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 기반 돌풍’ 자민련과 선진당 역사의 뒤안길로…안철수 영향력·지지기반 축소 ‘신당 파괴력’ 회의론
1월 29일 바른미래당 탈당을 선언하는 안철수 전 의원. 사진=박은숙 기자
1987년 9차 개헌 이후 총선에서 3지대에 깃발을 꽂은 정당의 간판은 매번 바뀌었다. 그만큼 3정당의 생존은 녹록지 않았다. 원내 3정당들은 총선에서 반짝 강세를 보인 뒤 세 확장에 실패하며 사라지는 역사를 되풀이했다.
지금껏 가장 오랫동안 원내 3당 지위를 유지했던 정당은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이었다. ‘삼김(三金)’의 한 축이었던 김종필 전 총재가 이끌던 정당이다. 자민련은 15~16대 두 차례 총선에서 원내 3당이 됐다. 자민련은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강력한 ‘3지대 돌풍’을 일으켰던 정당으로 회자되기도 한다.
1995년 3월 자민련은 민주자유당(민자당)을 탈당한 공화계열 의원들을 주축으로 구성됐다. 당시 ‘원조 보수’란 슬로건을 내건 자민련은 김종필 전 총재 연고지인 충청권을 기반으로 세를 넓혔다. 그 결과 자민련은 1996년 15대 총선에서 50석을 얻어내며 대약진했다. 자민련은 충청권 28개 지역구 중 24개를 포함한 지역구 의원 41명을 배출했다. 여기에 전국구(비례대표 전신) 9명을 더해 50석을 확보했다.
자민련은 2000년 16대 총선에서도 3당 지위를 지켜냈다. 하지만 이 선거에 자민련 의석은 크게 줄어들었다. 몰락의 전조였다. ‘반민자 반민주, 원조 보수’ 슬로건에 지지를 보냈던 유권자들은 ‘DJP 연합’ 이후 연립 여당이 된 자민련을 등졌다. 자민련은 대구에서 전멸했고, 충청권에서도 큰 힘을 내지 못하며, 17석을 얻는 데 그쳤다. 그리고 2004년 17대 총선에서 자민련은 4석을 얻어 소수정당으로 밀려났다. 18대 총선에서 당선자를 배출하지 못한 자민련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1987년 개헌 이후 원내 제3정당이 바뀌지 않았던 사례는 16대 총선 김종필 전 총재가 이끌던 자민련뿐이다. 사진=일요신문DB
‘1인 2표제’가 처음으로 실시된 17대 총선에서 원내 3정당 지위를 차지한 건 민주노동당이었다. 2002년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 선전으로 대중적 인지도를 올린 민주노동당은 ‘1인 2표제’의 최대 수혜 정당이 됐다. 17대 총선 정당투표에서 민주노동당은 13.03% 득표율을 기록하며 비례대표 의원 8명을 배출했다. 이때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1번으로 여의도에 입성한 의원이 심상정 정의당 대표다. 고 노회찬 의원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8번으로 여의도에 입성했다.
18대 총선에선 다시 한 번 지역에 기반을 둔 정당이 3당을 차지했다. 충청권을 기반으로 18석을 차지한 자유선진당이었다. 자유선진당을 이끈 수장은 대선에 세 차례나 출마해 낙선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였다. 자유선진당은 이회창계 인사와 자민련 명맥을 이은 국민중심당계 인사로 구성돼 충청권에서 14개 지역구를 따내 원내 제3당으로 우뚝 섰다. 하지만 정당투표에서 네 명의 비례대표를 배출하는 데 그치며 원내 교섭단체 확보엔 실패했다. 19대 총선에선 13석을 확보한 통합진보당이 원내 3당이 됐다.
2016년 열린 20대 총선에선 국민의당이 돌풍을 일으키며 원내 3당으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안철수 전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은 호남에서 23개 지역구, 수도권 2개 지역구에서 승리했다. 정당투표에선 새누리당에 이어 2위를 차지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그 결과 국민의당은 비례대표 의원 13명을 배출했다. 국민의당은 등장과 함께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는 데 성공하는 성과를 얻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과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이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하면서, 국민의당은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다.
국민의당이 돌풍을 일으킬 수 있었던 이면엔 ‘안철수 효과’와 더불어 탄탄한 호남지지 기반이 있었다. 18대 총선 당시 원내 3당을 차지했던 자유선진당 고위 당직자 출신 정치권 관계자는 “20대 총선 국민의당 열풍을 들여다보면 자민련, 자유선진당의 선전과 그 성격이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세 정당 모두 대선주자급 정치인이 전면에 나섰다. 자민련에 김종필, 자유선진당에 이회창이 있었다면 국민의당엔 안철수가 있었다”면서 “여기다 세 정당 모두 지역 기반이 확실했다. 자민련과 자유선진당이 충청권을 기반으로 한 정당이었다면, 국민의당은 호남 지역에 확실한 지지기반을 뒀다”고 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그런 의미에서 21대 총선에서 안철수 신당이 또 돌풍을 일으킬 수 있을지에 대해선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안철수의 영향력과 호남 지지기반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1월 19일 귀국한 뒤 정계 복귀를 선언한 안철수 전 의원. 사진=고성준 기자
앞선 분석처럼 안철수 신당 파괴력에 대해선 회의론이 팽배한 상황이다. 호남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호남에서 안철수 전 의원을 바라보는 시선이 예전만큼 곱지 않다”면서 “전국적으로 봐도 안 전 의원에 대한 정치적 신선도가 많이 떨어지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호남 지역 관계자도 “20대 총선 돌풍을 일으켰던 안 전 의원의 장점은 모두 희석됐다. 21대 총선에서 안철수 신당의 돌풍 재현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반면, 정치평론가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연구위원은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대립이 극심해짐에 따라 피로감을 느낀 중도층 유권자들의 표심이 안철수 신당으로 쏠릴 가능성이 있다”며 다른 의견을 전했다. 채 연구위원은 “일종의 저항투표 개념으로 안철수 신당에 표가 몰릴지 여부가 21대 총선 최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