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 적자 전환에 코로나19 악재 겹쳐…미뤄지는 이스타항공 인수도 관건
지난해 12월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에 대기 중인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 여객기. 사진=연합뉴스
#채형석 부회장의 승부수
생활용품 제조업으로 시작해 화학·유통업으로 사세를 넓힌 애경그룹 입장에서 항공업 진출은 도박에 가까웠다. 경험이 없는 데다 막대한 초기 투자 금액과 함께 한동안 적자도 피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자칫 반세기 넘는 기간 일궈 놓은 그룹의 토대까지도 흔들 수 있었다. 애경그룹 안에서도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채형석 부회장은 항공업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았다. 면세점 사업을 정리하면서까지 제주항공에 대한 투자를 이어갔다. 1000억 원이 넘는 투자금이 제주항공에 추가로 투입됐다.
이 같은 채형석 부회장의 결단은 제주항공 출범 6년 만에 풍성한 결실로 이어졌다. 2011년부터 제주항공은 본격적으로 이익을 내기 시작했다. 2015년 코스피에 상장하며 그룹의 또 다른 성장 동력으로 주목을 받았다. 마침 유통업의 부진과 맞물려 제주항공에 대한 투자는 더욱 빛을 발했다.
애경그룹은 내친 김에 지난해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도 출사표를 던졌다. ‘빅2’로 올라설 수 있는 절호의 기회. 하지만 ‘실탄’이 부족했다. 십수년간 쌓은 항공업 경험은 경쟁자의 높은 입찰가 앞에서 효과를 보지 못했다. 결국 아시아나항공 인수자는 애경그룹보다 1조 원가량을 더 써낸 HDC현대산업개발로 결정났다. 2018년 ‘홍대 시대’를 맞이하며 재도약을 선포한 애경그룹의 첫 도전은 싱겁게 마무리됐다.
#제주항공, 적자전환에 비상경영
이런 가운데 제주항공의 지난해 실적마저 곤두박질쳤다. 제주항공은 2019년 연결기준으로 매출 1조 3840억 원과 영업손실 329억 원, 당기순손실 341억 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액은 9.9% 증가했으나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 모두 적자로 돌아섰다. 특히 4분기 실적이 좋지 못했다. 지난해 4분기 실적은 매출액 3094억 원, 영업손실 451억 원, 당기순손실 166억 원을 각각 기록했다.
제주항공의 실적이 악화된 데에는 외부 요인이 컸다. 일본 불매 운동, 홍콩 시위 등으로 단거리 해외여행 수요가 크게 위축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전년 대비 악화된 환율 등이 실적을 끌어내렸다.
지난해 연간 기준으로 2011년 이후 처음으로 영업손실을 기록하면서 제주항공은 위기경영체제로 전환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시작된 올해 전망은 더욱 어둡기 때문이다. 올해 영업적자 폭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것이 제주항공 안팎의 평가다.
이석주 제주항공 대표는 지난 2월 12일 사내메일을 통해 “위기대응을 위해 경영진이 먼저 임금의 30% 이상을 반납할 것”이라며 “기존 승무원 대상으로 진행했던 무급휴가제도를 전 직원 대상으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임금 삭감과 단기 휴직을 통해 인건비 부담이라도 덜겠다는 것이다.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 부회장. 사진=연합뉴스
#이스타항공을 품을 수 있을까?
최근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은 제주항공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이스타항공 인수 건이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이미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어야 하지만 여전히 실사 중이다. 제주항공은 주식매매계약을 올해 1월 말로 미룬 데 이어 최근 2월 내로 체결하겠다고 계획을 다시 한 번 수정했다.
계약이 두 차례나 연기된 것을 두고, 제주항공은 설 연휴 등을 이유로 실사가 늦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스타항공을 인수하겠다는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제주항공의 지난해 대규모 적자와 부진한 업황 등을 이유로 인수 불발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제주항공 관계자는 “이스타항공 인수에 대한 입장은 변한 것이 없다”면서 “인수를 위한 실사를 꼼꼼하게 진행하면서 시간이 걸리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 인수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노선과 비용 효율화 과정을 거친 다음에야 본격적인 인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특히 이스타항공 인수는 단기적으로는 제주항공의 불확실성을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스타항공은 2018년 감사보고서 공시 이후 영업손익을 밝히지 않고 있다.
류재현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최근 업황 부진에 따른 현금 흐름 악화로 인수 시점과 조건에 대한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다”면서 “현재 제주항공의 현금성 자산이 약 1500억 원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외부 자금 조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제주항공의 최대주주는 56.94%의 지분을 확보한 애경그룹 지주사 AK홀딩스. 채형석 부회장은 AK홀딩스의 대표이사이자 최대주주로 AK홀딩스 지분 16.14%를 확보하고 있다. AK홀딩스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주요 계열사의 부진에 따라 반토막이 났다. 채 부회장의 항공에 대한 ‘고집’이 터닝 포인트가 될지 주목된다.
임홍규 기자 bent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