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섹스·출산 의무” 인식 문제, 가출 아내 신상 공유도…제대로 된 지원정책 필요
베트남인 아내를 폭행한 혐의로 남편 A 씨(36)가 2019년 7월 광주지법 목포지원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19세인 후안 마이의 남편은 40대로 나이 차이가 컸다. 하지만 남편은 후안 마이를 보듬어주기보다 짜증과 화를 내기 일쑤였다. 학대와 폭력을 이기지 못한 아내가 고국인 베트남으로 돌아가려 하자 남편은 분노해 아내를 살해했다. 후안 마이는 갈비뼈가 18대나 부러진 채 19년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남편은 평소 알코올 문제가 있었고, 주취 폭력으로 벌금형 전과가 6회나 있었다. 죽기 전날인 2007년 6월 25일 후안 마이는 베트남어로 5장 분량의 편지를 썼다.
“당신과 저는 매우 슬픕니다. 제가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한국에서의 삶에 대해서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당신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당신은 왜 제가 한국말을 공부하러 못 가게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저는 당신이 일을 나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것을 먹었는지, 잠은 잘 잤는지 물어보고 싶어요. 당신은 가정을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일이고, 한 여성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르고 있어요. 좋으면 결혼하고 안 좋으면 이혼하고 그러는 것이 아니에요. 당신이 그렇게 하는 것은 한 사람의 남편으로서 진정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중략) 당신은 저와 결혼했지만, 저는 당신이 좋으면 고르고 싫으면 고르지 않을 많은 여자들 중에 함께 서 있었던 사람이었으니까요. 베트남에 돌아가게 돼도 당신을 원망하지 않을 거예요. 당신을 잘 이해해 주고 사랑해 주는 여자를 만날 기회가 오기를 바라요. 당신이 잘 살고 당신이 꿈꾸는 아름다운 일들이 이루어지길 바라요. (중략) 더 이상 무엇을 적을 것이 있고 말할 것이 있겠어요. 당신은 이 글씨 또한, 무엇인지도 모르고 이해하지도 못할 것인데요.”
재판부는 후안 마이 사건의 판결문에 통렬한 자기반성과 사회에 대한 비판을 적시했다. 판결문에는 이런 내용이 담겼다.
“노총각의 결혼 대책으로 우리보다 경제적 여건이 높지 않을 수도 있는 타국 여성들을 마치 물건 수입하듯이 취급하고 있는 인성의 메마름. 의사소통도 원활하지 않은 남녀를 그저 한 집에 같이 살게 하는 것으로 결혼의 모든 과제가 완성되었다고 생각하는 무모함. 이러한 우리의 어리석음은 이 사건과 같은 비정한 파국의 씨앗을 필연적으로 품고 있는 것이다. 19세 그녀의 편지는 오히려 더 어른스럽고 그래서 우리를 더욱 부끄럽게 한다. 이 사건이 피고인에 대한 징벌만으로 끝나서는 아니 되리란 소망을 해 보는 것도 이러한 자기반성적 이유 때문이다.”
후안 마이 살해사건은 전세계에 알려졌다. 경제적 빈곤국 여성의 참극, 최소한의 인간다움이 배제된 이주여성의 한국살이 실태가 후안 마이의 결혼생활에서 드러났다. 최근 결혼하는 부부 열 쌍 중 한 쌍은 국제결혼 커플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결혼이주자에 대한 편견과 배제, 차별과 학대가 반복된다.
2019년 7월 베트남 여성이 아들이 보는 가운데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는 영상이 공개돼 충격을 줬다. 베트남 현지에도 사건이 알려졌고, 베트남 아내에 대한 한국의 잔인한 대우와 차별에 국민적 공분이 들끓었다. 하지만 피해 여성의 결혼 전 연애사를 두고 신상털이가 벌어졌다. 여론은 사건의 본질인 가정폭력 대신 피해 여성의 ‘행실’에 주목했다. 심지어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한국 국적 취득을 목적으로 하는 외국인들을 추방해달라는 글이 게재됐다. 또 유튜브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피해 여성을 비방하는 콘텐츠가 줄을 이었다.
