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냐 불출마냐 선택하라” 강경론 일자 결국 백기…이낙연 전 총리와 대선 전초전 성사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월 7일 오후 영등포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21대 총선에서 서울 종로구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당초 황교안 대표는 종로 출마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정치적 상징성이 큰 만큼 패배하면 내상도 적지 않을 것이란 우려 때문이었다. 여기엔 경쟁자가 이낙연 전 총리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황 대표 측에선 ‘보수진영 차기주자인 황 대표를 종로로 끌어내 타격을 주겠다는 여권 프레임에 말리지 않을 것’이란 견해가 주를 이뤘다.
황 대표가 무엇보다 원내 입성을 간절히 원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황 대표는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원외로서의 한계를 절감했다고 한다. 황 대표계로 분류되는 한국당 인사는 “황 대표가 대여 투쟁을 이끌면서도 두각을 잘 나타내지 못했던 것은 원외였기 때문이었다. 의원들과 당직자들을 통솔하는 데 아무래도 제약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황 대표는 종로 대신 용산과 양천 등을 후보지로 넣고 가상 여론조사를 돌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황 대표 주변에선 종로를 제외한 서울 전 지역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했다는 얘기까지 흘러 나왔다. 서울 출마 명분과 함께 국회의원 당선이라는 실리까지 동시에 챙기려 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자 황 대표를 향한 비판이 쏟아졌다. 한국당 한 중진 의원은 2월 3일 기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황 대표가 ‘수도권 험지’를 언급했을 때 당연히 종로에 출마하는 줄 알았다. 이낙연 전 총리와의 대결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을 때 한 말이었기 때문”이라면서 “지금 거론되는 용산과 양천이 어딜 봐서 험지라는 얘기인지 모르겠다”고 꼬집기도 했다.
당에서는 황 대표 행보가 인적쇄신 작업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반응이 나왔다. 당 대표조차 험지를 피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는데, 어떻게 중진들에게 험지에 출마하라고 요구할 수 있겠느냐는 반문이었다. 실제 험지 출마를 요구받았던 중진들 중에선 “황 대표가 나간다면…”이라는 단서를 다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한국당 공천관리위원회(위원장 김형오)에서 불거진 잡음은 황 대표 입지를 더욱 약화시켰다. 몇몇 위원들은 회의석상에서 황 대표의 종로 출마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황 대표가 종로에 출마하지 않을 경우 총선에 불출마해야 한다는 강경론도 대두됐다. 이에 몇몇 위원들은 ‘황 대표가 질 경우 전체 선거판에 영향을 준다’며 반대한 것으로 전해진다. 어찌됐건 물 건너 간 것으로 보였던 황 대표의 종로 출마 여부는 다시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 사진=임준선 기자
이 과정에서 황 대표 측도 장고 모드로 돌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의 황 대표 측 인사는 2월 6일 “선거가 본격 시작됐는데 본인의 출마를 놓고 당이 볼썽사나운 모습을 벌인 것에 대해 대표로서 큰 책임감을 토로했다고 들었다”면서 “이낙연이 무서워서 피한 것은 아니었는데, 마치 그런 것처럼 비친 것에 대해서도 안타까워했다. 종로 출마를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고민 중”이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그리고 황 대표는 2월 7일 오후 3시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종로 출마를 선언했다. 황 대표는 “종로를 반드시 정권심판 1번지로 만들겠다”며 “문재인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민심을 종로에서 시작해 서울·수도권과 전국으로 확산시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황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종로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청춘의 꿈을 키워온 희망의 땅이다. 가로수 하나하나와 골목 곳곳에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 배어 있다”면서 종로와의 인연을 강조하기도 했다. 황 대표는 종로구에 있는 경기고등학교(현재 정독도서관 위치)와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했다.
일찌감치 종로 출마를 선언하고 선거 운동에 돌입한 이낙연 전 총리는 황 대표의 출마 선언 직후 입장문을 내 “종로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선의의 경쟁을 기대한다”고 했다. 이 전 총리는 1월 23일 종로 출마를 선언하면서도 황 대표를 향해 “신사적인 경쟁을 기대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로써 이번 총선에서 종로는 최대 격전지이자 핫한 지역구로 떠올랐다. 전·현 정부 총리 출신 간 대결일 뿐 아니라 차기 주자 지지율 1, 2위 간의 승부인 까닭에서다. 사실상 대선 전초전인 셈이다. 한국당에선 수도권을 모두 내주더라도 종로만 승리하면 이긴 선거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일단 기선은 이낙연 전 총리가 제압한 상태다. 차기 지지율을 묻는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이 전 총리는 황 대표를 두 배 이상 앞서 있다. 물론 황 대표 측은 “총선과 대선은 다르다”면서 섣부른 전망을 경계하는 모습이다. 정치권에선 떠밀리다시피 종로로 뛰어든 황 대표에 비해 이 전 총리가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는 데 이견이 거의 없다.
민주당 한 의원은 “황 대표는 여러 군데를 기웃거리다가 결국 종로 아니면 나올 곳도 없는 상황에 처했다. 불출마하느니 종로로 온 것 아니냐”면서 “종로 유권자들이 이 부분을 정확히 판단해주실 것”이라고 꼬집었다.
황 대표는 종로 출마 선언이 늦어진 것에 대해 2월 7일 기자회견을 통해 “당의 전체적인 선거 전략을 바탕으로 책임감 있게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에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어떤 선택이 대한민국을 살리고 당을 위한 것인지 많은 고뇌를 했다. 특히 통합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당대표 총선 거취를 먼저 밝히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