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 파견 직원 30명 해고 통보…코로나19로 경영악화? 현행법 위반 가능성 높아
2009년 네이처리퍼블릭이 창립됐고 서울 명동에 1호점을 오픈했다. 사진=연합뉴스
#‘카톡! OO님이 해고되셨습니다’
3월 16일 네이처리퍼블릭의 아웃소싱 업체 인사이드디에프는 면세점에 파견된 직원들에게 ‘해고 메시지’를 보냈다. 국내 면세점 33곳에 파견된 직원 90명 중 30명이 대상자에 이름을 올렸다. 이 메시지를 받은 직원 중에는 2009년 네이처리퍼블릭 창립 때부터 정운호 전 대표와 서울 명동 1호점에서 함께 일한 점장까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직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 네이처리퍼블릭 면세점 직원은 “아웃소싱 업체 대표가 정운호 전 대표의 지시라고 말하면서 네이처리퍼블릭 동화면세점 점장에게 해고 통지를 카카오톡 메시지로 보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면세점 업계는 코로나19 영향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이번 해고의 배경으로 면세업계의 경영 환경 악화가 꼽힌다. 지난 2월 28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면세점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월 셋째 주에는 14.3%, 2월 셋째 주엔 40.4% 감소했다. 갈수록 상황이 안 좋아지는 셈이다. 국내 면세점 ‘빅3’ 롯데·신라·신세계는 영업 단축 및 휴점에 나서기도 했다.
다른 네이처리퍼블릭 면세점 직원은 “매출이 급격하게 줄어든 건 맞지만, 면세점은 최소 2.5명이 근무해야 하는데 몇 년을 다닌 직원을 해고하고 아르바이트를 고용해 점장 혼자서 운영하라고 지시가 내려오니 황당하다”며 “회사가 무급휴가·연차소진 등을 강제하더라도 직원들끼리 서로 독려하며 참고 참았는데 너무 억울한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매출 영향이 크지 않아도 해고의 칼날을 맞은 곳도 있다. 또 다른 네이처리퍼블릭 면세점 직원은 “여긴 코로나19 영향으로 매출이 감소하지 않았다. 그런데 3월 무급휴가 들어간 지 얼마 안 돼서 퇴사 대상자가 발표됐다”며 “매출이 높을 때 더 준 것도 없었는데 힘들다고 직원을 소모품처럼 여기는 회사에 분한 마음이 생긴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런 가운데 네이처리퍼블릭이 2억 원 상당의 손 소독제를 기부하면서 직원들의 실망감이 극에 달한 상황이다.
#‘코로나19’ 핑계로 부당해고...근로기준법 위반
네이처리퍼블릭의 이번 해고는 현행법 위반 가능성이 높다. 해고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노동자에게 책임이 있는 ‘징계해고’와 경영상 어려움을 이유로 한 ‘정리해고’다. 회사가 경영상 어려움을 이유로 합법적으로 직원을 해고하려면 근로기준법에 정한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해당 요건은 △해고할 수밖에 없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할 것 △합리적이고 공정한 해고 기준을 정하고 이에 따라 그 대상자를 선정할 것 △해고를 피하기 위한 방법과 해고 기준에 대해서는 노동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의 과반수를 대표하는 자)에게 해고를 하려는 날의 50일 전까지 통보하고 성실히 협의할 것 △일정한 규모 이상의 인원을 해고하려면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신고할 것 등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이는 네이처리퍼블릭뿐만 아니라 파견업체도 준수해야 하는 사항이다. 직장갑질119 측은 “파견업체가 네이처리퍼블릭 요청만으로 직원을 해고하는 것은 부당해고가 명백하다”며 “코로나19를 이유로 해고당했다면 정규직·계약직·파견직 상관없이 근로계약을 맺은 상대를 대상으로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할 수 있고 해고 기간 동안 임금 상당액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부당해고를 당한 직원들은 실업급여도 못 받는 실정이다. 직원들 소속이 수시로 본사, 파견업체 등으로 바뀌면서 실제 근속연수가 반영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네이처리퍼블릭 면세점 한 직원은 “부당해고를 당하고 고용노동부에 실업급여를 신청했는데 지난해 5월 파견업체가 바뀌기도 했지만, 회사가 제 동의도 없이 저를 직원에서 아르바이트로 변경해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출소한 정운호 전 대표 입김 있었나
면세점은 정운호 전 대표가 특별히 애착을 보였던 사업부문이다. 이 때문에 이번 해고를 정 전 대표의 의지로 해석하는 직원들이 적지 않다. 2016년 ‘정운호 게이트’가 터지면서 신영자 전 롯데복지재단 이사장이 롯데면세점 내 네이처리퍼블릭 매장 위치를 옮기고 유지해주는 대가로 수억 원을 정 전 대표에게 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지난해 10월 신영자 전 이사장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과 배임수재 등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추징금 11억 9700여만 원을 최종 확정받았다.
정운호 전 대표는 3월 27일 네이처리퍼블릭 정기 주주총회에서 경영복귀가 점쳐진다. 곽석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와 정숙진 이사회 의장(정 전 대표의 부인)의 임기 만료일은 2019년 12월 27일인데, 그 후에도 네이처리퍼블릭은 재선임 혹은 후임자를 결정하지 않았다.
앞서 정운호 전 대표는 출소 전부터 경영복귀를 위해 움직였다. 지난해 7월 정 전 대표는 수감 중에도 세계프라임과 오성씨앤씨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정 전 대표는 △세계프라임개발 △에스케이월드 △쿠지코스메틱 △네이처리퍼블릭온라인판매 등까지 합치면 네이처리퍼블릭 계열사 6곳의 사내이사에 이름을 올린 상황이다. 정 전 대표는 정운호 게이트로 대표이사 직에서 물러났지만, 가족을 통해 회사를 실질적으로 경영해왔다. 네이처리퍼블릭이 지난해 11월 공개한 공시 자료에 따르면 정 전 대표는 네이처리퍼블릭 지분 75.37%를 보유한 최대주주다(관련기사 [단독] 정운호 12월 초 조용히 출소…네이처리퍼블릭 상장 가나).
이와 대해 네이처리퍼블릭 관계자는 “네이처리퍼블릭은 오랜 경기 침체와 함께 코로나19로 인한 경영상의 어려움이 더해짐에 따라 불가피하게 면세점 파견 직원의 인원 감축을 결정하게 됐다”면서 “직원의 동의 하에 연차 사용, 무급 휴직, 권고 사직 등의 순으로 본사 및 인력 관리 업체인 인사이드디에프 간 협의를 거쳐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