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가수, 초기 아이돌그룹 멤버, 개그맨도 당해…“피해 맞지만 이름 거론 원치 않아”
2019년 12월 정가은이 전 남편 김 아무개 씨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사기죄로 강남경찰서에 고소했다. 사진은 이미지컷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무관하다. 사진=박은숙 기자
복수의 피해자들 주장도 김 씨가 정가은의 통장과 친분이 있는 강 아무개 씨 통장을 이용해 3~4년에 걸쳐서 피해자들과 돈을 거래해 왔다고 한다. 한 피해자는 “김 씨가 정가은의 본명인 백라희 명의 계좌로 돈을 받았다. 정가은 실명 계좌인 만큼 의심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여러 피해자의 증언을 통해 정리한 김 씨의 사기 방식은 이랬다. 김 씨는 자동차 공장을 확보한 뒤 사고 난 슈퍼카 등 고급 해외 차량을 저렴한 가격에 매입한다. 이를 자신의 공장에서 저렴한 인건비로 고치고 매입가에 일정액의 마진을 붙여 판매한다. 그런데 이때 김 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여러 대의 슈퍼카를 매입할 돈이 없으니 A 차량을 인수하는 데 돈을 빌려주면 팔고 난 뒤 일정 비율로 나누겠다’고 제안한다.
문제는 이 제안을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에게 했다는 것이다. A 차량을 매입할 때 1억 원이 든다면 똑같은 제안을 10명에게 해 10억 원을 모은 후, 투자받은 금액의 일부를 10명에게 수익이라면서 다시 나눠준다. 이 과정을 반복하며 투자금이 어느 정도 쌓이자 김 씨는 잠적했다. 전형적인 폰지 사기 방식이다.
여기에 걸려든 사람은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다. 정가은 명의 통장만으로 132억 원 이상 편취했는데 또 다른 거래 계좌인 강 씨 명의의 통장까지 따진다면 피해 규모는 더 커질 전망이다. 현재 피해자들 중 일부는 고소도 포기하고 손놓고 있는 상황이다. 또 다른 피해자 B 씨는 “김 씨가 현재 미국으로 출국했다고 들었다. 미국에서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데 당장 고소한다고 바뀌는 것도 없고 힘이 빠져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중”이라며 허탈해했다.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김 씨와 20년 이상 된 오랜 친구도 있었다. 오랜 지인들 가운데에는 김 씨가 도주하기 직전 한 ‘정말 힘들다’는 말에 전 재산에 가까운 돈을 내어준 경우도 있었다. 이들은 김 씨가 ‘이럴 줄은 몰랐다’고 입을 모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유는 김 씨가 이미 2008년경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던 사기 전과자였기 때문이다. 5년형을 살았던 김 씨는 주변에 ‘감옥이 얼마나 힘든지 아냐. 두 번은 못 갈 곳이다. 이제는 손 털고 정말 깨끗하게 살겠다’라고 늘 말했다고 한다.
이런 말에 속아 넘어간 사람 중에는 유명 연예인도 있었다. 정가은과 별개로 김 씨는 슈퍼카를 취급하면서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유명 연예인들이 많았다. 이들에게도 적극적으로 사기 행각을 벌였다고 알려졌다.
폰지 사기를 다룬 영화 ‘마스터’의 한 장면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유명 가수 C 씨는 김 씨와 매우 오랜 인연을 이어왔다고 알려졌다. C 씨와 김 씨 모두하고 친분이 있는 한 슈퍼카 업계 관계자는 “C 씨도 이번에 사기를 당했다”고 귀띔했다. 피해액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략 3억 원에서 5억 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C 씨는 자신 얘기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주변에 당부했다는 말도 전해진다.
초기 아이돌 그룹 멤버 D 씨도 피해자다. D 씨는 2008년 김 씨가 사기 및 기타 혐의로 5년형을 선고받았을 때 거의 전 재산을 다 날렸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D 씨 측도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피해를 본 것은 맞지만 기사화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개그맨 E 씨의 피해는 이들과는 결이 다르다. 김 씨는 E 씨에게 약 3억 원 상당의 E 씨의 슈퍼카를 판매해주겠다고 제안했다. E 씨는 김 씨가 슈퍼카를 매입하고, 수리하고, 판매하는 일을 하는 만큼 믿고 차를 맡겼다. 그런데 E 씨는 끝내 자신의 슈퍼카 판매 금액을 받을 수 없었다고 한다.
피해를 입은 연예인들이 기사화를 극구 피하는 건 피해액이 이미 확정된 상태에서 그나마 이름이라도 덜 오르내렸으면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김 씨와 20년 이상 알고 지낸 한 친구는 “김 씨는 출국하기 몇 달 전부터는 돈을 받아낼 수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 받아냈다. 피해자들이 너무 많은 만큼 혹시 김 씨의 행적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수사기관에 제보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