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보조금 110억 선거보조금 440억 놓고 이합집산…한국당은 당 쪼개서, 제3지대는 당 합쳐서 더 받기
정치권에서 선거 기획을 주로 도맡아온 한 인사의 말이다. 총선은 대선과 함께 정치권에서 펼쳐지는 가장 큰 전쟁으로 꼽힌다. 이를 앞두고 각 정당은 전략 수립에 분주한 모습이다. 그 핵심은 ‘군자금’ 확보다. 이른바 정치권의 ‘쩐의 전쟁’이다. 디데이는 2월 15일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각 정당에 경상보조금을 지급하는 날이다.
2월 5일 미래한국당 중앙당 창당대회에서 손을 맞잡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한선교 미래한국당 대표. 사진=박은숙 기자
선관위 보조금은 분기별로 각 정당에 지급되는 예산이다. 국가가 공식적으로 정당에 지원하는 정치자금으로 정당보조금으로도 불린다. 2019년 선관위는 총 437억 5100만 원을 분기별로 나누어 각 정당에 지급했다. 현행법상 정당보조금 지급 방식은 다음과 같다.
먼저 원내 20석 이상의 교섭단체 구성 정당이 정당보조금 전체의 50%를 균등하게 배분받는다. 5석 이상 20석 미만 정당은 총액의 5%를 지급받는다. 의석이 없거나 5석 미만의 군소정당은 최근 선거에서의 득표율 등 일정 요건을 충족할 경우 총액의 2%를 지급받는다.
이렇게 정당 배분이 끝나면 남은 돈이 존재한다. 이 금액의 절반은 의석수 비율에 따라 다시 정당에 배분한다. 나머지 절반은 가장 최근 치러진 총선 득표율에 따라 지급한다. 정치자금사무관리규칙 제30조 3항에 따르면 선관위는 해당 분기에 해당하는 금액을 2, 5, 8, 11월의 15일에 각 정당에 지급한다.
이 방식에 따라 2019년 11월 15일 4분기분 정당보조금(총 108억 5138만 원)을 7개 정당에 지급했다. 더불어민주당은 35억 9310만 원으로 가장 많은 돈을 받았고 자유한국당이 35억 3076만 원으로 그 뒤를 이었다. 당시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고 있던 바른미래당은 25억 2667만 원을 받았다. 정의당(6억 9572만 원), 민주평화당(2억 4915만 원), 민중당(2억 4000만 원), 우리공화당(1606만 원)도 정당보조금을 받았다.
21대 총선을 앞둔 2020년 1분기 정당보조금 지급을 앞두고 정가의 움직임은 분주한 모습이다. 분기별 정당보조금(약 110억 원)과 함께 선거보조금(약 440억 원)까지 총 550억 원의 돈이 정치권에 풀리는 까닭이다. 각 정당이 보조금을 한푼이라도 더 받으려 ‘헤쳐모여’를 궁리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쩐의 전쟁’에서 더 많은 군자금을 확보하는 정당은 총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한다. 2020년 2분기부터 4분기 정당보조금 규모는 총선 결과에 따라 결정된다. 더 나아가 향후 4년간 지급받을 정당보조금 역시 총선 결과에 좌지우지될 전망이다.
자유한국당은 21대 총선부터 도입될 연동형 비례대표제 대책의 일환으로 ‘비례 정당 창당’을 내세웠다. 비례대표 의석 확보를 위해 기획된 미래한국당은 2월 5일 공식 출범했다. 이날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중앙당 창당대회에 참석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미래한국당엔 자유한국당에서 둥지를 옮겨 합류한 분들이 많은데 어디 있든 마음은 한결같다”며 미래한국당이 자유한국당과 같은 식구임을 강조했다.
미래한국당 출범 이튿날인 2월 6일 자유한국당은 의원 총회를 열어 조훈현 의원(비례대표)을 제명하고 출당시키기로 결의했다.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조 의원은 미래한국당 신임 사무총장으로 내정됐다. 김성찬 의원(경남 창원진해, 재선)과 최연혜 의원(비례대표) 역시 2월 15일 전까지 미래한국당으로 당적을 옮길 예정이다. 자유한국당은 2월 15일 전까지 미래한국당이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은 의원을 자체 이적시킬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은 정당보조금 총액의 50%를 나눠 갖는다. 이런 제도 아래서 미래한국당 창당은 ‘비례대표 의석 확보’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두 당으로 쪼개진 자유한국당과 미래한국당의 질량은 같지만 이들이 지급받을 정당보조금 총액은 늘어날 것이 확실시된다. 비례대표 의석 확보를 목적으로 출범한 미래한국당은 여러모로 법의 사각지대를 교묘하게 파고드는 모양새다.
