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수익성 청신호 없이 ‘기업가치 10조 원’ 시장에서 인정해줄지 의문
외신 보도까지 나오면서 쿠팡 상장설이 또다시 힘을 받고 있다.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건물 전경. 사진=고성준 기자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9일(현지시각) 내부 관계자를 인용해 “쿠팡이 2021년 기업공개(IPO·상장)를 검토하고 있다”며 “기업 가치는 2018년 말 기준 90억 달러(약 10조 4517억 원)로 평가받고 있으며, 이미 상장을 위한 세금 구조 개편 등 작업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쿠팡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비전펀드로부터 2015년과 2018년 두 차례에 걸쳐 총 30억 달러(3조 5000억 원)를 투자받았다. 상장설에 대해 쿠팡은 검토를 해왔으나 구체적 시기와 나스닥 상장 여부는 결정된 바 없다며 부인하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쿠팡의 상장 시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당장 자금 수혈이 필요하지만 투자받을 ‘쩐주’가 없는 탓이다. 업계에 따르면 이 비전펀드에서 받은 투자금이 연내 소진될 전망이다. 소프트뱅크도 위워크 상장 실패와 우버 주가 폭락 등으로 지난해 영업 손실을 기록한 만큼 쿠팡에 자금을 추가 투입하기 부담스러울 것으로 보인다.
쿠팡의 사업모델은 꾸준한 자금 수혈이 필수적이다. 쿠팡은 2021년 완공을 목표로 3200억 원을 투자해 대구에 최첨단 대규모 물류센터를 짓는 등 물류 투자를 지속하고 로켓배송(익일배송)을 올 상반기 제주도까지 확대, 비수도권 새벽배송 주문 시간·품목도 늘리는 배송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로켓배송을 가능케 하는 직매입·직배송 사업 구조는 물류·배송체계 구축 및 운영비와 인건비 등을 고려하면 전문 물류업체에 위탁하는 것보다 사업 운영비가 2배 이상 든다. 지속적인 자금 수혈 없이는 사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업계 판단이다.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쿠팡은 물건을 팔수록 적자가 나는 구조인 데다 비전펀드에서 받은 자금도 올해 다 소진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커머스 경쟁도 치열해지고 납품단가 조절도 불가능해지면서 상황이 어려워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쿠팡 지분 절반을 보유한 비전펀드가 투자하지 않는 마당에 굳이 다른 회사가 투자해 개미지옥에 빠질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며 “자금 확보를 위해선 IPO가 불가피하다”고 관측했다.
최근 잇단 거물급 인사 영입도 상장을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쿠팡은 2019년 10월 미국법인 쿠팡 LLC 이사회 멤버로 케빈 워시 전 미국연방제도 이사를 영입하면서 눈길을 끌었다. 같은 해 11월엔 회계감사 및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보고를 담당했던 나이키·월마트·딜로이트 출신 마이클 파커를 쿠팡 최고회계책임자(CAO)로, 12월엔 피아트그룹·페루자저축은행 출신 알베르토 포나로를 최고재무관리자(CFO)로 영입하는 등 외부 수혈을 강화했다. 특히 같은 시기 카카오 IR 담당자를 스카우트하면서 상장설을 부각시켰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IPO 시도 시 투자자들을 만나 수익성을 강조해야 하는 만큼 IR 담당자를 스카우트한 모습은 상장을 준비 중이라는 뜻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어 “나스닥 시장은 아마존처럼 적자 기업도 성장성을 인정받아 상장한 전례가 있다”며 “쿠팡 모회사 쿠팡 LCC도 미국법인인 데다 최근 미국 출신 재무통을 많이 데려 왔다는 점에서 국내보다는 미국에서 상장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누적 적자 3조 원에 육박하는 등 열악한 재무구조 탓에 쿠팡이 상장에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쿠팡 직원들이 서 있는 모습. 사진=고성준 기자
문제는 실제 상장 가능 여부와 흥행이다. 증권가에서는 대규모 적자를 내며 수익성을 증명하지 못하는 현 사업모델로는 미국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기 힘들다고 본다. 당장 수익성을 끌어올릴 방안도 없다. 쿠팡은 막강한 구매력을 바탕으로 좋은 상품을 저가에 대량 매입하는 바잉파워가 약한 데다 물류·배송서비스 제공에 많은 자금이 투입되기 때문에 상품 판매로 남기는 차익보다 사업 유지비가 더 많이 든다.
