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팔다리로 ‘버둥버둥’ 개그맨 같은 입담에 독설까지…촌스럽고 모자란 모습 지친 일본 사회에 힐링
후낫시 프로필 사진. 짧은 팔다리가 매력포인트다.
그중에서도 독보적인 인기를 자랑했던 것이 후낫시다. 후낫시는 2000년에 한번 열린다는 전설의 ‘배의 요정’을 모티브로 했다. 몸 전체가 샛노랗고 팔과 다리가 너무 짧아 버둥거리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다. 흔히 마스코트라고 하면 말없이 손만 흔들어주던 시절. 후낫시는 개그맨 뺨치는 재치 있는 입담으로 ‘웃겨서’ 인기를 끌었다. 인형 캐릭터인데 말을 하고, 심지어 독설까지 날려주니 다른 캐릭터와 가히 비교불가다.
당시 후낫시의 말투도 크게 유행했었다. 일본어로 배가 ‘나시’라서 말끝마다 항상 낫시를 붙이는 게 특징. 가령 ‘반갑다낫시’ ‘잘가낫시’처럼 말이다. 분명 B급 ‘병맛’인데도 묘한 중독성이 있어 모두가 그의 블랙홀 같은 매력에 빠져들었다.
후낫시 프로필 사진. “잘 부탁해낫시”처럼 말 끝마다 낫시를 붙이는 것이 특징이다.
한동안 ‘TV를 틀면 후낫시가 나온다’는 말이 떠돌 정도였다. 하지만 웬일인지 요 몇 년간 방송 출연이 뜸하다. 한국 캐릭터 ‘펭수’가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는 가운데, 먼저 인기를 얻었던 후낫시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최근 일본 매체 ‘주간다이아몬드’는 후낫시의 근황을 밝혀 관심을 모았다. “TV에서 후낫시를 만날 기회가 줄어들었지만, 지역 행사를 뛰며 여전히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러면서 매체는 후낫시가 이토록 오랫동안 사랑받는 비결에 대해 집중 조명하는 기사를 실었다.
후낫시는 2011년 11월 탄생했다. 독특한 점은 기업이나 지자체가 아닌, 지바현에 위치한 후나바시시의 시민이 개인적으로 만든 캐릭터라는 점이다. “동일본 대지진 등으로 침체된 지역 분위기를 북돋우고자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초창기에는 인형 퀄리티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많았다. 당연히 후나바시시는 이를 공식 마스코트로 채택할 리 없었고, 후낫시는 개인 유튜브를 통해 인지도를 넓혀나갔다.
후낫시와 최대 라이벌 쿠마몬. 사진=트위터
다른 지역 캐릭터들은 정부기관의 든든한 지원을 얻어 스타덤에 오르기 시작했다. 반면 후낫시는 사비를 털어가며 외롭게 지역 행사를 돌았다. 일생일대의 라이벌로 꼽히는 ‘쿠마몬(구마모토 지역의 공식 캐릭터)’은 등장하자마자 엄청난 대박을 터트렸다. 이에 비하자면 후낫시는 무명생활이 한참 길었던 셈이다.
그런 후낫시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2013년 여러 마스코트 캐릭터들과 함께 CF에 출연하게 된 것. 수많은 캐릭터들 사이에서 우스꽝스럽게 점프하는 등 후낫시의 격렬한 움직임이 네티즌들의 눈에 띄었고, 이후 방송 출연을 하면서 인기에 불이 붙었다. 특히 다듬어지지 않는 후낫시의 직설 화법이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여기에 인형탈을 쓰고도 가뿐히 1m나 점프하는 모습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더 말할 것도 없이 그해 TV 토크쇼는 물론, 각종 버리어티쇼 섭외 1순위는 후낫시였다.
후낫시의 굉장한 점프력. 사진=공식 트위터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일례로 2014년 후낫시의 방송 출연은 무려 101회, CF는 20개 이상을 촬영했다. 수첩, 손수건, 폰케이스 등 관련 굿즈가 쏟아졌고 매출은 무려 8억 6800만 엔(약 93억 원)을 기록했다. 경제효과는 8000억 엔(약 8조 6000억 원)으로 추정되는 등 후낫시는 연일 화제를 뿌렸다.