2월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통합신당준비위원회 1차 회의. 사진 왼쪽부터 정운천 새로운보수당 의원, 심재철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이언주 미래를 향한 전진4.0 대표. 사진=박은숙 기자
자유한국당은 세를 불릴 경우 더 많은 정당보조금을 받아낼 수도 있다. 자유한국당은 새로운보수당, 미래를 향한 전진4.0 등 보수정당들과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정당보조금 규모를 결정짓는 기준은 의석수와 지난 총선에서의 득표율이다. 만약 2월 15일 전까지 보수 통합이 완료된다면 범한국당 세력이 지급받을 정당보조금 금액은 더 커지게 된다. 범한국당 세력의 ‘헤쳐모여’가 보조금 그래프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도 있는 셈이다.
제3지대의 쩐의 전쟁도 치열한 양상이다. 최근 바른미래당은 소속 의원들의 잇따른 탈당으로 원내 교섭단체 지위를 상실했다. 정당보조금 지급을 앞두고 청천벽력 같은 사태였다. 바른미래당은 2019년 4분기 정당보조금 25억 2667만 원을 지급받은 바 있다. 바른미래당이 원내 교섭단체 지위를 상실한 상태로 2월 15일을 맞을 경우 2020년 1분기 정당보조금은 6억 원대로 급감하게 된다.
이에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원내 교섭단체 지위를 회복하기 위한 타개책을 내놨다. 이른바 ‘3당 합당’이었다. 손 대표는 2월 5일 바른미래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대안신당, 민주평화당과 통합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손 대표는 “제3지대 중도통합이 긴밀히 협의되고 있고 조만간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대안신당과 민주평화당 역시 통합에 긍정적 사인을 보내면서 3당 합당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바른미래당은 2월 7일 대통합추진위원회를 발족했다. 이날 손 대표는 “2월 12일이나 13일까지는 창당 보고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 대표가 강조한 시점은 ‘디데이(정당보조금 지급일)’를 코앞에 둔 시점이다. 2월 7일 기준 바른미래당(17석), 대안신당(7석), 민주평화당(4석) 의석수 합은 28석이다. 산술적으로 친안철수계 의원 7명이 추가 탈당하더라도 원내 교섭단체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
1월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연동형 선거제 흔드는 꼼수정당 퇴치를 위한 긴급토론회’. 사진왼쪽부터 유성엽 대안신당 의원, 조배숙 민주평화당 원내대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사진=연합뉴스
범한국당 세력과 제3지대 신당의 ‘헤쳐모여’가 계획대로 진행됐을 경우 550억 쩐의 전쟁 판세는 민주당에 불리하다. 미래한국당이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하고, 자유한국당이 새로운보수당과 통합을 마치는 시나리오가 실현된다면 총선 전 범한국당 세력이 지급받는 보조금(정당보조금+선거보조금) 규모는 더불어민주당을 넘어선다.
이 경우 더불어민주당은 보조금 169억 원을 받는다. ‘통합신당(자유한국당+새로운보수당)’ 보조금은 143억 원, 미래한국당 보조금은 84억 원이 된다. 범한국당 세력의 보조금 총액은 약 227억 원가량이다. 의석수가 더 많은 더불어민주당이 범한국당 세력보다 보조금을 적게 받는 상황이 발생하는 셈이다. 제3지대 신당이 원내 교섭단체가 될 경우 총선 전까지 보조금 84억 원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쩐의 전쟁’ 제1장은 2월 15일 정당보조금 지급일을 기점으로 일단락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까지 정치권 곳곳의 ‘헤쳐모여’가 마무리되지 못할 땐 3월 31일이 새로운 데드라인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약 440억 원 규모의 선거보조금이 정당에 지급되는 날이다.
한편, 신당 창당을 준비 중인 안철수 전 의원은 “정당 규모와 국고보조금을 반으로 줄이면서 효율적으로 일하는, 작지만 큰 당을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안 전 의원은 2월 4일 ‘일하는 국회 개혁방안’ 기자회견을 통해 “지금 대한민국 정당이 얼마나 불투명하고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는지 국민들은 잘 모르실 것”이라며 정치권을 향한 비판의 날을 세웠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