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CD 업황 악화 속 OLED 투자로 재무부담 커져…LG디스플레이 “하반기 OLED 투자 마무리, 판매 증가 기대”
국내 3대 신용평가사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일제히 LG디스플레이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사진=연합뉴스
# 국내 3대 신용평가사, 일제히 신용등급 하향 조정
올해 들어 금융투자업계는 신평사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최근 신평사가 기업들의 지난해 실적을 신용등급 평가에 빠르게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상 3월 말 기업들의 결산 실적이 발표되고 2분기부터 신용등급 조정이 이뤄졌지만 올해는 선제적으로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국내 3대 신평사가 올해 신용등급 전망이 긍정적이라고 내다본 업종이 단 하나도 없었던 데다, 지난해 일부 업종 간판 대기업들의 실적이 크게 악화된 곳이 많아 ‘등급 하락 도미노’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이 가운데 LG디스플레이가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올해 첫 신용등급 강등 대상 회사로, 3대 신용평가사가 일제히 한 단계씩 낮췄다. 한국신용평가와 한국기업평가는 지난 2월 18일 LG디스플레이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을 ‘AA-’에서 ‘A+’으로 하향조정했다고 밝혔다. 한신평은 등급전망을 ‘부정적’으로, 한기평은 ‘안정적’으로 설정했다. 앞서 나이스신용평가도 같은달 10일 LG디스플레이 신용등급을 ‘AA-(부정적)’에서 ‘A+’로 내렸다. 등급전망은 ‘부정적’을 유지했다.
LG디스플레이의 신용등급은 1년도 안되는 사이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다. 2019년 초만 해도 LG디스플레이는 ‘AA’ 등급을 꾸준히 유지해왔다. 그러나 같은해 2분기 3대 신평사는 일제히 신용등급을 ‘AA-’로 낮췄고, 올해 한 단계 더 떨어뜨렸다. AA급 회사의 신용등급이 1년 사이 2단계나 떨어진 건 2015년 대우조선해양 이후 처음이다.
신용등급과 등급전망은 기업의 2년 이내 방향성을 가리킨다. LG디스플레이가 처한 위기가 일시적인 현상은 아니라는 것이 신평사들의 판단이다. 이들은 등급 하향의 근거로 LG디스플레이의 수익성 악화와 고정비 부담, 차입금 부담 확대 등을 들었다. 향후 1~2년 내 LG디스플레이의 수익성은 개선되기 어렵고 재무부담은 지속될 것이란 설명이다.
#OLED 전환 투자, 차입금 늘었는데 대규모 적자 겹쳐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당기순손실 2조 8720억 원, 영업손실 1조 3590억 원을 기록했다. 회사 설립 이후 처음으로 3조 원에 육박하는 순손실과 조 단위 영업손실을 냈다. 주력으로 삼던 LCD 사업이 중국 업체들의 공습으로 흔들린 것이 치명타가 됐다. 국가 차원의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업체들이 생산을 크게 늘렸고, 이에 따라 가격은 시장 예상보다 큰 폭으로 떨어졌다. LCD 가격은 아직 바닥이 아니라는 것이 시장의 평가. 중국 업체들은 올해 하반기에 10.5세대 LCD 추가 라인을 가동할 방침이다.
LG디스플레이는 애물단지로 전락한 LCD 사업에서 단계적으로 철수하고 OLED를 주력으로 내세우는 대응책을 꺼내들었다. 그러나 2017년 이후 OLED 투자를 늘리면서 순차입금이 2019년 말 10조 원까지 급증했다. 전년 대비 약 4조 원이 늘었다. LCD 업황 악화로 벌어들이는 돈은 급격히 크게 줄었는데 OLED 투자와 생산을 위한 고정비 등이 크게 늘어났고, 적자로 인해 자금 조달을 외부 차입에 의존하면서 재무부담이 커졌다. 부채비율은 2018년 122.9%에서 2019년 184.9%로 늘었다. 25.8%였던 차입금 의존도는 37.9%로 크게 올랐다.
OLED 중심의 사업 구조 전환을 위한 대규모 투자는 올해도 계속 이어진다. LG디스플레이가 OLED로 유의미한 실적을 낼 수 있는 건 빨라도 올해 하반기부터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OLED 사업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LCD 사업 수익성이 뒷받침되면 숨통이 트일 수 있지만 현재 중국 업체들의 공세를 보면 이는 기대하기 어렵다. 한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최근 LG디스플레이가 세계 대형 OLED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가지고 수익을 내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총매출에 견줘 비중이 높진 않다”며 “OLED로 수익성이 개선되기에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고, 그동안 지출과 영업적자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3대 신용평가사는 신용등급 추가 하향 여지를 남겼다. 한신평 관계자는 “경쟁 심화로 인해 수익성이 하락하고 내부 현금 창출력이 낮아져 연결 재무제표 기준 영업이익률이 0% 미만이면서 순차입금 의존도가 35%를 초과하는 상황이 이어질 경우 신용등급을 추가로 하향 조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LG디스플레이 파주공장 전경 사진=LG디스플레이
#보릿고개 접어든 LG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의 신용등급이 두 차례나 떨어지면서 회사채에 더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등 자금조달 비용은 커질 전망이다.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LG디스플레이는 이미 A+보다 낮은 등급인 A0급 금리로 거래되고 있다. 등급 전망에 ‘부정적’ 꼬리표가 붙은 것도 타격이 크다. 기관 투자자들은 ‘부정적’ 등급 전망의 회사채 투자에는 엄격한 기준을 두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올해 만기 회사채 4100억 원을 갚아야 한다. 회사 보유 현금으로 상환할 방침이다. 다만 내년에는 상환해야 할 회사채가 5000억 원에 이른다. 수익성이 악화되는 과정에서 OLED 관련 투자를 비롯한 대규모 자금 지출이 계속 발생하고 있는 만큼 부담이 크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9월 한상범 부회장이 자진 사퇴하면서 대표이사를 교체했다. LG그룹에서 정기 인사 전에, 최고 경영진이 스스로 물러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한상범 부회장 자리는 정호영 사장이 채웠다. 그동안 한상범 부회장은 그룹 내에서 기술통으로 정호영 사장은 재무통으로 꼽혀왔다. 이후 LCD⟶OLED 전환과 맞물려 회사 창립 이래 최대 규모의 구조조정이 단행됐다. 이를 두고 당시 재계에선 LG디스플레이가 재무 위기 돌파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금융투자 업계에선 LG디스플레이가 보릿고개에 접어들었다고 보고 있다. 사업과 체질을 전환하는 과정에서 부침이 크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 상황이 지속되면 LG디스플레이 지분 37.9%를 보유한 최대주주 LG전자(AA0, 안정적)의 신용등급에도 영향이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2019년 LG전자의 당기순이익은 LG디스플레이의 실적 악화로 지분법 이익이 줄어들면서 2018년보다 87.8% 급감했다.
이에 대해 LG디스플레이 한 관계자는 “올해 하반기에는 OLED 제품 판매가 크게 늘어나고, 동시에 OLED 투자는 마무리된다. 설비투자 비용의 경우 2019년과 비교해 절반 정도 줄어들게 될 것”이라며 “차입금도 올해 추가로 늘어날 것으로 보진 않는다”라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