실제 쿠팡 창업 이후 매출은 2013년 477억 9900만 원에서 2018년 4조 4227억 8800만 원으로 폭증했다. 그러나 순손실도 2013년 12억 6400만 원에서 2014년 1194억 3600만 원, 2015년 5260억 9300만 원, 2016년 5617억 9600만 원, 2017년 6735억 1300만 원으로 대폭 늘었다. 결국 2018년에는 순손실 1조 1130억 8500만 원을 기록하며, 누적적자가 3조 원이나 쌓였다. 덩치가 커질수록 적자도 커지는 사업구조인 셈이다.
수익성 개선 방안도 당장 보이지 않는다. IB업계는 쿠팡이 악순환 구조에서 벗어날 방법으로 풀필먼트서비스를 꼽는다. 풀필먼트서비스는 고객의 주문에 맞춰 물류센터에서 제품을 피킹·포장하고 배송까지 하는 일련의 프로세스를 담당하는 사업이다. 자사뿐 아니라 다른 이커머스 업체에 3자 물류 서비스를 제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수수료를 받아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쿠팡은 지난해 9월 택배면허를 반납했다. 풀필먼트서비스를 하려면 더 많은 물류창고와 배송기사·차량을 확보해야 하는 등 인프라 구축에 추가 투자가 불가피하다는 부담 때문에 택배면허를 반납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일각에서 제기된다.
IB업계 다른 관계자는 “우버는 상장했다가 주가가 많이 빠졌고 위워크는 상장을 시도했지만 수익성에 대한 의구심으로 실패했다”며 “최근 나스닥 시장의 상황을 보면 미국 투자자들도 더 이상 성장성만 가지고는 밸류에이션(가치평가)을 줄 수 없다고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풀필먼트서비스를 하려 해도 인프라 구축에 추가 비용이 필요한 데다 현재 쿠팡이 자사 물류도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해 아웃소싱을 주는 상황이어서 타사 물류까지 담당할 여력은 없을 것”이라며 “상장을 시도하더라도 가능할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현재 10조 원으로 매겨진 기업 가치가 거품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기업가치가 470억 달러로 평가됐던 위워크는 IPO 시도 과정에서 80억 달러로 떨어졌다. 앞의 IB업계 관계자는 “손정의 회장이 매긴 기업 가치와 실제 IPO 과정에서 받았던 평가는 괴리가 컸다”며 “쿠팡의 10조 원이라는 가치도 실제 공모시장에 올려놨을 때 인정해줄지 의문”이라고 했다.
독자적인 사업 모델을 통해 국내 1호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했다는 점에서 해외 시장에서 혁신성을 인정해줄 것이란 긍정론도 있다. 이커머스 업계 다른 관계자는 “출혈경쟁으로 밀어붙이는 모습에 초기에는 끝까지 갈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지만 전략을 유지하며 급속도로 컸다는 점에서 성장성을 인정할 만하다”며 “줄곧 해외 매체 인터뷰로 브랜드 관리를 잘해왔고 재무전문가도 잇달아 영입한 만큼 상장을 앞두고 수익성 제고에 나서지 않겠느냐”고 봤다.
업계는 쿠팡의 상장 여부는 향후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시장에 줄 수 있느냐에 달렸다고 보고 있다. 흑자전환까진 아니더라도 당장 적자 폭을 줄이는 데 성공한다면 볼륨을 키워 규모의 경제를 실현함으로써 미래 수익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큰 적자 규모는 단점이 되겠지만 기업 자체만 보면 빠른 물류 투자·로켓배송 등 특화 서비스로 급성장해 이커머스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받을 수 있다”며 “수익·효율성을 높이고 적자 폭을 줄여 수익성 개선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 관건”이라고 했다. 정 교수는 다만 “상장 후에는 시장 판단에 따라 객관적 가치평가가 이뤄지고, 이를 기반으로 주식을 사고파는 등 거래가 용이해진다”며 “글로벌 기업들의 쿠팡 인수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