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 스니커즈 높은 수요에 미국 리셀 플랫폼 ‘스탁엑스’ 폭발적 성장…스타와 협업한 신발 투자가 가장 안전
실물자산 하면 으레 떠오르는 품목으로는 부동산을 포함해 미술품, 자동차, 금, 명품 시계 등이 있다. 그런데 요즘 일부 Z세대들 사이에서는 기존의 이런 투자 대신 색다른 투자에 관심을 기울이는 경우가 늘고 있다. 바로 현대미술 시장과 더불어 가장 수익성이 높은 중고시장으로 평가받고 있는 길거리 패션이다. 이를테면 한정판 스니커즈나 ‘슈프림’ 같은 것이다. 근래 들어 길거리 패션 전문 리셀(재판매) 플랫폼인 ‘스탁엑스(StockX)’가 주목받고 있는 이유도 이런 까닭에서다. 최근 독일 시사주간 ‘포쿠스’는 리셀 투자 세계에 대해 소개하면서 앞으로 이런 추세라면 ‘스탁엑스’가 길거리 패션계의 ‘소더비’가 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스타트업인 ‘스탁엑스’는 지난해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 수십억 달러의 가치를 인정 받으면서 유니콘 기업으로 떠올랐다.
유튜브 채널에서 수백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리옹 살리제비치(27)는 길거리에서 만난 젊은이들의 값비싼 옷과 소품들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취재하고 있는 유튜버다. 최근 길거리에서 만난 10대 소년인 맥시(14)는 영상 인터뷰에서 자신이 걸치고 있는 의상과 소품에 대해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소년은 손목에 롤렉스 시계를 차고 있었고, 휴대폰 케이스는 루이비통이었으며, 발렌시아가 스니커즈를 신고 있었다. 모두 합해 어림잡아 1만 6500유로(약 2200만 원)을 몸에 걸치고 있는 셈이었다.
이 어린 소년은 어디서 이런 많은 돈이 생긴 걸까. 이에 대해 맥시는 “부모님이 주셨어요. 그리고 할아버지도요”라고 대답했다.
오늘날 10대들과 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면, 내집마련 적금보다는 스니커즈를 비롯한 길거리 패션 아이템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고 ‘포쿠스’는 지적했다. 과거에는 영리한 젊은이들이 주식을 사모았다면 지금은 스니커즈에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스니커즈야말로 떠오르는 차세대 투자처다.
현재 이 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주인공들은 맥시 같은 청소년들이다. 이는 Z세대인 미국 남성의 60%가 ‘스탁엑스’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사실 놀랄 일도 아니다. 왜냐하면 비싼 스니커즈에 대한 엄청난 수요는 차별화, 우월감, 사냥 본능 사이 어딘가에 놓여 있는 욕망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스니커즈 왕자’라 불리는 벤자민 카펠루쉬닉(20). 스니커즈 리셀러로 이미 10대 때 백만장자가 됐다. 사진=인스타그램
이런 욕망은 특히 한정판 스니커즈를 둘러싸고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모든 사람들이 인기 있는 신발을 손에 넣기 위해 상점 앞에서 밤을 새워 줄을 설 수는 없기 때문에 주요 브랜드의 한정판 스니커즈를 중심으로 수십억 달러 규모의 리셀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스니커즈 거래의 중심에는 5년 전 디트로이트에서 설립된 미국의 경매 플랫폼인 ‘스탁엑스’가 있다. 스타트업인 ‘스탁엑스’는 지난해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 수십억 달러의 가치를 인정 받으면서 유니콘 기업으로 떠올랐다. 현재 이 플랫폼에서는 스니커즈, 시계, 수집카드 등 모든 물품들이 인기순위, 브랜드, 희귀성에 따라 가치가 매겨져 재판매되고 있다.
