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 수주로 인한 품질 의혹, 자격미달 업체 특혜 논란도…교통공사 “운행에 큰 지장 없어, 혹시 몰라 교체하는 것”
새로 들여온 2호선 전동차 차륜. 신상 2호선 전동차 차륜에서 박피 현상이 발생했다. 초기엔 단품 불량이라 판단해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교통공사는 결국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바퀴 308개를 전면 교체하기로 했다. 사진=박현광 기자
교통공사가 차륜 박피를 처음 확인한 건 2019년 11월이었다. 운행이 끝난 전동차를 매일 점검하는 일상검사 때 발견했다. 당시 교통공사는 단품 불량으로 판단하고 해당 차륜을 교체했다. 하지만 3개월 사이 2차례에 걸쳐 3개 차륜에서 같은 현상이 추가로 발생했다. 해당 4개 차륜은 같은 시기(로트)에 생산된 것으로 밝혀졌다. 교통공사는 해당 시기의 차륜 생산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그 시기에 생산된 308개를 전면 교체하기로 하고 현재 진행 중이다.
박피는 차륜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현상이다. 주로 강도가 약한 차륜이 차체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을 때나 곡선 구간에서 기관사의 운전이 미숙했을 때에 발생한다. 수년 동안 운행한 전동차에서 가끔 발생하지만 3개월 사이 4개 바퀴에서 발생한 건 이례적이다.
이번 2호선 전동차 차륜에 생긴 박피 현상. 사진=서울교통공사 제공
서울교통공사는 지하철 2호선 노후 전동차 교체 200량 구매 입찰 공고를 내고 2015년 3월 20일 사업자를 선정했다. 사업비 2531억 원의 대어였다. 업계 관계자 대부분의 예상을 깨고 ‘다원시스-로윈’ 컨소시엄이 수주를 따냈다. 우리나라 전동차 시장은 97% 이상 현대로템이 독점하고 있다. 다원시스-로윈 컨소시엄은 2096억 원에 사업을 따냈다. 교통공사는 당시 발주가 대비 435억 원을 절감했다고 설명했다. 1량당 2억 원 안팎을 아낀 셈이다. 동시에 저가 수주에 대한 우려도 뒤따랐다.
교통공사는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박피는 전동차 운행에 큰 지장이 없다. 2년 정도 운행했다면 충분히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혹시 몰라 전면 교체를 하는 것”이라며 “아직 원인을 밝히고 있는 중이지만, 차륜의 성분 문제라기보다는 해당 로트를 만들 때 온도나 작업자의 실수 등 여러 변수로 발생한 문제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교통공사의 설명과 달리 일부 전문가나 내부 관계자는 차륜의 성분을 우려하고 있다. 다원시스가 낮은 단가로 수주했기 때문에 차륜의 성분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문제의 차륜은 중국 업체에서 생산했다. 다원시스는 중국 업체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으로 차륜 생산을 의뢰했다.
안종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철도전문대학원 교수는 “정확한 원인은 밝혀져야 알겠지만 3개월 동안 3차례 박피가 일어났다는 건 상당히 이례적이다. 이 경우 강도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차륜이 차체 하중을 못 이겨 생기는 것”이라며 “국제 표준 승인을 받았더라도 값싼 재료를 찾아 주문 제작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나 내부 관계자의 우려는 다원시스가 전동차 200량을 수주할 때 불거졌던 특혜 의혹에서부터 이어진다. 전동차 부품납품업체였던 다원시스는 전동자 제조업체인 로윈과 컨소시엄을 만들어 사업을 따냈다. 하지만 다원시스와 로윈은 서울교통공사의 기준으로 보면 입찰 자격에 미달하는 업체였다.
서울교통공사는 입찰 공고 1차 사전규격 공개에서 공동계약방식 때 ‘계약목적물과 동등 이상의 물품 또는 유사물품을 제작·납품한 실적이 있는 업체와 객차 제작 실적이 있는 업체가 공동계약방식으로 입찰한 경우’로 자격을 제한했다. 전동차를 제작·납품한 적 없는 다원시스는 자격에 부합하지 못한 셈이다. 교통공사는 2차 사전규격에서 부품납품업체 또한 입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한다.
함께 입찰에 참여한 로윈은 당시 계약성실불이행 사유로 교통공사의 부정당업체로 지정돼 있었다. 2014년 5월 당기순손실 54억여 원, 부채 275억여 원으로 법정관리에 들어간 상태로 단독 입찰이 어려웠다. 결국 입찰 참가 자격에 못 미치는 두 기업이 컨소시엄을 통해 수주를 따낸 셈이다.
경찰은 2016년 11월 다원시스를 압수수색했고, 2017년 4월 전 서울메트로 사장직무대행과 전 서울메트로 차량처장, 다원시스 대표이사와 임원진 등을 업무방해, 제3자 뇌물수수, 제3자 뇌물공여 혐의로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또한 이를 감사한 감사원은 2017년 7월 계약 과정 부당성이 인정되고 서울메트로 간부들의 특혜 제공 혐의가 포착됐다며 서울메트로 사장에게 이들을 해임할 것을 권고했다.
신상 2호선 전동차 차륜에 생긴 박피는 가로 세로 각각 17mm에 깊이는 2~4mm로 파악됐다. 박피 원인은 차륜 자체의 강도 문제이거나 곡선 구간에서 운전 미숙일 가능성이 크다. 사진=서울교통공사 제공
감사원 보고서에 따르면 다원시스에 합병되기 전 로윈이 제작 납품한 7호선 전동차 48량의 고장률은 다른 5~8호선 전동차 1560량과 비교할 때 2013년 20배, 2014년 14배, 2015년 10배에 이르는 등 고장이 잦아 안전관리 측면에서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 서울도시철도는 로윈이 납품한 7호선 전동차 운행률을 다른 전동차와 비교해 71.9% 수준으로 낮춰서 운행하기도 했다.
많은 의혹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2018년 6월 다원시스를 무혐의 불기소 처리했다. 하지만 다원시스가 납품한 2호선 전동차에서 차체 결함이 발견되거나 잔고장이 종종 발생한다고 알려졌다.
2018년 12월엔 전동차 편성 맨 앞 차량과 맨 뒤 차량의 연결기에 결함이 있단 사실이 밝혀졌다. 신형 전동차 연결기는 곡선 구간(최소 곡선반경)에선 서로 연결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연결기는 고장 난 차량을 견인하기 위한 장치다.
교통공사 관계자는 “연결기 각도를 강제로 조정하면 제대로 연결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 화물차에서 많이 쓰는 화물고정용 벨트를 신형 전동차에 싣고 다니도록 조치했다”고 말했다.
우형찬 시의원은 “최저가 입찰에 문제가 있다. 전동차는 국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다. 자재의 단가를 자체 조사해서 하한가를 정해둘 필요가 있다”며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는 사건을 철저히 조사해 원인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안에 대해 다원시스 관계자는 “현재로선 확인해줄 게 없다. 드릴 입장이 없다”고만 답했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