인기에 힘입어 음반도 발표했다. “누가 날 차더라도 누가 날 던져도, 다시 일어나면 되는 거야낫시.” “남들에게 미움을 받으면 어때. 난 나의 길을 가는 거야낫시.” 노래 제목은 후나후나후낫시. 깨방정 후낫시의 목소리가 계속 맴도는 중독성 강한 멜로디의 곡이다.
후낫시는 음반도 발표했다. 사진=공식 트위터
전성기 시절 “연봉이 7억 엔(약 76억 원)”이라는 설도 돌았던 후낫시. 최근 수익을 묻자 “그에 비해 줄었다”고 말했다. 인기를 얻은 후에도 전처럼 후낫시는 사치하지 않고 임대 원룸에서 살고 있단다. 저축액은 배로 치면 100만 개 정도 모았다. 그러면서 “배 가격이 궁금해서 지금 계산기 두드려본다고? 응 그런 거 계산하는 거 아니야~낫시”라고 덧붙였다.
후낫시는 “사실 요정계로 돌아가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속내를 토로하면서도 “지금까지 응원해준 이들이 마음에 걸려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고 전했다. 자신이 활동함으로써 누군가 힘을 얻으면 그것으로 좋다는 것이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속 깊은 후낫시를 보고 눈에서 배즙이 흐른다”는 소감이 올라오기도 했다.
‘주간다이아몬드’는 “9년 차 캐릭터 후낫시의 인기가 아직 건재하다”고 보도했다. 후낫시 상품 숍은 여전히 북새통을 이루고, 이벤트에서도 그를 보기 위해 많은 팬들이 몰린다. 특히 캐릭터로서는 처음으로 ‘일본 공연의 성지’ 부도칸에서 단독 라이브 공연도 개최했다. 사실 일본에서 유루캬라 붐은 해마다 쇠퇴하고 있다. 각 지자체들은 한때 인기를 얻었던 마스코트 캐릭터들 대신 유명 배우로 교체해 홍보 영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들에 비하면, 후낫시는 롱 스테디셀러 캐릭터다.
후낫시 관련 굿즈를 판매하는 후낫시랜드. 사진=공식 홈페이지
이렇게 후낫시가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는 뭘까. 그건 누군가 의도적으로 띄운 캐릭터가 아니라, 스스로의 매력으로 떴기 때문이다. 뒤를 봐주는 단체는커녕 매니저도 없이 후낫시는 혼자서 스케줄을 소화했다. 그러면서도 항상 “힘내겠습니다낫시”하며 피곤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촌스럽고 다소 부족해 보이는 인형탈은 지친 일본 사회에 힐링이 되어 줬다.
“느슨하게 헐렁하게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 모습으로 살아도 된다”는 후낫시의 메시지도 인상적이다. 조금 덜 계산하고, 덜 완벽한 것에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다. 주간다이아몬드는 “요즘 연예계에서 후원 없이 오직 실력만으로 인기를 누린 후낫시는 매우 희귀한 존재”라고 평가했다.
향후 활동계획은 어떻게 될까. 후낫시는 “올해 초심으로 돌아가려 한다”며 “지난해 지바현은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주민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고 지역 홍보에도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3년 후쯤에는 거의 활동을 마치고, 남쪽 섬으로 이주해 유유자적한 생활을 보내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가끔씩 후나바시로 와서 아이들을 기쁘게 해줄 생각이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후낫시 정체는? 일본 네티즌 수사대에 의하면, 후낫시 본체는 지바경제대학을 졸업한 남성 기타미 겐지가 유력하다. 특허청 상표등록에 후낫시의 등록자 이름이 기타미 겐지로 되어 있다는 것과 그의 키 160cm가 증거로 거론된다. 기타미는 후나바시에서 살면서 빈티지가구를 판매하는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후낫시의 활동이 바빠져 현재는 문을 닫았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