가능한 최고가에 물건을 팔기 위해서는 판매하려는 스니커즈가 일반 상점에서는 더는 구입할 수 없는 모델이어야 한다. 여기에 더해 한정판 컬렉션일 경우, 그리고 착용하지 않은 상태 그대로 포장되어 있을 경우 가격은 더욱 치솟는다. 지난해 ‘스탁엑스’에서 거래된 스니커즈의 가치는 총 10억 유로(약 1조 원)였다. ‘스탁엑스’가 신발 투자자들을 위한 ‘이베이’라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닌 것이다.
‘스탁엑스’가 리셀러들 사이에서 인정받고 있는 이유는 사실 또 있다. 리셀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다름아닌 신뢰다. 다시 말해 개인 거래를 할 경우 정품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지만, ‘스탁엑스’의 경우에는 이 점을 보완해서 따로 정품 검수팀을 설치했다.
사기꾼과 위조품 판매자가 활동하지 못하도록 ‘스탁엑스’는 현재 전세계 여섯 곳에서 정품인증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여기서는 직원들이 배송 전에 진품 여부 및 상품 상태를 꼼꼼히 검수한다. 그리고 이렇게 정품으로 인증받은 제품에는 초록색의 정품인증 마크를 부착한다. 신발 한 켤레에 2만 5000유로(약 3400만 원)를 지불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진품을 샀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현재 스타트업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전환하는 시점에 서있는 ‘스탁엑스’는 지난해 새로운 CEO(최고경영자)를 영입하면서 도약을 예고했다. 지난여름부터 ‘스탁엑스’의 CEO를 맡고 있는 스콧 커틀러(50)는 과거 뉴욕증권거래소와 ‘이베이’에서 일했던 인물로, 이 분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베테랑이다. 현재 그의 임무는 전세계 스니커즈 시장을 장악하는 것 그 이상이다. 커틀러는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기술 회사들 가운데 하나다”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다만 ‘스탁엑스’의 고객층에 대해서는 “스니커즈 수집광 커뮤니티는 완전히 새로운 분야는 아니다”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가령 1985년 농구 스타 마이클 조던이 처음 선보인 스니커즈를 중심으로 이런 리셀 시장은 이미 형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스니커즈 붐이 보다 확고하게 대중을 사로잡기 시작한 데는 어떤 이유가 있었다. 바로 인터넷 중고거래 시장의 활성화 덕분이다. 과거에는 보물을 찾으려면 중고품 가게 창고를 일일이 뒤지고 돌아다녀야 했지만 오늘날에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는 인터넷 게시판이나 페이스북 그룹, ‘스탁엑스’와 같은 리셀 판매 사이트에서 보다 쉽게 물건을 교환할 수 있게 됐다.
이런 이유에서 현재 젊은 미국인들 사이에서 ‘스탁엑스’는 가장 많이 사용되는 스마트폰 앱 가운데 하나다. 베이비붐 세대들에게 롤렉스가 있었다면, Z세대에게는 ‘오프화이트’의 스니커즈가 있다. 또한 ‘스탁엑스’에 등록된 회원들은 이곳에서 이뤄지는 모든 거래의 가격을 조회할 수 있다. 마치 주식처럼 지금까지 판매된 신발의 가격을 추적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어떤 스니커즈가 투자 가치가 있는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
스탁엑스에서 수익성이 좋은 ‘조던 오프화이트’(위)와 ‘아디다스 이지’.
그럼 어떤 스니커즈가 가장 수익성이 좋을까. 이에 대해 커틀러는 스타들과 협업해서 만든 신발이 가장 안전한 투자처라고 말한다. 가령 래퍼인 트래비스 스콧과 나이키가 협업한 컬렉션의 경우에는 독일에서 특히 인기가 높다. 이 밖에 카니예 웨스트가 디자인한 아디다스의 ‘이지(Yeezy)’의 경우에도 좋은 투자처가 될 수 있다. 독일의 경우, 지난 1월 베스트셀러 상위 10위 가운데 다섯 개가 전부 ‘이지’였을 정도다.
