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작전 종목들 중도에 주저앉기 일쑤…발표 직후 상상인·신라젠 주가 껑충 ‘의미심장’
외형적으로 보기엔 성공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실패한 작전이 여럿 된다. 주식 시황판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사진=임준선 기자
외형적으로 보기엔 성공한 듯 보이지만,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실패한 작전이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결국 ‘돈’이 문제였다. 말레이시아·중국·베트남 등 해외에서도 얼마든지 주가를 상승시킬 수 있는 거래 시스템을 다 만들었지만, 실탄(돈)이 없어서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 게다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의혹과 관련해 상상인그룹이 수사를 받게 되고, 또 몇몇 종목에서 ‘손실’을 본 큰손 투자자들이 신중해진 점도 영향을 줬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멈추지 않는다. 최근 유명 연예인이 거론되는 코스닥 상장 C 사가 급등하는 등 여전히 주가 조작 시도로 보이는 지표는 계속된다. 테마주로 단기간 급등세를 연출하려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주가 띄우다가 주저앉은 종목들 ‘태반’
‘최대 주주 변경’ 이후 ‘경영진 교체 임시주총 공시’가 이뤄지고 곧 ‘신사업 아이템 추가’가 뒤를 잇는다. 이 단계에서 ‘전환사채(CB) 발행’이 이뤄지면 다음 단계가 ‘사명 변경’이다.
통상 세력들이 ‘주가’를 부양하는 작업을 펼칠 때, 가장 표본처럼 진행하는 작업이다. 물론 그 전에 작업에 들어갈 회사가 단단해야 한다. 업계에서 가장 선호하는 작업 대상은 고정적인 수익이 발생하는 300억~400억 원 규모의 제조업체다. 1000억 원 이상 기업은 ‘무겁다’고 표현한다. 거래가 늘어났을 때 자금을 동원해야 하는 규모가 커지기 때문이다. 인수 후 CB를 발행해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채무가 없을수록 좋다.
실제 A 사와 B 사, 또 C 사 모두 차트가 움직이기 전에는 시가총액이 300억~500억 원 내외였다. 이미 한 차례 움직였다가 제자리로 돌아간 B 사는 앞서 언급한 움직임을 충실하게 이행했다. 최대주주가 변경되고 사업 아이템에 바이오를 추가하며 사명을 바꿨다. 당연히 CB를 발행해 자금을 마련한 뒤, 해당 자금으로 사업을 펼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기대감에 10% 넘게 주가가 급등하는 날이 계속됐고 단기간에 주가가 3배 넘게 올랐다.
급등했다가 갑자기 급락했지만 궁극적으로 실패한 작전이었다. 투자 세력이 이탈했다. 10억~30억 원을 투자한 세력이 ‘빠지겠다’고 하면서, 사업 아이템을 시장에 제대로 풀기도 전에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국내 CB업계 큰손은 “예전과 달리 자금 동원이 정말 쉽지 않다”며 “A 사도, B 사도 투자자들 가운데 20억 원 이상 정도를 넣었던 사람들이 급히 자금을 회수해 계획이 무산된 것인데 한 번 자금이 빠지고 나면 잘될 수 있겠느냐는 의심어린 시선이 팽배해지면서 주가가 와르르 더 무너진다”고 지적했다. “최저점 대비 10배가 올라도, 실제로 챙기는 이익은 3~4배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럴 경우 거의 본전에 불과하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또 다른 투자자의 말도 유사하다. “돈만 있으면 뭐든 띄우지만, 요새는 시장에 확실한 뉴스를 제공하지 않으면 개미 투자자들이 현명하게 빠져나가기 때문에 주가 조작도 어려운 아이템이 됐다”고 진단했다.
#시장 규모 얼마나 될까? 검찰 수사는 늘 ‘변수’
업계에 20년 가까이 있었던 이들이 진단하는 주가조작 시장 규모는 대략 2000억~3000억 원. 특정 종목을 띄우려면, 사전에 투자한 CB 등을 제외하고도 적게는 30억 원, 많게는 100억 원 안팎이 필요한데 3000억 원의 자금들이 ‘기획자의 제안’을 듣고 투자되는 형태다. 통상 시장에서 동시에 서너 개 아이템에 자금이 몰리는 형태인데, 최근 들어 바이오로 재미를 봤던 투자자들이 몇몇 코스닥 종목에서 쓴맛을 본 것이 분위기를 바꿨다. 2019년 말에는 동전주 수준이던 C 사가 유명 연예인과 사업 이야기가 거론되면서 잠시 두 배가량 오른 것이 ‘핫’한 얘기로 회자됐을 정도다.
서울중앙지검 조세범죄조사부(김종오 부장검사)는 1월 9일 유준원 상상인그룹 대표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도 했다. 사진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상상인저축은행 본사 건물. 사진=이종현 기자
최근 라임자산운용이나 상상인증권 관련 검찰 수사도 시장을 잠시 ‘진정’시킨 데 주효했다. 금감원은 2019년 10월 31일 제재심의위원회를 열고 상상인플러스저축은행엔 ‘기관경고’를, 상상인저축은행 대표에겐 ‘직무정지’ 등의 징계를 내렸다. 전환사채를 담보로 대출을 하는 과정에서 대주주에 이익을 주는 등 부당 대출을 했다는 이유였다. 서울중앙지검 조세범죄조사부(김종오 부장검사)는 1월 9일 유준원 상상인그룹 대표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도 했다.
라임자산운용도 검찰 조사로 움츠러들었다. 라임자산운용의 이종필 전 부사장은 코스닥 상장사 리드의 주가조작 및 횡령 혐의로 조사받던 중 사라져 수사기관의 추적을 받고 있는데, 이 전 부사장을 수사하면 등장할 기업들이 더 있다는 게 공공연한 후문이다(관련기사 꼭꼭 숨은 ‘라임 키맨’ 이종필, 호주 도피 정황 포착).
이들에게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리던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합수단) 폐지는 호재다. 합수단은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부 2곳 등과 함께 직접수사 부서 폐지 리스트 13부서 중 한 곳으로 낙점돼,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관련 소식은 이미 주가조작 업계에서 1주일 전부터 돌았는데, 뉴스로 확정 보도된 뒤 검찰 수사를 받고 있던 상상인그룹과 신라젠은 주가가 급등했다. 1월 14일 신라젠은 장중 최고 4.94% 상승했고, 상상인과 상상인증권은 각각 최고 11.41%와 24.31%가 올랐다.
주가조작 세력에게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리던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 폐지는 호재다. 폐지 소식이 보도되자 상상인그룹과 신라젠은 주가가 급등했다. 사진=고성준 기자
앞선 사채업계 큰손은 “허황된 이슈로 3~4배씩 올리는 종목들이 등장하면서 시장이 너무 혼탁하고 지저분해졌다. 작전이 한 번 이뤄지고 나면 회사는 말도 안 되는 이자 비용을 부담하느라 망가질 수밖에 없다”며 “검찰 수사가 진행된다고 하지만, 20팀이 작전을 돌리면 1팀 정도가 수사를 받을까 말까라고 보면 된다”고 우려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