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국제커플 최대 난관, 병문안차 방문했다 ‘발목’…귀국 못한 영유아·임신부 지원 물품 절실
중국 우한에 파견된 전세기가 김포공항에 도착한 장면. 사진=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확산됨에 따라 우리 정부는 감염증의 발원지인 중국 후베이성 내 체류 교민 700여 명을 철수시키기로 결정했다. 귀국은 1월 31일부터 두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확진자 1명을 제외한 700명은 현재 아산과 진천에 위치한 임시생활시설에서 격리 생활을 하고 있다. 14일의 격리조치가 끝나면 마지막 전수 조사 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700명의 교민이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아직까지 후베이성에 남은 사람도 상당수다. 현지 소식에 정통한 후베이성 한인회가 전수 조사한 바에 따르면 현재까지 후베이성 내 체류 인원은 130명이다. 이 역시 자체 조사로 파악한 숫자일 뿐, 한인회와 연락이 닿지 않은 교민도 있어 그 인원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에 따르면 한국 국민과 가족 등 약 200명이 현지에 남아 있다.
이들이 돌아오지 못한 이유는 저마다 제각각 다르다. 가장 안타까운 경우는 귀국을 원했지만 도로 폐쇄로 발이 묶인 사람들이다. 현재 후베이성 내 도로 상황은 좋지 않다. 우한 주민들이 밖으로 빠져 나오는 것을 우한시 외곽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막고 있는 까닭이다. 복수의 교민들 제보에 따르면 자경단을 자처한 일부 주민들은 흉기를 들고 우한시 길목을 막고 서 있거나 흙이나 각종 커다란 물체를 이용해 우한시에서 외곽으로 나가는 길목 곳곳을 봉쇄해두었다.
이 때문에 우한시 외 지역에 살고 있는 교민들의 경우 약속 장소인 우한 텐허공항까지 오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총영사관의 도움을 받아 공안이 미리 길을 열어주는 방식으로 겨우 약속 장소에 들어올 수 있었다. 이마저도 자가용이 있거나 한인회 단체 대화방에 소속된 사람들이어야 가능했다. 애초 전세기 탑승을 신청한 사람은 722명이었으나 이 가운데 일부는 탑승 당일 약속 장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에 대해 최덕기 후베이성 한인회장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세 분 정도가 탑승을 원했지만 이동할 길이 없어 스스로 포기하셨다”고 말했다.
가족 문제로 한국행 전세기를 타지 못한 사람도 있다. 국제결혼을 한 이들이 대표적 사례다. 2018년 중국인 남편과 결혼한 한국인 A 씨는 사업을 하는 남편과 함께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는 한중 국제 커플이다. 올해도 늘 그렇듯 설을 맞아 중국 후베이성에 위치한 시댁을 찾았으나 때마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지는 바람에 이곳에 발이 묶여버렸다.
A 씨는 “현재로서는 한국으로 돌아갈 방법이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가 교민들을 위해 전세기를 띄운다는 뉴스를 접하고 한인회에 연락을 취하려고도 해봤다. 그러나 중국 국적을 가진 사람은 해당 전세기에 탈 수 없다는 중국 정부의 방침이 담긴 공문을 받았다. 게다가 A 씨에게는 지난해 출산한 두 살배기 아이도 있었다. 남편의 도움 없이 혼자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돌아와 2주 동안 격리되는 것은 무리였다.
A 씨의 걱정은 2일 우리 정부가 후베이성 지역 외국인의 입국 금지 조치를 발표하면서 더욱 커졌다. 중국인인 남편의 입국도 불투명해진 것. A 씨는 “아이와 나 모두 한국 국적을 갖고 있어 언제든지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남편은 언제 입국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 됐다. 아이가 많이 어려 한국에 돌아간다 해도 14일의 격리 생활을 잘 견딜지 미지수다. 이곳에 남아 상황을 지켜보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A 씨와 가족들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비상식량과 마스크 등을 아끼는 중이다.
애가 타기는 B 씨도 마찬가지다. B 씨는 한중 혼혈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인이다. 몸이 불편한 조부모님을 병문안 하기 위해 얼마 전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를 방문했다가 꼼짝없이 갇혀버렸다. B 씨 역시 전세기를 통해 한국에 들어올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일찌감치 포기했다고 밝혔다. 우한시 상황이 날로 악화되면서 조부모님을 보살펴주던 간병인이 떠나버린 탓이다. 병문안 차 방문했다가 병간호를 도맡게 된 셈이다.
B 씨는 “우한시는 굉장히 큰 도시였는데 지금은 유령도시처럼 변했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돈을 준다고 해도 간병인이 오지 않는다. 원래는 심부름 앱을 이용해 장을 봤는데 이제는 사람 구하기가 힘들다. 이런 상황에 내가 떠나면 거동이 불편한 조부모님의 병간호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귀국을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B 씨 역시 정해진 체류 기간이 있어 귀국을 마냥 미룰 수는 없는 법. 그는 “계속해서 간병인을 알아보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일궈놓은 사업이 있는 사업가나 임신부, 나이가 어린 영유아의 경우 안전상의 문제로 귀국하지 못하고 후베이성에 남아 있다. 아직까지 정부에서 전세기를 추가 운행할 예정이 없어 이번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는 우한시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3일 우한 잔류 교민이 마스크와 손 세정제 등 방역 물품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파악하고 추가 지원 조치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