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저격수들 민주당으로, ‘전두환 불출석 허가’ 판사는 한국당으로
1월 19일 더불어민주당이 10호 영입인재를 발표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탄희 전 수원지법 판사.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간판을 달고 총선에 나올 가능성이 높은 판사는 지금까지 3명이다. 이탄희 전 수원지법 판사, 최기상 전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 이수진 전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다. 이들에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 국면에서 저격수 역할을 맡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1월 19일 더불어민주당이 10호 영입 인재로 발표한 이탄희 전 판사(사법연수원 34기)는 2017년 2월 법관 블랙리스트 실체를 폭로하며 사법농단 의혹에 불을 지핀 인물이다. 그는 2019년 2월 판사직을 내려놓았다.
이 전 판사는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 회복 없이는 경제 정의, 공직사회 개혁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해 제도권 정치에 참여하기로 했다”며 “사법농단 1호 재판이 무죄 판결이 나는 상황을 보고 마음을 굳혔다”고 밝혔다. 1월 13일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기소된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무죄를 선고받은 사실을 거론하며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이 전 판사의 출마 소식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비판의 날을 바짝 세웠다. 진 전 교수는 1월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판사가 정권의 애완견 노릇하다 국회의원 되는 게 평범한 정의라고 한다”면서 “문재인 정권 들어 이런 파렴치한 일들이 정말 평범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2017년 법원행정처를 중심으로 불거진 사법농단 의혹을 헌정 유린이라고 강력 비판했던 최기상 전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사법연수원 25기)는 일신상의 이유로 사의를 표명했다. 법원은 1월 13일 최 부장판사 사직서를 수리했다.
사법농단 사태 당시 최 전 부장판사는 “헌정 유린 행위의 관련자들에 대해 엄정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면서 “주권자인 국민의 공정한 재판에 대한 기대, 그리고 사법권 독립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부정함으로써 사법부 스스로가 그 존재 근거를 붕괴시키는 참담한 결과에 이르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 전 부장판사는 법원 내 진보판사 모임으로 알려진 우리법연구회 출신으로 2015년엔 이 모임의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법조계와 정치권에선 최 전 부장판사 향후 행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총선 출마가 유력하다”는 이야기가 유력하게 들리는 상황이다.
최 전 부장판사 사의표명에 앞서 1월 7일엔 이수진 전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사법연수원 31기)이 법복을 벗었다. 이 전 위원 역시 사법농단 의혹 선봉에 나섰던 판사다. 이 전 위원은 2018년 8월 JTBC 뉴스룸 인터뷰를 통해 대법원 강제징용 사건 재판 지연 의혹을 제기하면서 화제 중심에 서기도 했다.
민주당 내부에선 이 전 위원 출마를 가정한 가상 여론조사를 돌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이 전 위원 출마가 거론되는 지역구로는 유은혜 교육부 장관이 불출마를 선언하며 무주공산이 된 일산 고양병과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둥지를 틀고 있는 서울 동작을 등이다.
판사들의 정치권 입문을 두고 법조계에서는 판사의 정치적 중립성 훼손과 당장 진행되고 있는 재판 일정에도 차질을 우려하고 있다. 법원 이미지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연합뉴스
사법농단 의혹 저격수 역할을 했던 판사들의 출마설에 주호영 자유한국당 의원은 “법원마저 정치꾼들의 놀이터가 됐다”고 꼬집었다. 주 의원은 1월 20일 “법복을 벗고 곧장 정치판으로 가면 법원의 신뢰성과 중립성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면서 “(법관의 정치권 입성을) 부추기는 정치판도, 덩달아 춤추는 법관들도 부끄러워해야 한다. 자제하고 또 자제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에도 법복을 벗고 출사표를 던진 인물이 있다. 전두환 불출석 허가로 논란에 휩싸였던 장동혁 전 광주지법 부장판사(사법연수원 33기)다. 장 전 부장판사의 사표는 1월 10일 수리됐다. 장 전 부장판사는 1월 16일 대전 소재 법무법인에서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다. 지역 정가에선 그가 대전에서 출마할 것이란 관측이 파다한 상황이다
장 전 부장판사는 고 조비오 신부와 5·18 희생자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 씨 재판을 담당해 왔다. 장 전 부장판사는 “알츠하이머 여부를 떠나 피고인이 고령이고 경호나 질서유지에 100여 명 이상이 동원돼야 하는 점을 고려했다”는 이유로 전 씨의 재판 불출석을 허가해 거센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문제는 장 전 부장판사가 법원을 나오면서 당장 전 씨와 관련한 재판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는 점이다. 장 전 부장판사는 1년 8개월간 전 씨 재판을 진행해 왔다. 증인 신문만 8차례 이뤄졌다. 새 재판부가 기록을 검토하는 데에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판사들의 정치권 입문에 법조계에선 곱지 않은 시선이 팽배하다. 법관의 정치권 직행은 판사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할 뿐 아니라 당장 진행되고 있는 재판 일정에도 차질을 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정욱도 대전지법 홍성지원 부장판사는 1월 17일 법원 내부망 ‘코트넷’에 ‘법복 정치인 비판’이란 글을 실명으로 올려 화제가 됐다. 정 부장판사는 “법관은 정치적으로 무능한 ‘정치성이라곤 1도 없는 바보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법관의 정치성은 발현된 곳이 음지이건 양지이건, 현직이건 전직이건, 방향이 보수이건 진보이건 상관없이 언제나 악덕”이라고 했다. 정 부장판사는 법관들의 정치권 직행을 “남은 법관들, 특히 같은 대의를 따르던 다른 법관들에게까지 ‘법복 정치인 혐의’를 씌우는 일”이란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도 정치권에 출사표를 던진 판사는 있었다. 송기석 전 광주지법 부장판사(사법연수원 25기)는 광주 서갑에서 국민의당 후보로 출마해 여의도에 입성했다. 박희승 전 수원지법 안양지원장(사법연수원 18기)은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전북 남원·임실·순창 지역구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박 전 지원장은 21대 총선에서 다시 한 번 여의도 입성을 노릴 전망이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