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태 vs 조현아 남매 갈등 속 반도건설 흑기사설도…화해 쉽지 않아, 누가 누구와 손잡느냐 ‘관건’
대외적으로 갈등이 불거진 시기는 2019년 12월 말. 하지만 2019년 4월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이 세상을 떠난 뒤부터 수개월 동안 이어진 갈등이 그제야 공식적으로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화해를 위해 한두 번 만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게 이에 관여된 법조인의 설명이다.
세간에선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화해 가능성도 점치지만, 내막을 잘 아는 이들의 전망은 ‘쉽지 않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조원태 회장(왼쪽)과 조현아 전 부사장. 사진=박정훈·고성준 기자
#목적이 무엇일까? 반도건설 참여 배경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반도건설은 1월 10일 대호개발 등 3개 계열사를 통해 2019년 12월 말 기준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 보유 지분을 8.28%까지 확대했다. 2019년 연말에 2%가량의 지분을 추가 매수했다. 이로써 조원태 회장 등 한진가(家)를 포함한 특수 관계인(지분율 28.94%)을 제외하면 세 번째로 많은 지분을 확보한 주주가 됐다.
반도건설 앞에는 단일 주주로는 최대주주인 KCGI(17.29%), 미국 델타항공(10%)이 있는데 반도건설까지 참전하면서 ‘누가 누구와 손잡느냐’에 따라 경영권이 넘어갈 수도 있게 됐다. 한진그룹의 지배구조 셈법이 한층 복잡해진 셈이다.
한 달 만에 지분 2%를 사들인 반도건설 역시 단순 투자를 목적으로 한진칼 지분을 매입했다는 기존 입장을 완전히 바꿔 ‘경영 참여’ 목적임을 공시했다. ‘캐스팅보트’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아예 지분 보유 목적에 대해 ‘임원의 선임·해임 또는 직무 정지 등 회사의 경영목적에 부합하도록 주주로서 관련 행위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명시했다. 오는 3월 말로 예정된 한진칼 주주총회는 예상 시나리오가 더 복잡하게 얽히게 됐다.
#한진가 갈등 진행상황 살펴보니…
현재 한진가는 △조원태 회장 6.52%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6.49% △조현민 한진칼 전무 6.47% △조 회장의 어머니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 5.31% 등 네 가족이 지분을 비슷하게 보유하고 있다. 현재 갈등이 드러난 것은 조원태 회장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측. 2019년 12월 말 조현아 전 부사장은 법률대리인을 통해 “조원태 대표이사가 선대 회장의 유훈과 달리 그룹을 운영해 왔고, 가족 사이의 협의에 무성의로 일관하고 있다”며 경영권에 제동을 걸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인 크리스마스 기간에는 조원태 회장과 이명희 고문 간 갈등도 불거졌다. 조 회장이 이 고문을 찾아가 난동을 부렸다는 것. 이 고문 측은 조 회장이 서울 평창동 자택을 찾아와 이명희 고문에게 욕설을 퍼붓고 집안 유리를 박살냈다며 상처와 깨진 유리 등을 사진으로 찍어 회사 경영진 일부에게 전송했고 이는 곧바로 언론에 알려졌다.
이명희 고문이 ‘남매의 난’에서 조현아 전 부사장 측의 손을 들어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다음 날, 이슈가 ‘모자의 난’으로 비화되자 조 회장과 이 고문은 곧바로 “갈등이 있었지만 조 회장이 사과했고 이 고문이 이를 받아들였다”는 입장문을 내며 봉합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주총은 3월, 아직 멀었지만 해결 방법도 멀어
하지만 실제로는 일련의 과정에서 한진 일가 관계가 악화됐다고 한다. 이슈를 잘 아는 관계자는 현재 “소문과 달리 조현아 전 부사장과 이명희 고문도 한 편이 아니”라며 “넷 중 둘(조원태 회장과 조 전 부사장)만 서로 다투고 나머지(이명희 고문, 조현민 전무)는 크게 관심이 없는 상황이라고 보는 게 맞다”고 진단했다.
조원태 회장과 이명희 고문의 갈등이 알려진 직후만 하더라도, 이명희 고문(5.31%), 조 전 부사장(6.49%), 조현민 한진칼 전무(6.47%)이 지분을 합치면 18.27%에 달해 조 회장의 경영권을 뺏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지만 그럴 가능성이 없다는 얘기다.
