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종로 맞대결 회피, 중진 대타 투입도 회의론…이정현 종로행으로 한숨 돌릴까
자유한국당은 황교안 대표(사진)의 종로 출마 가능성 낮아짐에 따라 ‘이낙연 대항마’ 찾기에 고심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차기 주자 지지율 선호도 조사에서 줄곧 1위를 달리고 있는 이낙연 전 총리는 종로 대전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선점한 상태다. 큰 이변이 없는 한 무혈입성이 점쳐진다. 정치권에선 그 누가 나서더라도 이 전 총리를 앞서긴 힘들 것이란 관측이 주를 이룬다. 자유한국당 한 의원실 관계자는 “지금 상황에서 이 전 총리를 이기는 건 쉽지 않다”면서 “우리뿐 아니라 보수 전체 입장에서 이낙연의 벽이 높게만 느껴질 따름”이라고 했다.
1월 3일 “총선에서 수도권 험지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쉽사리 지역구를 결정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황 대표가 언급한 수도권 험지의 최우선으로 거론됐던 곳은 종로다. 정치권에선 전·현 정권 총리 간 대결 성사 여부에 포커스가 맞춰졌다. 이를 두고 황 대표 측에선 정치적 부담감을 호소했다. 승산도 희박할뿐더러 자칫 질 경우 내상이 클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자 어느 순간부터 자유한국당 내부에선 황 대표의 종로 출마 논의가 자취를 감췄다. 대신 황 대표가 서울 용산, 양천갑, 영등포을 등을 검토 중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한국당이 서울 전체 지역구를 상대로 가상 여론조사 실시를 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험지 출마 명분과 총선 승리라는 실리를 모두 챙길 수 있는 지역구 선별 작업에 한창인 것으로 읽힌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 사진=임준선 기자
자유한국당 내에선 이낙연 전 총리와의 맞대결을 피하는 듯한 황 대표 모습에 부정적 시선이 존재한다. “이낙연을 피해 도망갔다”는 ‘도망자 프레임’이 씌워질 것이란 우려도 뒤를 따른다. 향후 대선에서 맞붙더라도 불리할 수 있다는 얘기다. 또한 중진들을 향한 당 지도부의 험지 출마론 요구가 퇴색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황 대표의 종로 출마 불씨가 아직 꺼지지 않았다고 전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황 대표 차출이 어려워진 자유한국당은 ‘이낙연 대항마’ 찾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후보군조차 좁히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각에선 “불출마 선언한 김무성 의원을 전략공천해 정면승부를 하자”는 시나리오가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현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정가의 지배적인 관측이다.
이 밖에 보수 세력 통합을 전제로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과 유승민 새로운보수당 의원을 종로에 공천하는 방안도 떠올랐다. 2월 6일 미국에서 귀국하는 홍정욱 전 의원 이름도 급부상했다. 홍 전 의원은 출마 의지가 강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당 내부에선 “황 대표 동의를 얻긴 어려워 보이는 인물들”이란 반응이 새어 나온다. 한 자유한국당 관계자는 “지금 거론되는 인사들이 종로에서 선전할 경우 당내에서 황 대표의 입지가 흔들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했다. 황 대표로선 종로를 두고 딜레마에 빠진 형국이다.
자유한국당이 종로 선거 전략에 있어 새로운 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이른바 ‘정치 신인 기용론’이다. 2012년 19대 총선 당시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이 부산 사상 지역구 ‘문재인 대항마’로 20대 여성 정치인 손수조 후보를 전략공천했던 사례와 유사한 시나리오다. 사실상 패배를 가정하고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맞춤형 전략이다. 박완수 자유한국당 사무총장은 2월 3일 정치 신인 기용론과 관련해 “현재 검토되고 있는 여러 안 중 하나”라고 밝혔다.
2월 3일 21대 총선 서울 종로 지역구 출마를 선언한 이정현 무소속 의원. 사진=박은숙 기자
이처럼 이낙연 대항마 찾기가 난항에 빠지자 황 대표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거세지고 있다. 전여옥 전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신) 의원은 2월 3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한국당 하는 꼴이 기가 막힌다”면서 황교안 대표를 향해 “제 정신 차리고 종로에 출마하라”고 했다. 전 전 의원은 “잔머리 굴리며 도망 다니면 ‘황교활’에 ‘황교앙’이 된다”면서 황 대표 출마 가능성이 점쳐지는 지역구(서울 용산, 양천갑, 영등포을)들을 두고 “국민을 놀리다 못해 바보로 아는가. 세 군데는 누구나 다 아는 한국당의 양지”라면서 “양지 중에서도 햇볕이 드는 성지급”이라고 지적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도 2월 2일 “보수를 살리려면 황교안 대표는 자신을 버려야 한다”면서 “탄핵된 정부의 패전처리 투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했다. 진 전 교수는 “종로 여론조사 결과가 더블스코어였다”면서 “가망 없는 싸움이지만 최선을 다해 명예롭게, 원칙 있게 패하라”고 덧붙였다. 박지원 대안신당 의원은 2월 3일 K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황 대표가 결국 등 떠밀려 종로에 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 의원은 “황 대표가 종로를 선택하고 다른 대표급도 ‘수도권 험지에 나가자’고 했을 때 (험지출마론의) 설득력이 있다”면서 “당대표는 (험지가 아닌 곳에) 여론조사를 돌리면서 다른 주자들에게 ‘수도권 험지에 나가라’고 하면 설득력이 없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종로엔 변수가 하나 생겼다. 새누리당 대표 출신 이정현 의원(무소속)이 종로 출마를 선언한 것이다. 이 의원은 2월 4일 “대한민국의 봄을 알리는 전령이 되기 위해 종로에 출마하고자 한다”는 말과 함께 출사표를 던졌다. 자유한국당 안팎에선 보수 진영 통합이 성사될 경우 이 의원이 이 전 총리와 겨룰 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또 다른 자유한국당 관계자는 “이 의원의 종로 출마 선언으로 황 대표가 일단은 한숨을 돌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황 대표의 타 지역구 출마 명분이 약화되는 상황에서 이 의원 출마 선언은 그야말로 ‘땡큐’일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이 의원은 종로 출마에 앞서 주변인들에게 ‘호남 사람(이낙연 전 총리)’은 호남 사람이 상대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고 귀띔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