가수인 2PM의 해외 스토커에 대해서도 법적 대응에 나선 바 있다. 이에 대해 JYP 측은 “2019년 초 멤버의 피해 상황에 대한 자료를 수집해 형사고소했으나 SNS를 통해 이뤄진 범법행위에 대한 증거 수집 및 협조 등이 어려워 실질적인 처벌이 진행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런 가운데 최대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피해 사실을 다시 취합해 재차 고소에 이르게 됐다는 것이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K팝이 해외에서 인기를 끌면서 해외 사생팬, 스토킹 피해도 어마어마하게 늘어나고 있다”며 “이들 사이에서는 연예인의 거주지 정보나 연락처, 휴일 동선 등 개인 정보까지 공유되고 있어 신변에 위협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미 해외에서는 비슷한 사례로 연예인이 목숨을 잃거나 물리적인 피해를 입은 경우가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