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화할 줄 몰랐다, 사육공간 부족”…멸종위기 원숭이 거래까지 드러나 도마위에
2019년 9월 서울대공원이 집단 폐사시킨 국제적 멸종위기종 그물무늬왕뱀. 사진=서울대공원 홈페이지
세계에서 가장 큰 뱀으로 알려진 그물무늬왕뱀은 남아시아 지역이 주서식지로 야생에서는 몸길이가 7m까지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밀렵꾼의 사냥으로 개체수 보존이 어려워 ‘야생 동·식물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 2)에 따라 국제적으로 보호를 받고 있다. 그물무늬왕뱀은 1984년 서울시 산하 서울대공원 개관부터 지금까지 관람객이 몰려드는 인기 동물이다. 2019년 12월에는 이달의 동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9년 6월 서울대공원에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국제적 멸종위기동물인 그물무늬왕뱀이 인공증식, 즉 번식에 성공한 것이다. 그동안 서울대공원은 기존에 보유한 그물무늬왕뱀이 죽으면 새 개체를 들여오는 방식으로 개체 수를 유지해오고 있었다. 이전에도 암컷이 알을 낳는 경우가 있었으나 부화까지는 이르지 못한 까닭이다. 개체 간 번식이 이뤄진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번 번식으로 암컷 그물무늬왕뱀이 낳은 알은 총 33개. 이 가운데 유정란은 20개로 18개체는 정상적으로 부화를 마쳤고 나머지 2개체는 부화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30여 년 만의 경사였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예정된 부화가 아니었던 탓에 동물원 측에서 충분한 사육공간을 마련하지 못했다. 국제멸종위기종인 그물무늬왕뱀은 개체수가 늘어날 때마다 사육시설 넓이를 35% 늘리도록 돼있다. 서울대공원은 사육공간을 넓히는 대신 개체수를 조절하기로 결정했다. 가장 건강한 2개체만 정상사육하고 나머지 개체는 모두 얼려 박제하기로 한 것. 2019년 9월, 동물원 관계자는 부화를 마친 그물무늬왕뱀 16개체와 아직 부화하지 않은 알 2개를 냉동고에 넣는 방식으로 집단 폐사시켰다.
동물보호단체와 시민들은 반발했다. 동물복지 측면에서 서울대공원의 결정은 결코 윤리적인 처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동물자유연대 관계자는 “뱀의 특성상 수십 마리의 번식이 예상되고 부화 시 현 사육시설로는 법정기준을 초과할 것임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서울대공원은 사전대책 마련 없이 번식을 시도했다. 유정란임을 확인하고도 알을 빼어 부화를 막는 등 사전조치 없이 이를 방치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도 무심했다. 한 시민이 직접 서울시에 “서울대공원의 결정에 대해 조사해달라”는 민원을 제기했으나 서울시는 관련 민원을 서울대공원으로 이관해 답변하도록 했다. 서울시는 12월 “적정한 사육공간이 없으므로 불가피한 결정이었다. 냉동된 뱀은 박제해 보관하기로 했으며 알의 경우 모형 제작을 위한 교육연구용으로 사용될 것”이라는 답변과 함께 “내부 회의를 거쳤으므로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입장을 전달했다. 한편 서울대공원 관계자는 “당초 알려진 것처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전시는 예정된 바 없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환경부가 내놓은 입장은 이와 달랐다. 환경부가 직접 현장조사를 한 결과, 그물무늬왕뱀 폐사 과정과 결정에서 불법적인 요소가 있었음이 밝혀진 것이다. 환경부 한강유역환경청 자연환경과 관계자는 1월 7일 “정당한 사유 없이 살아있는 야생동물을 냉동고에 넣어 폐사시킨 것은 야생생물법 위반 사항으로 확인된다. 곧 수사기관에 고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시 말해 사육공간 미비는 폐사 결정의 정당한 사유가 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게다가 서울대공원이 그물무늬왕뱀의 출산과 폐사에 대해 환경부에 신고하지 않은 사실도 밝혀졌다. 환경부 관계자는 “해당 기관에서 폐사신고와 증식신고를 모두 미이행한 것으로 확인돼 행정조치 중”이라고 밝혔다. 야생생물법 제 16조 6항과 7항에 따르면 국제적 멸종위기종이 죽거나 질병에 걸려 사육할 수 없게 됐을 때에는 지체 없이 환경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환경부 장관에게 신고해야 한다. 증식한 때에는 국제적 멸종위기종 인공증식증명서를 발급해야 한다. 특히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멸종위기종이라면 증식 전 미리 인공증식 허가를 받도록 돼 있다.
일각에서는 서울대공원 측이 그물무늬왕뱀의 생태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이러한 상황을 초래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서울대공원 홈페이지에서 그물무늬왕뱀을 12월의 동물로 소개하면서 “한 번에 1마리의 새끼를 낳는다”는 표현을 사용한 까닭이다. 그러나 그물무늬왕뱀은 한번에 평균 20개의 알을 낳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해당 게시물은 홈페이지에서 삭제됐다.
최근 서울시 산하 서울대공원이 멸종위기종 알락꼬리여우원숭이를 실내체험동물원에 양도해 비판을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러한 해명에도 서울대공원을 향한 비판 여론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서울대공원이 미국동물원수족관협회(AZA) 국제인증을 받기 위해 멸종위기종인 알락꼬리여우원숭이를 체험동물원에 양도한 사실이 추가로 밝혀져 동물보호단체에서 연일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까닭이다.
1월 7일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이상돈 국회의원과 시민사회 단체 6곳(곰보금자리프로젝트, 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 피엔알, 동물권행동 카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이, 동물을 위한 행동, 동물자유연대)의 기자회견에 따르면 서울대공원은 AZA 인증 추진 과정에서 야외방사장에 방사되는 시간이 불충분해 인증 기준을 맞추지 못한 알락꼬리여우원숭이 21마리를 대구와 부산의 체험동물원으로 보냈다. 이후 서울대공원은 아시아 최초로 2019년 9월 AZA 인증을 받았다. 그물무늬왕뱀이 냉동고에서 무더기로 얼려졌던 시점이다.
동물권행동 카라 관계자는 “그물무늬왕뱀의 집단 폐사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에는 사육환경의 현실적인 측면을 고려한 처사라고 이해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나마 국내에서 가장 좋은 환경의 동물원이라고 알려진 서울대공원이 일부 유사동물원과 동물 거래를 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진 이상, 서울대공원의 사육환경 및 동물관리 실태에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