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강화 조치 내놓고 해외 공략하지만 여전히 ‘미봉책’…SK이노베이션·테슬라 추격도 ‘신경’
연이은 ESS(에너지저장장치) 화재로 업계의 근심이 깊어지는 가운데, 삼성SDI와 LG화학 등 주요 제조사는 안정성 강화 대책을 내놓으며 이슈 해소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10월 14일 오전 서울 중구 삼성본관에서 열린 삼성SDI의 ESS 안전성 강화 대책 설명회에서 허은기 삼성SDI 전무가 관련 발표를 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지난 6월 정부의 대책발표 때만 해도 업계는 하반기 ESS 시장의 반등을 기대했지만 현 상황은 녹록치 않다. 화재 이슈가 해소되지 않은데다, 사실상 중단된 ESS용 배터리 국내 판매 또한 정상화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3분기 실적을 받아든 삼성SDI와 LG화학은 ESS 악재에 따른 어려움을 숨기지 못했다. LG화학은 지난 10월 25일 열린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 콜에서 “올해 3분기까지 ESS 배터리 국내 매출은 전무하다. 4분기에도 거의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삼성SDI 또한 “중대형 전지부분은 올해 ESS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3분기 삼성SDI는 전년 동기 대비 31.3% 감소한 1660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LG화학의 영업이익 또한 전년 동기 대비 36.9% 감소한 3803억 원이었다. 더욱이 LG화학의 경우 4분기에도 3분기에 반영하지 않은 ESS 충당금이 반영되며 전 분기 대비 악화가 예상된다. ESS 안정성 강화 조치에 2000억 원을 투입키로 한 삼성SDI도 4분기 해당 비용이 반영돼 부진한 실적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ESS 악재로 인한 실적악화에도 불구, 양사는 각자 안정성 강화 대책을 발표하는 등 ESS 화재 우려를 진화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삼성SDI 측은 지난 10월 14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ESS화재 원인과 관계없이 선제적 조치를 취하는 것이 글로벌 리딩 업체로서의 책무”라며 ‘안정성 종합 대책’을 소개했다. 2000억 원을 투입해 특수 소화시스템 등을 설치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삼성SDI는 특수 소화시스템을 개발해 신규로 판매되는 시스템에 전면 도입하고, 국내에 이미 설치·운영 중인 모든 ESS에 대해서도 일괄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LG화학 또한 같은 날 “안정성 강화 대책 및 정확한 화재원인 규명을 실시하고 있다”며 현재까지 진행해오던 안전장치 설치 내용과 향후 추가 제품 출시 계획 등을 알렸다. LG화학은 절연에 이상 발생 시 전원을 차단해 화재를 예방하는 안정장치인 IMD를 기존 사이트에 이미 교체 지원했으며, 신규 사이트에 대해서도 필수적으로 설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화재 확산 위험성을 차단하기 위한 화재확산 방지 제품 출시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해당 제품의 적용 방식은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다.
이들 기업이 앞 다퉈 ESS화재 관련 안정성 강화 대책을 밝히는 까닭은 국내 시장의 어려움을 타파하는 것은 물론, 글로벌 ESS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다. 미래 신성장 산업인 글로벌 ESS 시장은 연평균 40% 이상 고속 성장할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SDI는 지난 10월 29일 컨퍼런스 콜에서 “(안정성 대책에 따른 2000억 원 투입에 따른) 실적 우려가 있지만 단순 일회성 비용이 아니라 성장하는 글로벌 시장을 위한 투자”라며 “미국과 유럽, 호주 전력용 시장 중심으로 성장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ESS는 글로벌 친환경 정책에 따라 미래 성장 가능성이 확실하다. 국내에서 판매를 하지 못하거나 화재 리스크가 있더라도, 그 비중이 크지 않다. 해외 시장으로의 수출을 노리기 때문에 ESS 사업에 앞 다퉈 진출하는 것”이라며 “SK이노베이션이 ESS 사업에 재도전하거나 현대자동차가 자체 개발에 나선 것 또한 글로벌 시장 흐름에 따라 당연한 수순”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의 말처럼 후발주자들의 사업 진출 행보도 눈에 띈다. 국내에서는 SK이노베이션이 ESS 사업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고, 현대차그룹 또한 전기차 폐배터리를 재활용한 ESS를 자체적으로 개발하는 등의 사업을 추진 중이다. 해외에서는 글로벌 기업 테슬라가 내년 초 ESS 시장에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국내 전지 3사로 꼽히는 SK이노베이션의 경우 과거 ESS 사업을 시도했으나 사업성을 이유로 사업부 규모를 줄이고 사실상 중단한 바 있어 재도전의 의미가 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지난 5월 기자간담회를 통해 ESS 진출을 본격화 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고, 현재는 사업부 인력을 충원하고 조직을 정비하는 단계”라고 전했다.
다만 현 제조사들의 대책 마련에도 ESS 화재에 대한 제조사들의 전향적 책임 및 조치가 선행되기 전에는 국내 상황이 나아지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삼성SDI와 LG화학의 대책 발표 이후에도 이들 회사가 제조한 ESS 배터리 화재가 각 한 차례씩 발생한 만큼, ESS 기술이 불완전한 상황에서 양사가 내놓은 대책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것. 특히 LG화학의 경우 화재가 발생한 ESS가 특정시기, 특정장소에서 제조된 탓에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리콜 요구까지 받은 바 있다. 그러나 당시 LG화학 측은 “원인이 확실히 규명되면 리콜하겠다”며 입장을 유보했다.
한 ESS 배터리 전문가는 “정부의 급격한 탈원전 정책의 결과 국내에서 ESS 화재가 연달아 발생하며 두 회사가 책임을 뒤집어쓰게 됐지만, 양사 또한 마냥 억울하다는 입장을 보일 수는 없다. 현재 양사가 내놓은 대책은 해결책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내놓은 비상대책일 뿐”이라며 “민간 사업자들과 달리 제조사들은 ESS 배터리가 관리되지 못하면 화재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기술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의 ESS를 지금까지 잘 판매해왔던 만큼 도의적 책임에서 자유롭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산업부 2차 조사위 꾸려 ‘무용론’ 해소할까 연이은 ESS 화재에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를 비롯한 정부의 책임 문제가 지적된다. 탈원전 정책을 급하게 밀어붙이며 관리를 소홀히 한 채 시설 확대에 집중했고, 지난 6월 민관합동 ESS 화재사고 원인조사위원회의 발표로 사실상 제조사에 면죄부를 주려했다는 지적이다. 이에 정부는 최근 2차 조사위를 꾸렸다. 산업부에 따르면 산업부는 조사단 구성 단계에서 참여했으나, 실제 조사단의 운영은 전기안전공사가 전담한다. 조사단은 지난 6월 정부 발표 이전 발생한 23건의 화재를 제외하고, 발표 이후 발생한 화재에 집중해 조사할 계획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2차 조사위의 조사 또한 1차 조사위의 조사와 같이 무용할 것이라고 관측한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1차 조사에서 이미 원인규명에 실패했는데 2차 조사로 해답을 찾으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1차 조사에서는 산업부가 조사에 관여하며 정치적 입김이 작용됐을 가능성이 있고, 2차 조사위 또한 ESS 전문가가 전무한 산업부가 구성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며 “위험성이 높은 ESS로 어설픈 정책을 펼친 탓에 현실적, 구조적으로 해결 불가능한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다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