스니커즈 붐으로 이득을 보고 있기는 제조업체들도 마찬가지다. 2018년 나이키는 스니커즈 판매로만 24억 달러(약 29조 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경쟁사인 아디다스의 경우에는 150억 달러(약 18조 원)의 매출을 올렸다.
‘스탁엑스’의 다음 목표는 유럽과 아시아 시장이다. 특히 중국 시장은 지난 10년 동안 패션 업계 전반에 있어 반드시 진출해야 하는 시장이 됐다. 중국은 지난해 미국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패션 시장으로 떠올랐으며, 중국에서도 리셀 제품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커틀러는 중국 시장이 특히 ‘스탁엑스’에 적합하다고 말하면서 “중국의 성장하는 중산층은 자신이 구입하는 제품의 정품 여부에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점에서 ‘스탁엑스’와 스니커즈 투자자들의 전망은 밝은 편이다. 미국의 투자은행인 ‘코웬앤코’에 따르면, 2025년까지 스니커즈 리셀 시장은 60억 달러(약 7조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모두가 낙관적이진 않다. 이런 열정에 제동을 걸고 있는 보수적인 금융 전문가들도 있다.
투자 컨설턴트인 안티에 하게드룬-베르그만은 “장기적으로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스니커즈 시장은 패션 산업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다시 말해 트렌드는 위험 요소가 다분하기 때문에 기복이 심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에서 베르그만은 고객들에게 금과 같은 원자재에 대한 투자를 더 권하고 있는 편이다.
또한 스니커즈 투자에 대해 베르그만은 “실제적인 의미의 금융 투자는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스니커즈의 가치가 일정하지 않다는 점을 단점으로 꼽았다. 그는 “아마 경제 위기가 발생한다면 스니커즈 투자자들은 운동화만 쳐다보면서 배를 곯고 있을 것이다”라고 꼬집었다.
다만 빠른 시일 안에 부를 축적하려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시도해볼 만하다. 베르그만은 “스니커즈로 실험을 해볼 수는 있다. 하지만 스니커즈에만 투자해선 안된다. 다양한 곳에 분산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조언했다.
‘포쿠스’는 만약 운동화 투자가 언젠가 큰 버블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고 해도 다른 실패한 투자 모델들처럼 극적인 결과를 낳지는 않을 것이라고 점쳤다. 왜냐하면 아무리 희귀한 스니커즈라고 해도 여전히 신발은 신발이기 때문이다. 즉, 여의치 않으면 직접 신을 수 있기 때문에 전혀 쓸모없지는 않다는 것이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3500만 원짜리 나이키? 투자가치가 있는 스니커즈들 현재 약 2만 6000유로(약3500만 원)에 거래되고 있는 나이키 ‘에어맥 백투더퓨처’. ‘스탁엑스’가 소개한 현재 가장 인기를 얻고 있는 스니커즈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나이키 ‘에어맥 백투더퓨처’. 현재 약 2만 6000유로(약 3500만 원)에 거래되고 있다. $ 래퍼인 포스트 말론이 디자인한 한정판 ‘크록스 바브드 와이어’. 현재 거래 가격은 700유로(약 95만 원) 정도다. $ 독일 ‘스탁엑스’의 베스트셀링 모델인 아디다스의 ZX 8000 OG 아쿠아(2020). 가격은 약 100유로(약 13만 원)다. $ 삭스 슈즈 형태인 발렌시아가의 ‘스피드 트레이너’. 현재 약 849유로(약 116만 원)에 거래되고 있다. $ 아디다스 ‘이지부스트 350 V2 예힐’의 가격은 현재 약 290유로(약 40만 원)다. $ 1985년 출시된 ‘에어조던 I’는 현재 4만 6208유로(약 6000만 원) 정도에 구입할 수 있다. $ ‘조던 5 레트로 오프화이트’는 741유로(약 100만 원) 정도에 거래되고 있다. $ 나이키의 ‘에어 모어 업템포’는 약 230유로(약 31만 원)에 거래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