이명희 고문이 아들(조원태 회장)이나 딸(조현아 전 부사장) 가운데 누군가의 손을 들어주며 한진 일가가 갈등을 더 확대하지 않고 연합 세력을 구축할 것이라는 ‘시나리오’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 사진=고성준 기자
조원태 회장과 조현아 전 부사장 간의 갈등은 오래된 이슈였다. 2019년 4월 조양호 전 회장이 세상을 떠남과 동시에 시작됐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이슈는 조양호 전 회장에 이어 누가 한진 일가 공식 총수로 지정되느냐는 것이었지만, 진짜 원인은 ‘복귀’를 원하는 조 전 부사장과 이를 허락하지 않으려는 조 회장의 갈등이었다고 한다.
이를 잘 아는 법조계 관계자는 “2019년 조양호 전 회장이 돌아가신 뒤 곧바로 둘 다 경영권 분쟁 관련 법조인을 선임할 정도로 갈등이 시작됐고, 서로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멀리 왔다고 판단했을 때 조현아 전 부사장이 이를 언론에 알린 것”이라며 “12월에 공개한 입장은 ‘내 편’을 들어줄 주총 대비 흑기사 주주들을 모으기 위한 신호로 보는 게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조 전 부사장을 잘 아는 법조인 역시 “조 전 부사장이 원한 것은 회사 경영 복귀와 조 전 부사장 측 인사 중용이었는데 지난해 인사에서 조 전 부사장도 복귀하지 못했고 측근들도 좌천성 인사를 받으면서 불만이 더 커진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이명희 고문과 조현민 전무는 누구 편도 아니다”고 귀띔했다. 되레 최근 들어 조 전 부사장과 이 고문의 관계도 많이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를 지켜본 관계자는 “함께 가야 하는 행사도 동석을 자제할 정도”라고 언급했다.
#반도건설, 조현아 전 부사장를 위한 흑기사 되나
조원태 회장의 사내이사 임기가 만료는 오는 3월 23일. 한진칼은 주주총회를 열고 조 회장의 재선임 안건을 처리할 예정이다. 논란이 불거지지 전까지만 해도 조 회장이 안정적으로 경영권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조 회장이 조 전 부사장 등 일가의 지분 28.94%를 보유하고 있고, 우군으로 분류된 델타항공이 지분 10%를 확보했기 때문.
조원태 회장의 사내이사 임기가 만료되는 때는 오는 3월 23일. 한진칼은 주주총회를 열고 조 회장의 재선임 안건을 처리할 예정이다.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 사진=박정훈 기자
하지만 조현아 전 부사장이 조 회장을 배제하고 반도건설 등 다른 주주들과 손잡는 시나리오가 펼쳐지면서 판은 복잡해졌다. 당초 반도건설 측은 조원태 회장의 우호 세력으로 알려졌지만, 권홍사 반도건설 회장이 조현아 전 부사장 측과 따로 접촉했다는 ‘설’도 나오고 있다. 만일 조 전 부사장이 동생 조현민 전무(6.47%)와 반도건설, 그리고 본인의 주식 지분을 합친다면 21.24%를 확보해 조 회장과 델타항공 지분을 합친 20.67%보다 앞서게 된다.
반대로, 조원태 회장은 물론 조현아 전 부사장 등 오너 일가가 아예 경영권을 뺏길 수도 있다. 그동안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며 한진 일가의 경영권을 위협해 온 1대 주주인 KCGI가 변수라는 얘기다. 17.14%를 보유한 KCGI는 한진 일가 측과는 손잡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인데, 만일 KCGI가 5대 주주인 국민연금(4.1%)을 설득하면 21.51%가 넘는 지분으로 경영권을 확보할 수도 있다. 조원태 회장·델타항공(20.67%)이나 조현아 전 부사장·조현민 전무·반도건설(21.24%)보다 더 많은 지분을 확보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이명희 고문이 아들(조원태 회장)이나 딸(조현아 전 부사장) 가운데 누군가의 손을 들어줄 것이기에, 자연스레 한진 일가가 갈등을 더 확대하지 않고 연합 세력을 구축할 것이라는 ‘시나리오’에 힘이 실리고 있다. 앞선 법조인은 “조 회장과 조 전 부사장이 협의에 들어간 것은 맞다”면서도 “둘의 갈등이 수개월 전부터 불거진 상황이고, 현재 수십 명의 경영권 관련 전문 변호사들이 투입돼 양측을 대리하고 있다, 금방 결론이 날 수 있는 상황은 아니고 언제 다시 갈등이 불거질지 모른다”고 진단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