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지기 피의자, 사건 직후 피범벅 속옷 차림으로 뛰쳐나와 오열…범행 동기 ‘물음표’
사건이 발생한 A 씨의 오피스텔. 사진=황채영 인턴기자
12월 14일 서울 강서구 공항동 한 오피스텔에서 현직 경찰관이 피살된 채 발견됐다. 경찰은 최초 신고자이자 피해자의 친구로 알려진 A 씨(31)를 피의자로 특정하고 살해 혐의로 구속했다. 그러나 살해 동기에 대해서는 여전히 수사 중이다. 18일 MBN 보도에 따르면 경찰이 피의자를 상대로 최면수사를 벌였지만 명확한 살인 동기는 밝혀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의 핵심은 A 씨의 범행 동기다. 경찰은 아직까지 어떠한 수사 결과도 밝히고 있지 않지만 A 씨의 범행을 둘러싼 각종 의혹과 확인 안 된 주장들이 온라인을 떠돌아다니고 있다. 특히 16일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은 당시 사건에 대한 경위가 구체적으로 담겨 있었다.
주목할 만한 점은 글쓴이가 CCTV에 담긴 사건 직후의 정황을 구체적으로 서술했다는 점이다. 글쓴이는 “CCTV 확인 결과, A 씨가 피해자와 함께 어깨동무를 하며 A 씨 집으로 들어갔고, 둘이 집에 들어가고 30분 뒤 A 씨가 속옷 차림으로 피범벅이 되어 뛰쳐나왔다”고 주장했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글쓴이의 주장은 상당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사건이 발생한 12월 14일 새벽 1시 59분쯤 두 사람이 A 씨의 집으로 함께 들어가는 모습이 CCTV에 찍힌 것. 그로부터 40분 뒤인 2시 44분쯤에는 속옷 차림의 A 씨가 동일 오피스텔 옆 동으로 급하게 향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당시 A 씨의 몸에는 혈흔이 잔뜩 묻어 있는 상태였다.
속옷 차림으로 옆 동 오피스텔에 도착한 A 씨는 입고 있던 속옷을 벗어서 바닥에 내려놓은 뒤, 공동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오피스텔로 들어갔다. 해당 오피스텔은 A 씨의 여자친구가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일 사건 현장에 출동한 구급대원은 “A 씨가 14일 오전 10시 30분쯤 직접 119에 신고 전화를 했으며 현장에 가보니 A 씨가 오열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계획적 범행인가, 우발적 행동인가
문제는 사건 발생 직후 A 씨가 보인 알 수 없는 행동이다. 추운 겨울임에도 범행 직후 속옷 차림으로 여자친구의 집으로 뛰어갔다. 게다가 집으로 들어간 지 불과 40여 분 만에 벌어진 범행이다. 그럼에도 우발적 살인이 아닌 계획적 범행일 수도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반면 온몸에 혈흔이 묻어 있는 속옷 차림으로 오피스텔 옆 동으로 달려간 A 씨의 행동은 다소 비정상적으로 보인다. 심신미약 상태일 수도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전 서울경찰청 범죄심리분석관 배상훈 서울디지털대학교 교수는 A 씨의 직업을 근거로 계획범죄 가능성에 주목했다. 배상훈 교수는 “보통 승무원은 일반인에 비해 심리적으로 안정된 사람을 고용하는데 30분 만에 우발적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음주 상태였다고 하더라도 두 사람이 A 씨의 집으로 걸어올 당시 만취한 상태가 아닌 것으로 보이는 점, 경찰관인 피해자와 A 씨가 비슷한 수준으로 취해있던 것으로 보아 계획 범죄였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A 씨는 심신미약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A 씨가 한겨울에 속옷차림으로 나와 옆 동으로 이동한 것을 두고 ‘비정상적’이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A 씨는 현재 심신미약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신미약이란, 사건 당시에 피의자가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 있음을 의미한다. 평소 앓고 있던 정신 질환 등으로 인한 심신미약 상태였을 수도 있지만 음주, 마약성 약물 및 이에 준하는 약을 복용한 상태였을 수도 있다.
다만 A 씨가 승무원이었다는 점에서 평소 심신미약을 일으킬 수 있는 질환을 앓고 있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항공사는 ‘승객 안전 대응 미비’ 논란이 일어날 수 있어 가급적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의 직원을 승무원으로 고용하지 않으려 한다.
이에 대해 해당 항공사 관계자는 A 씨가 평소 별다른 약을 투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항공사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이번 사건으로 불거질 논란에 대해서는 인지하고 있다”면서 “평소 건강검진을 진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회사가 파악한 특이 사안이 딱히 없었다.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다거나 정신적 문제를 겪고 있었다는 말이 들려왔다면 회사 차원에서 추가 조사를 해봤을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배상훈 교수는 “심신미약 주장은 관련이 없다. 사고사로 몰고 가기 위한 재판전략일 뿐이다”고 했다. 그러나 심신미약을 주장한다면, A 씨가 알몸 상태로 집에 들어갔다는 점과 직업 특수성에 착안해 마약 투약의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배 교수는 “항공사 승무원의 경우 한번 비행하면 하루 이틀 정도 외국에서 체류한다. 실제로 외국에서 마약을 밀반입한 사례도 종종 있다”며 “이번 사건의 경우는 확증이 없기 때문에 경찰 수사 단계에서 마약 검사를 했는지가 관건일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강서경찰서 관계자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답했다.
사건을 수사 중인 강서경찰서 전경. 사진=황채영 인턴기자
#살인일까, 폭행 치사일까
이번 사건에 국민적 관심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A 씨에게 엄벌이 내려져야 한다는 여론이 대부분이다. 특히 A 씨의 행동에 고의성이 인정되는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살인죄와 폭행치사는 완전히 다른 범죄다. 만약 범행에 있어 고의성이 입증될 경우 형량은 최소 두 배 이상 차이가 날 수 있다는 게 전문가의 의견이다.
이에 대해 배 교수는 A 씨가 사건이 일어나고 8시간이나 지난 뒤에 신고한 점에 주목했다. 배 교수는 “안면 함몰과 손으로만 범행을 저질렀다는 최근 보도로 미루어 봤을 때, A 씨는 ‘정확히 말하면 살인은 아니고, 응급처치를 바로 하지 못해서 벌어진 것’이라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 결과적으로는 사람이 죽었지만 기도 질식에 의한 것임을 강조할 수 있다. 이것은 법정에서 정확히 다뤄져야 하는 내용이다”라고 말했다.
다솔 법률사무소 김운용 형사법 전문 변호사는 “현장에서 A 씨가 오열했다고 하는데 이런 행동이 죄책감으로 나온 후회인지, 아니면 범죄를 인정한 것인지 파악하긴 어렵다. 추가 수사를 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음주 상태에서 벌어진 우발 범행 주장에 대해서는 “심신미약이 인정되려면 피고인이 치료감호소에서 정신감정을 받아야 한다. 치료감호소는 통상의 기준보다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피고인에게 경증 정신지체와 같은 사유가 없다면 주취감경이나 심신미약을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건을 수사 중인 강서경찰서 관계자는 “제기된 모든 의혹에 대해서는 현재 수사 중인 사안이라 답변이 어렵다”고만 답했다. 다만 2년 넘게 피해자와 함께 일해왔다는 한 경찰 동료는 “장례식장에 갔는데, 가족이 매우 애통해하고 있다”는 말을 전하며 “확인되지 않은 추측성 글이 무차별적으로 나오는 것에 대해 유가족이 힘들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황채영 인턴기자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