가장 활동이 활발한 국제결혼 커뮤니티이자 비영리 시민단체를 표방하는 ‘국제결혼피해센터’에는 국제결혼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남성들이 많다. 그런데 그들의 주장에선 뒤틀린 여성관과 왜곡된 가족관이 엿보인다. 피해자 가운데 다수는 돈을 주고 데려온 아내인 만큼 살림과 출산, 성관계와 사랑을 의무적으로 남편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전제를 갖고 있다. 만나고 일주일 만에 결혼을 해도 무조건적인 사랑을 기대하는 셈이다. 이런 탓에 수년간 결혼생활을 하다 이혼을 한 경우에도 계획적 사기 결혼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가출한 아내의 사진과 신상을 무분별하게 공유하는 사례도 많다.
국제결혼피해센터가 유튜브에 올린 ‘성관계 잘하던 우즈벡 아내 55일 만에 도주하다’ 영상이 대표적이다. 영상에는 가출한 아내를 둔 남성의 사연이 소개된다. 영상에서 진행자는 “아내분이 핑크색 작은 알약을 먹고 있었다. 피임약으로 보인다. 남편을 사랑한다면 피임약을 먹을 이유가 없다. 피해 남편 분을 보니까 잘생겼다. 아내가 성관계 안 할 이유가 없고 즐긴 거다”고 말한다. 여성이 가출이나 이혼을 요구하면 사기결혼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게 국제결혼 피해사례의 대부분이다.
2012년 ‘국제결혼피해여성들에 대한 출입국 당국의 인권유린 규탄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피켓시위를 하며 체류 연장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온라인에서 인기를 모은 베트남 아내와의 결혼 후기인 ‘쌀국수 아내 결혼 후기’에는 “베트남 여성은 성의식이 낙후되어 성경험이 풍부하고 처녀가 없다. 베트남 여성들은 자신이 제공해주는 것에 대해 보상받고 싶어 한다. 한국 신랑들은 어차피 결혼했으니까 성생활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베트남 남자는 저녁밥도 자기가 하고 여자가 퇴근하기를 기다려서 밥도 먹고 갖은 정성을 다 한다”와 같은 내용이 담겼다.
베트남 아내와의 결혼생활이 힘든 점에 대해 공감을 얻으려고 쓴 글에는 도리어 작성자를 질타하는 댓글이 달렸다. “애초에 사랑 없이 시작한 결혼인데 여자가 하루아침에 사랑을 주는 게 불가능하다”, “남자가 늦은 나이에 한참 연하와 결혼했는데 아내가 왜 지극정성으로 남편을 돌볼 것이라 생각하는지” 등의 반응이다.
결혼 이주여성들은 결혼관에 대한 인식 부재가 국제결혼 실패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거기에 국제결혼 시장이 결혼중개업체를 통해 이뤄지면서 잘못된 결혼문화가 뿌리내렸다는 점도 지적한다. 일주일 만에 성사되는 국제결혼 프로그램에는 ‘매매혼’이란 딱지가 붙었다. 중개업체로 맺어진 남녀는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하고 의사소통이 안 되는 채 부부생활을 이어간다.
왕지연 한국이주여성연합회 회장은 “가장 우선은 국제결혼을 하려는 분들이 자신이 왜 그런 결정을 하는지 스스로 알아보는 일이다. 떠밀리듯 국제결혼에 나선 분들이 많다면 결혼생활의 결말은 비극적일 수밖에 없다”며 “일회성 금전지원보다 나라에서 결혼관에 대한 교육을 했으면 좋겠다. 외국인 아내가 죽어나가야만 관심을 갖고, 그마저도 금세 잊히는 게 현실이다. 이대로 20~30년 뒤면 외국인 아내들이 노년층이 되고 사회의 부담은 더 커질 것이다. 지금부터 이주여성의 생애주기별 생존 전략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