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동물복지 위한 사회적 비용 마련” vs 반려인 “의료보험 등 실질적 도움 있어야”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대선운동 당시 반려인들과 함께 반려동물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고성준 기자
1월 14일 농림축산식품부가 향후 5년간의 동물보호복지 정책 방향을 담은 ‘2020~2024년 동물복지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종합계획은 ‘동불보호법’에 근거한 법정계획으로 2015년 제1차 동물복지 종합계획에 이은 두 번째다. 동물보호복지 인식 개선, 반려동물 영업 관리 강화, 유기학대 동물 보호 수준 제고, 농장 동물의 복지 개선, 동물실험 윤리성 제고, 동물보호복지 거버넌스 확립 등 총 6개 추진과제가 주 내용이다.
논란이 된 건 ‘동물복지 종합계획 요약본’에 적힌 마지막 두 문장이었다. 2022년부터 반려동물 보유세 또는 부담금, 동물복지 기금 도입 등을 검토하여 지자체 동물보호센터, 전문기관 등의 설치 및 운영비로 활용하는 방안을 드러낸 것. 정부가 반려동물 보유세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반려동물 보유세를 바라보는 정부와 이해관계자의 입장은 같은 듯 다르다. 먼저 농식품부는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동물복지를 위한 산하 전문기관을 운영하는 과정에 필요한 자금을 세금을 통해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매년 유기 동물이 증가해 관련 비용 역시 늘어나고 있는데 이 비용을 대부분 지자체 산하 동물보호센터에서 책임지고 있다. 즉 지자체 동물보호센터 운영비 일부를 세금으로 마련하겠다는 뜻이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2018년 발생한 유기 및 유실 동물 수는 약 12만 마리로, 일평균 331마리의 동물이 버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약 97억 원이었던 보호소 운영비용 역시 2018년 200억 원 규모로 증가했다. 유기 동물보호센터 운영 및 공공시설 분뇨 처리 등이 주 사용처다.
서울 시민들이 반려동물과 함께 산책을 즐기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보유세를 찬성하는 일부 반려동물 양육 가구들은 그보다 실질적인 혜택을 바라는 눈치다. 세금 납부 이후에는 반려동물을 위한 편의 시설 확대, 의료비 완화 등의 혜택이 일정 부분 있어야 한다는 것. 특히 의료비 완화에 대한 바람이 높다. 2019년 4월 ‘동물병원 의료서비스 발전 방안’ 정책 토론회에서 한국소비자연맹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반려인의 92%가 동물병원 진료비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의료비 안정을 위해서는 표준코드화 도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 강서구에서 동물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한 수의사는 “표준코드화를 도입하면 질병에 대한 코드번호가 부과된다. 다른 병원을 간다고 해도 같은 질병으로 처방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9년 동물 의료수가제도 폐지 이후 진료비를 수의사가 자의로 결정하고 있다. 반려동물용 의료보험을 든다고 해도 병원마다 진료비가 달라 보험금 책정이 어려울 것이다. 이 밖에도 반려동물등록제 등 선행되어야 할 과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지자체 산하의 동물보호센터를 믿지 못하겠다는 의견도 나왔다. 애묘인을 위한 온라인 카페에서 유기견·유기묘 구조활동을 하고 있는 최명숙 씨(61)는 “애묘인으로서 시보호소의 행정조치를 믿지 못하는 편이다. 길고양이가 위험한 거리를 돌아다녀 신고했더니 며칠 뒤 똑같이 생긴 고양이를 다시 만났다. 민원이 들어오면 대충 잡는 척만 하고 자리를 뜨는 거다. 그런데 잡혀가도 걱정이다. 분뇨로 뒤덮인 좁은 철창에서 10일 동안 살다가 입양되지 않으면 안락사시킨다. 일처리가 미진한 보호소가 상당히 많은데 무턱대고 세금을 지원하는 것은 위탁 동물보호소 운영자 배만 불리는 격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어떤 기준으로 모든 반려동물 양육 가구에 과세를 할지도 의문이다. 버려진 동물들의 임시 보호소를 자처해 유기 동물들을 돌보고 있는 이른바 캣대디, 독맘들도 존재하는 까닭이다. 경기도에 거주하며 20여 마리의 유기묘를 돌보고 있는 캣맘 김 아무개 씨는 “돌보고 있는 동물 대부분은 나이가 들거나 병에 걸려 입양 가능성이 적은 아이들이다. 보호소로 간다고 해도 안락사당할 가능성이 높아 선뜻 보내지 못했다. 치료비는 일부 후원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자비로 부담했다. 20마리에 대한 세금이 부과된다면 어떻게든 납부하겠지만 보호 활동은 더 이상 못하지 않을까 싶다”는 입장을 전했다.
논란이 과열되자 농식품부는 보유세 도입은 확정이 아닌 검토 단계라고 거듭 해명하고 나섰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반려동물 보유세 도입에 대해서는 확정된 것이 없어 그 기준에 대해서도 논의한 바 없다. 2022년부터 이에 대한 공론화 과정을 거쳐 도입 여부와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뜻”이라며 “내년 중으로 정책 여건과 추진 성과 등을 분석하고 종합 계획을 수정·보완할 예정이다. 동물보호단체와 생산자 단체, 농가 등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세부 방안을 구체화할 것”이라고 전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반려동물 보유세 내는 선진국 “세금 내는 만큼 혜택 제공” 반려동물 보유세의 선례는 외국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독일은 반려동물 관련 세금을 부과하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다. 훈데스토이(Hundesteuer)라는 이름의 반려견 세금이 매년 120유로(약 16만 원) 부과되며 반려견의 무게와 크기, 견종의 위험한 정도에 따라 더 높은 세금이 책정되기도 한다. 네덜란드도 반려동물 양육가구에 반려견 1마리당 약 15만 원의 세금을 부과하도록 있다. 오스트리아는 모든 반려견을 내장형 인식칩으로 관리하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1마리당 10만 원의 세금을 납부하도록 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경우 반려견을 키우기 위해서는 수의청의 허가증이 필요하다. 이 허가증은 매년 일정 비용을 내고 갱신하도록 해 사실상 반려동물 보유세의 형태를 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중성화 수술을 받지 않은 반려견은 6만 원, 중성화 수술을 받은 반려견은 1만 원의 세금을 내고 있다. 반려동물 보유세의 공통적인 목적은 사회적 비용의 책임을 반려동물 양육 가구에게 지게 함으로써 동물의 권리를 강화한다는 것이다. 세금 납부에 따른 사회적 혜택도 마련되어 있다. 독일의 경우 반려견과 함께 대중교통이나 식당을 이용하는 것에 어떤 제약도 없다. 맹견은 반려견 훈련 교육을 이수하면 세금을 일부 감면해주기도 한다. 반려견이 타인에게 예기치 못한 상해를 입혔을 때 이를 배상해주는 책임보험제도도 마련되어 있어 변호사비와 소송비용까지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최희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