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종교는 무얼 먹고 자랄까? 한혜연의 ‘애총’ 주동근의 ‘아도나이’ 등 ‘이 시국’에 탐독해볼 만
어린 아이를 둔 부모 입장에서 어딜 데리고 나가기도 겁이 나는 마당인데, 이쯤 되니 병에 관한 걱정도 걱정이지만 사태를 작정하고 여기까지 끌고 오다시피 한 어느 종교 집단의 모습에 실로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사이비 종교를 중요 소재로 삼은 만화를 몇 편 소개해 본다. 이참에 독자 여러분들도 만화를 찾아 읽으며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못해 좀 쑤시는 마음을 달래 봄이 어떨지.
#애총(1~4권 완결, 씨네21북스)
만화가 한혜연의 2009년 발표작 ‘애총’은 데뷔 이후 꾸준히 독특한 미스터리 장르 만화들을 그려 온 작가 특유의 짜임새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품은 1936년 사이비 종교인 백백교가 일으킨 어린이 집단 학살 사건과 1976년 서울에서 남매의 불장난으로 일어난 화재 사건, 그리고 2008년 한 타운하우스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등 서로 다른 시기에 일어났던 사건들과 인물을 다층적으로 엮어 들어간다.
사람들이 왜 ‘사이비’에 빠지는지 연구했다는 한혜연 작가의 만화 ‘애총’ 표지.
그 후로도 30여 년이 흘러, 순덕과 동주는 건설회사 사장과 그 비서가 되어 옛 Y 읍, 지금 Y 시가 된 곳에 타운하우스를 짓는다. 그리고 그 타운하우스에서 잔혹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일은 누군가 임산부의 배를 갈라 아기를 꺼내어 갔다는 점이다. 이 범상치 않은 사건의 진상을 추적해 들어가는 형사의 시선과 범인의 정체를 좇는 게 작품의 주요 뼈대인데, 막상 이 작품이 주는 오싹함은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의 특성에 충실한 지점만이 전부는 아니다.
1976년의 화재사고에서 아빠는 불속에서 둘 중 하나만 데리고 나온다. 알고 보니 남동생 동민의 옷을 입은 누나 동주였음을 알게 되자 아빠는 왜 동민이가 아닌 너냐고 묻는다. 1936년 백백교의 학살 사건에서 흙에 파묻힌 아이들 가운데에는 구덩이 위에서 기도를 올리던 엄마에게 “말 잘 들을게요” 울부짖던 딸도 있었다. 2008년의 타운하우스 살인사건의 원인은 바로 층간소음이었다.
작품은 그 속에서 드러나는 폭력이 실재했던 사이비 종교 백백교의 교주만큼 구제 못할 악인들의 악당 짓으로만 발현되는 것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사람들이 왜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가를 연구했다는 작가의 말은, 지금 시기에 특히나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아도나이(주동근, 네이버 웹툰 연재 중)
‘아도나이’는 ‘지금 우리 학교는’ 등으로 네이버 웹툰에서 잔혹한 만화의 정수를 보여준 바 있는 주동근 작가의 신작이다.
‘아도나이’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꿈틀대는 어두운 욕망의 단면을 보여준다.
막상 잠입해 들어간 외계인 숭상 종교는 겉으로 볼 때엔 허무맹랑하다 못해 우스꽝스러워 보이기까지 하고, 구성원들은 어딘지 시정잡배 같은 수준이며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를 이용한 포교 영상은 어딘지 극우 사이트 관심종자들의 놀이 같은 인상마저 준다. 하지만 작품의 회차가 거듭될수록 앙천회가 보이는 조악함은 오히려 컬트적으로 다가온다.
구성원 가운데 완전히 정신줄 놓은 것처럼 보이는 인물이 있는데 이 자가 장난이라는 이름으로 벌이는 수작의 정도가 점차 강해진다. 잠입 취재는 갈수록 위험해진다.
‘애총’이 실제 있었던 사이비 종교를 스릴러 전개의 발단으로 삼았다면 ‘아도나이’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발달한 현대 시점에 창궐하는 사이비 종교가 인터넷 커뮤니티 문화 같은 작태로 관심을 그러모으면 어떤 모습일까를 보여준다. 사이비 종교의 틀을 띠고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꿈틀대는 어두운 욕망들의 반영으로 보이기도 한다.
#본격 한중일 세계사 – 2권 태평천국 라이징, 4권 태평천국 다운폴(굽시니스트, 위즈덤하우스 간, 저스툰 연재)
한국사를 제대로 관찰하기 위해선 한중일을 둘러싼 동양사를 알아야 한다는 취지로 시작한 굽시니스트의 ‘본격 한중일 세계사’는 단행본 두 번째 권과 네 번째 권에 해당하는 분량을 청나라 말기인 1851년부터 14년에 걸쳐 중국을 휩쓸었던 태평천국 운동에 할애했다.
굽시니스트의 ‘본격 한중일 세계사’ 2권과 4권은 중국의 태평천국운동을 다루고 있다.
‘본격 한중일 세계사 2권’은 신의 아들을 자처하는 홍수전을 중심으로 세상을 정화할 역사적 사명을 자임한 이들이 모여 나라를 세울 만큼 세력을 불렸던 태평천국이 내부 분열과 쿠데타로 급속히 무너지기 시작한 모습과 이후 청나라까지를 굽시니스트 특유의 재기발랄한 감각으로 해설해내고 있다.
반봉건 반외세를 내세운 데 이어 망가져 가는 청나라 말기 크리스트교 식의 평등사상과 사회주의적 국가관을 내세워 민초들의 반응을 폭넓게 끌어냈다는 평가도 있기는 하나, 태평천국이 세력을 확장시키고 또 스스로 권력에 취해가는 모습은 사이비 종교가 보여주는 전형적인 면모였다. 평가가 어떻게 갈리든, 또 그 원인에 청나라 권력층의 대책 없는 행태가 한몫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태평천국이 일으킨 내전과 충돌로 말미암아 중국은 2000만~3000만 명에 달하는 인원이 ‘실제로’ 목숨을 잃었다.
만화는 이와 같은 역사에서 함께 읽어낼 만한 부분을 끊임없이 제시하고 있어 공부에도 도움이 되지만, 한편으로는 사이비 종교가 과연 무엇을 먹고 자라나는지 되새기게 한다.
만화칼럼니스트 iam@seochanhw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