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적 배로 일본이 통제하기 애매, 검역법 발동…내부인 아닌 외부인 보호하는 ‘도시형 감염 축소판’
일본 요코하마에 정박 중인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무더기로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승객 중 한 명이 선상 분위기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BBC 뉴스 캡처
“호화 크루즈가 아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감옥이다.” 해외 주요 외신들도 이 문제를 비중 있게 다뤘다. 영국 BBC는 ‘승객들이 SNS에 올린 사진’을 중심으로 선내 모습을 보도했다. ‘가급적 방안에만 머물 것’ ‘갑판 위로 외출할 때는 마스크를 착용할 것’ ‘타인과는 간격을 1m 띄울 것’ 등등 규칙을 전하면서 “배안에 갇힌 승객들의 하루가 감옥과 다름없다”고 덧붙였다.
미국 CNN은 “육지보다 빠르게 감염이 확산될 것”이라는 전문가의 견해를 소개했다. “격리된 배에서 승객들이 함께 있도록 강제된 상황이라 전염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신혼여행 차 크루즈선에 탑승했다는 미국인 부부는 “이미 감염된 유람선이 아니라 안전한 환경에 격리해야 마땅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헬기를 보내 우리를 구하러 와 달라”고 호소했다.
‘공포의 유람선’이 된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는 2004년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이 건조했다. 소유주는 미국 업체인 프린세스 크루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크루즈사 중 하나다. 프린세스 크루즈 측은 11일 “요코하마항에서 내리지 못한 승객들에게 크루즈 대금을 환불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일본 매체 ‘데일리신초’에 따르면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는 12만톤(t)급 위용을 자랑하는 초대형 여객선”이다. 여객선 높이는 20층 건물에 해당하는 62.48m, 길이는 축구장 3개와 맞먹는 290m다. 일본 발착 크루즈 여행 상품은 2014년부터 시작했다.
당시 “대대적인 개조를 통해 여객선으로는 최초로 대욕장을 신설하면서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그밖에도 다양한 파티가 열리는 아트리움, 스시레스토랑, 수영장, 야외극장, 카지노, 헬스클럽 등 호화시설로 가득하다. 특히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승무원 100여 명이 함께 승선하는 서비스로 일본인 ‘단골고객’이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승객들 대부분은 은퇴한 60~70대 고령자들이다.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는 12만톤(t)급 위용을 자랑하는 초대형 여객선으로 미국 업체인 프린세스 크루즈 소유다. 바다를 바라보며 휴식할 수 있는 온천 대욕장. 사진=프린세스 크루즈 일본 홈페이지
문제의 크루즈 상품은 ‘초봄 동남아 대항해 16일’을 테마로 했다. 1월 20일 요코하마를 출발해 22일 가고시마, 25일 홍콩, 27일 베트남, 31일 대만, 2월 1일 오키나와를 거쳐 4일 오전 요코하마로 귀항하는 일정이었다. 1인당 경비는 객실의 등급에 따라 260만~1480만 원선으로 천차만별이다.
순조롭게 항해 중이던 크루즈선은 1월 25일 홍콩항에서 내린 홍콩인 남성(80)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후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가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의 일본 하선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남은 승객들은 바다 위에서, 그야말로 공포에 갇히게 됐다.
70대 일본인 여성 A 씨는 “요코하마항을 출발한 것이 1월 20일. 그 무렵 코로나19에 대한 심각성이 지금처럼 크게 다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들 여유롭게 크루즈를 즐기다가 난데없이 패닉 상태에 빠졌다”는 얘기다. A 씨는 “방에서 나오지 말라는 안내방송이 계속 흘러나온다”면서 “그나마 우리 방은 발코니와 창문이 있어 나은 편이지만, 창문이 없는 경우 폐쇄된 공간이라 상당히 괴로울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 선상에서는 마스크와 장갑, 손 세정제가 지급되고 있으며, 인터넷은 무료로 사용 가능하다.
‘주간아사히’를 통해 일본인 승무원 B 씨의 채팅 인터뷰도 공개됐다. B 씨는 “선상 체류가 길어지면서 심리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승객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B 씨는 “4일 저녁까지 대부분의 승객들이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고, 극장, 카지노, 가라오케도 영업을 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와 관련, 주간아사히는 “운항회사 프린세스 크루즈도 감염 상황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 같다”며 “더욱이 승무원의 경우 마스크 착용이 6일에서야 이뤄졌기 때문에 승무원을 매개로 감염이 확산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가 “도시형 감염의 축소판”이라고 지적한다. 워싱턴대학의 존 B. 린치 감염병학 교수는 “크루즈가 중국 우한과 비슷한 상황”이라면서 “이러한 격리는 ‘격리된 내부인’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외부인’을 보호하는 조치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일본 정부의 조치에 대한 일침이다.
전문가들은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가 “도시형 감염의 축소판”이라고 지적한다. 선내 격리가 내부인이 아닌 외부인을 보호하는 조치라는 것이다.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가 정박한 요코하마 부두에 몰린 기자들. 사진=AP/연합뉴스
쥰텐도대학 호리 켄 감염제어학 교수는 “고령자 탑승객들이 많은 데다 선상의 환경이 거의 폐쇄된 공간이라 감염자가 한꺼번에 많이 발생하고 있다”고 그 배경을 분석했다. “고령자는 젊은 사람에 비해 면역력이 떨어지며, 당뇨병 같은 지병이 있을 경우 간 기능이 저하되기 때문에 감염 리스크가 더욱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특히 뷔페레스토랑의 경우 집게를 공동으로 사용하고 가까이에서 대화하거나 함께 식사를 한다. 호리 켄 교수는 “이러한 장소에서는 비말(침방울)에 의한 감염증이 퍼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는 객실에 따라 화장실을 공동으로 사용한다든지 좁은 방에서 여러 명이 함께 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바이러스 공동체’로 생활하고 있는 셈이다. 누가 누구에게서 감염됐는지 파악하기도 힘들다.
확진자가 속출하는 상황 속에서도 승객들이 좁은 선내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뭘까. 일본 정부의 이 이상한 대응의 바탕에는 기본적으로 ‘검역법’이라는 법률이 있다. 제대로 검역을 하지 않으면 배에서 착륙할 수 없다는 규정이다. 더구나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는 ‘외국 국적’의 배로 일본 정부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요컨대 “입항 거부를 할 수 있었으나 자국민의 비율을 중시해 대응을 바꾼 것”이라는 얘기다.
이번 사태의 경우 해상의 다양한 권익을 결정하는 유엔해양법조약에 어느 나라가 선박에 대해 책임을 지어야 하는지에 관한 명확한 규칙이 없다. 이에 대해 와카바야시 노부카즈 고베대학 교수는 “시급히 논의를 거쳐 관련 국제규칙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