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C 조사국, 잇따라 LG화학에 유리한 의견 제시…양사 완성차 기업과 협업 강화하며 ‘수주전’ 예고
LG화학이 입주한 서울 여의도 소재 LG트윈타워 전경. 사진=박은숙 기자
#연이어 LG화학 손 들어준 ITC 조사국
최근 국제무역위원회(ITC) 불공정수입조사국이 2차 전지 영업비밀·특허침해 소송을 맡고 있는 ITC 재판부에 SK이노베이션이 지난해 요청한 2건을 ‘기각’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이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는 배터리 영업비밀 중 20가지 이상을 제외하고, 소송 요건이 성립하지 않는 부분이 있어 약식 판결을 요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두 가지 요청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조사국은 의견서를 통해 “SK이노베이션의 ‘영업비밀 침해 증거가 없다’는 주장에 근거해 결정을 내리기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SK이노베이션 측은 LG화학이 문제 삼은 배터리 제품·기술을 미국으로 수입해 조지아 공장에서 가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도 단언적으로 증명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현재 SK이노베이션은 2022년 가동을 목표로 미국 조지아주에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다.
조사국은 지난해 11월에도 LG화학에 유리한 입장을 내놓았다. LG화학이 제기한 조기 패소 판결 요청에 대해 “적절하다”고 재판부에 의견을 보낸 것. SK이노베이션이 ITC의 포렌식 명령을 준수하지 않아 증거를 훼손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조사국의 결정은 의견으로, 재판부가 결정을 내리는 데 참고사항으로 활용될 뿐이다. 그럼에도 조사국이 잇따라 LG화학의 손을 들어주며 지난해 4월부터 이어진 배터리 기술 관련 특허 침해 소송전은 LG화학의 승리로 끝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업계는 조만간 ITC가 LG화학이 요청한 조기 판결의 결과를 내놓을 것으로 보고 있다. LG화학의 요청대로 SK이노베이션의 조기 패소가 인정되면 오는 6월로 예정된 예비판결을 대신하게 된다. 이어 10월로 예정된 최종판결 시기도 빨라진다.
배터리 사업 해외 투자 규모가 소송 결과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ITC가 LG화학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려도, 미국 행정부가 ‘비토(거부권)’를 행사할 수 있기 때문. 앞서 월스트리트저널 등 미 현지 언론은 “미국 내 배터리 생산 공장을 늘리려 하는 트럼프 행정부가 SK이노베이션에 관대한 결론이 나길 원할 수 있다”며 “이 사건은 결국 거부권을 가진 미 무역대표부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전했다. 이 경우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전쟁은 미국 무역대표부로 회부돼 장기전이 될 수도 있다.
양측은 우선 ITC의 판결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LG화학이 제기한 조기 패소 판결 요청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조사국 의견일 뿐 본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라며 “조지아주 공장 투자도 ITC 대상이 아니라 소송과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LG화학도 “소송은 ITC가 주관하는 것이라 따로 할 말이 없다”고 말을 아꼈다.
#소송전 끝내고 이제는 수주전
예상보다 일찍 소송 결과가 나오면 이후 양사의 전선은 수주량 확보전으로 옮겨갈 전망이다. 수주를 위한 자동차 완성차 업계와의 합종연횡이 뜨겁다. 주요 전장은 중국과 미국, 한국이다. 현재 글로벌 시장 점유율만 놓고 보면 LG화학이 크게 앞서지만 SK이노베이션의 기세도 만만치 않다.
현재 LG화학은 5개의 자체 생산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이어 2개의 완성차 업체와 합작공장을 설립할 예정이다. 앞서 지난해 6월 중국 지리자동차와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짓기로 했다. 2021년 말까지 전기차 배터리 10GWh 생산능력을 갖추고, 합작법인에서 생산되는 배터리는 2022년부터 지리자동차 및 자회사의 중국 출시 전기차에 공급될 예정이다.
이어 LG화학은 지난해 12월 미국 GM과 합작사 설립에 합의했다. 미국 오하이오 로즈타운에 배터리 합작 법인 공장을 설립한다. 합작 법인의 공장은 GM 전기차에 적용되는 배터리 셀만 생산하게 된다. 합작법인은 50 대 50 지분으로 양사가 각각 1조 원을 출자, 단계적으로 총 2조 7000억 원을 투자해 30GWh 이상의 생산 능력을 확보한다고 설명했다.
SK이노베이션이 있는 서울 종로구 서린동의 SK그룹 본사 전경. 사진=일요신문DB
장쑤성 창저우에 세워진 16만여㎡ 부지의 공장은 연간 7.5GWh 생산능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부터 본격 양산을 시작해, 생산된 배터리는 베이징자동차 등 중국의 전기차 업체들에 공급될 예정이다. 이어 SK이노베이션은 EVE에너지와 함께 중국 내 배터리 2공장을 짓기 위해 협의 중이다. 합작사 지분은 각각 50%씩 보유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 완성차 1위 현대자동차를 두고도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치열한 수주전을 벌이고 있다. 최근 주목을 받은 것은 현대차와 LG화학의 배터리 공장 공동 설립설. 하지만 양사는 이러한 내용에 대해 부인했다. 현대차그룹은 “전동화 전략과 관련 글로벌 배터리 업체들과 다각적 협력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다만 특정 업체와 제휴 등은 확정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LG화학 역시 “현대차와 다각적인 미래 협력 방안을 검토 중이나 전략적 제휴가 확정된 바는 없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은 LG화학뿐 아니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도 이용하고 있다. 현재 출시된 현대차 코나 일렉트릭, 아이오닉 일렉트릭 등은 LG화학 배터리를 사용한다. 반면 기아차인 쏘울 EV, 니로 EV 등은 SK이노베이션 배터리가 들어간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12월 현대·기아차의 첫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의 배터리 파트너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현대·기아차는 2021년까지 4차에 걸쳐 배터리 물량을 발주할 예정인데, SK이노베이션이 1차 물량을 수주한 것이다. 그 규모는 50만 대로 알려졌다. 향후 물량 확보를 위한 양사의 경쟁도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