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에로쑈핑 철수 결정, 부츠·제주소주 등 정리 가능성 커…급식 수주 등 수익성 위주 사업 재편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사진)의 ‘파격 실험’이 코너에 몰렸다. 사진=연합뉴스
강희석 대표 수혈 이후 이마트는 강력한 구조조정 의지를 보이고 있다. 지난 12월 20일 밝힌 사업재편 계획에서는 정용진 부회장이 그간 애정을 쏟아온 전문점 사업을 재편하는 내용이 담겨 있어 주목을 받았다. 이 계획에 따르면 연간 900억 원의 영업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부츠와 일렉트로마트, 삐에로쑈핑 등을 수익성 중심으로 재편한다. 이마트는 일렉트로마트 외에 나머지 두 전문점의 성장성이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업계의 관심이 쏟아진 것은 ‘삐에로쑈핑’의 완전 철수다. 이마트는 현재 운영 중인 전국 7곳 삐에로쑈핑 매장을 순차적으로 정리할 계획이다. 정용진 부회장이 출점 전부터 “1년간 모든 것을 쏟아 부어 준비했다”고 강조했던 야심작 삐에로쑈핑이 1년 6개월 만에 적자만 남긴 채 사라지는 것. 그간 적자 확대에도 방문객 수 증가세를 알리며 ‘흥행에 성공했다’고 자평하던 이마트가 사실상 실패를 인정한 셈이다.
지난해 8월 의왕점과 논현점이 출점 6개월여 만에 문을 닫으면서 일찌감치 삐에로쑈핑 철수설이 돌았다. 그러나 당시 이마트는 이를 부인했다. 이마트는 더 넓은 매장에 입점하기 위한 폐점이라고 설명했다. 또 누적 방문객이 480만 명을 넘어섰다며 삐에로쑈핑을 ‘잘 되는’ 전문점으로 보고, 추가 출점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이마트의 두 번째 H&B스토어 도전이었던 ‘부츠’ 또한 효율화의 대상이다. 지난해 7월 기존 33개점 가운데 18개점이 폐점한 부츠는 올해에도 추가 폐점이 점쳐진다. 이마트가 부츠의 점포별 수익성 분석을 통해 효율 경영을 극대화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H&B스토어의 한 관계자는 “H&B스토어 시장이 침체기를 겪거나 하는 상황이 아니다. 타 스토어들은 필요에 따라 오히려 추가 출점을 해나가는 추세”라며 “주요 H&B스토어들은 온오프라인 시너지를 강화하는 데에 주력하고 있다. 다만 채널마다 상황이 다를 수는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전문점 사업을 구조조정한 이마트는 성적 부진이 이어지는 ‘정용진표 야심작’ 시리즈를 정리해나갈 가능성이 크다. 다음 타자로는 제주소주와 레스케이프호텔 등이 유력하다. 제주소주는 ‘정용진 소주’로도 불렸다. 이마트는 2016년 12월 190억 원을 들여 제주 향토 업체인 제주소주를 인수했다. 이후 지난해 2월까지 제주소주에 320억 원을 유상증자하고 이를 생산설비 확충 및 마케팅 비용 등으로 투자했다. 그러나 500억 원가량 투입된 제주소주는 현재까지도 부진한 실적이 이어진다. 지난 2018년 기준 매출은 43억 원, 영업손실은 129억 원이다.
‘정용진 호텔’로 불리는 레스케이프호텔도 고전 중이다. 레스케이프는 2018년 7월 개장한 신세계조선호텔의 첫 자체브랜드다. 최고급 부티크 호텔을 표방하며 인테리어 관련 투자만 300억 원 가까운 수준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연이은 적자를 내며 신세계조선호텔 실적 하락의 주요 원인이 됐다. 신세계조선호텔은 2017년 영업이익 7억 3480만 원을 기록했으나 레스케이프가 개장한 2018년 영업손실 75억 9127만 원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
부진한 ‘정용진표’ 시리즈를 걷어내고 실적을 개선하려는 의지는 이마트 자회사에서도 읽힌다. 대표적인 곳은 신세계푸드다. 신세계푸드는 지난 연말 ‘푸른밤 살롱’ 운영을 종료했다. 푸른밤 살롱은 신세계푸드가 제주소주 브랜드 ‘푸른밤’을 홍보하기 위해 시범운영한 제주도 포장마차 콘셉트의 다이닝 포차다. 오픈 당시 정 부회장이 직접 찾을 정도로 애정을 쏟은 신사업 브랜드였지만, 오픈 1년 만에 철수하게 됐다.
푸른밤 살롱이 애초에 푸른밤 홍보를 위한 매장이었으나 수익성을 이유로 철수한다는 점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다만 신세계푸드 관계자는 “푸른밤 살롱을 제주소주와 함께 보는 것은 확대해석이 될 수 있다”며 “수익성 개선의 일환으로 운영을 중단한 것”이라고 전했다.
한식 뷔페 ‘올반’도 주춤하다. 그러나 2017년 말 14개였던 올반 매장은 지난해 말 대학로점이 폐점되며 전국에 5개 매장만이 남게 됐다. 다만 신세계푸드는 올반의 완전 철수에 대해서는 아직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인다. 앞서의 신세계푸드 관계자는 “수익성이 나지 않는 매장을 정리하고 있다. 외식업 양극화에 따라 중간매장은 잘 되지 않아 ‘노브랜드 버거’같은 초저가 매장이나 ‘올반 프리미엄’, ‘보노보노 프리미엄’ 같은 프리미엄 매장을 늘려나갈 방침”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신세계푸드가 운영 중인 ‘올반 프리미엄’ 매장은 단 한 곳에 그친다.
신세계푸드는 정 부회장이 적극적으로 나섰던 외식 사업 브랜드들을 철수하는 반면, 급식 수주 및 위탁판매권 획득 등을 통해 수익성을 끌어올리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 신세계푸드는 최근 이천 SK하이닉스 R&D센터 급식을 수주하고 대형 사업장 위주의 급식 수주를 확대할 계획이다. 또 지난해 6월에는 이마트 자체상표 브랜드인 ‘피코크’의 외부 채널 위탁판매권을 확보해 그룹 계열사를 벗어난 외부 판매를 도맡는다. 단체급식, 외식 등 식음사업과 식품 제조·유통 등의 식품유통 두 축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시장에서는 이마트와 자회사 신세계푸드 등에서 진행 중인 변화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구조조정과 비용절감을 통한 수익성 개선 노력이 실적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이마트 안팎에서는 파격실험이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는 점에서 정 부회장에 대한 책임론도 제기된다. 이마트의 한 관계자는 “제주소주와 이마트24 등 정 부회장이 추진했던 사업들이 어마어마한 손실을 기록했다. 경영실패는 구조조정 등으로 이어져 근로자들이 어려움을 겪었으나, 실적 부진에 책임을 져야 할 정 부회장은 정작 고액 보수와 배당을 챙겼다”고 지적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