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매각 및 대출금 총 240억 원…라임 사태 촉발한 ‘기업 사냥꾼’들 연루 정황
앞서 제기된 의혹과 달리 향군 상조회원들의 돈인 예치금과 같은 현금은 빠져나가지 않았다. 다만 보람상조와 향군 상조회는 부동산 매각과 대출이 일어난 시기에 예치금 인출 시도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보람상조에 향군 상조회를 매각한 컨소시엄 일부 관계자들은 최근 대규모 환매 중단 사태가 불거진 라임 펀드 사건의 핵심 인물들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고, 라임 펀드 정상화를 위해 향군 상조회 자금을 노리고 인수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보람상조의 향군 상조회 인수는 이번이 두 번째 시도다. 향군 상조회는 지난해 12월 매물로 나와 공개입찰이 진행됐는데, 당시 코스닥 상장업체 등으로 구성된 ‘재향군인회상조회인수컨소시엄’이 시장 예상보다 높은 가격(320억 원)을 써내면서 향군 상조회를 인수했다. 그런데 컨소시엄은 3개월도 채 되지 않아 다시 향군 상조회를 매물로 내놨고 보람상조는 380억 원에 컨소시엄과 인수 계약을 맺었다. 보람상조는 지난 3월 4일 법인등기와 새 대표 취임 및 사내이사 등재 등을 마쳤다.
#사라진 부동산 매각대금과 담보대출금
그런데 일요신문 취재결과 보람상조는 인수 직후 실사 과정에서 향군 상조회 자산과 관련해 석연치 않은 두 건의 거래를 발견한 것으로 확인됐다. 부동산 매각과 자산을 담보로 한 거액의 대출인데, 실사 직전까지 보람상조는 물론 재향군인회와 향군 상조회 내부에서 모르고 있던 거래들이었다. 더 큰 문제는 향군 상조회 부동산이 매각됐음에도 대금이 상조회 계좌로 들어오지 않았고 대출금 역시 마찬가지였다는 점이었다.
매각된 부동산은 경기도에 위치한 ‘여주학소원장례식장’이다. 부동산등기부를 보면, 보람상조가 법인등기를 하기 불과 일주일 전인 지난 2월 25일 90억 원에 매각됐다. 중소기업 A 사가 장례식장을 매입했다. 컨소시엄과 A 사의 부동산 매매 계약 목적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법인등기부에 따르면 A 사는 장례식장이나 부동산 사업 경험이 없다. 학소원장례식장 매입 이후부터 3월 20일 현재까지 장례식장, 부동산 등 관련 사업 목적을 추가하지 않고 있다.
지난 2월 25일 매각된 여주학소원장례식장이 A 사에 매각됐다. 사진=홈페이지 캡처
재향군인회와 향군 상조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여주장례식장은 향군 상조회가 2018년 4월 (구)학소원 오학 전문 장례식장을 매입한 뒤 직접 새 단장해 2019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었다. 매각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여주학소원장례식장 매각 이후도 문제다. 우선 매각 대금이 향군 상조회 계좌에 입금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향군 상조회는 최근 수원지방법원 여주지청에 ‘가장매매’로 인한 소유권이전등기말소청구권을 주장하며 가처분 신청을 했고, 지난 3월 16일 법원은 향군 상조회 주장을 받아들여 가처분 결정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가장매매’는 학소원장례식장 거래가 허위였다는 것을 가리킨다. 법원 결정에 따라 여주학소원장례식장은 현재 매매와 증여 등 일체의 처분행위가 금지돼 있다.
이에 대해 A사 측은 “당사는 향군 상조회와 자산매매 계약서를 직접 작성했고 그 계약서도 가지고 있으며, 보람상조 요청에 의해 확신시켜준 바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향군 상조회 관계자는 “자산 매각 당시 경영진은 인수자인 컨소시엄으로 당시 경영진의 판단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향군 상조회가 보람상조에 매각됐다는 것도 기사를 보고 알 정도였다”고 말했다.
특히 부동산 매각과 비슷한 시기 컨소시엄은 향군 상조회 자산을 담보로 150억 원의 대출을 받았다. 이 대출금 역시 향군 상조회가 아닌 다른 곳으로 흘러들어갔다는 것이 보람상조 등의 주장이다. 보람상조와 향군 상조회 관계자 등은 “장례식장 매각 대금과 상조회 자산을 담보로 받은 대출금은 A 사 계좌로 들어간 것으로 보고 확인 중에 있다”고 말했다.
일요신문은 A 사에 부동산 매입 경위와 대금, 대출금과 관련한 의혹에 대해 여러 차례 확인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되지 않았다. 지난 3월 18일 A 사를 방문했으나 회사 관계자는 “장례식장 매입이나 대출금은 처음 듣는 이야기라 답변이 어렵다”라고 말했다. 다만 A 사 대표이사는 지난 23일 기자에게 메일을 보내 컨소시엄과의 부동산 매매 거래 등에 대한 입장 대신 “향군 상조회로부터 어떠한 형태로라도 90억 원의 금전 거래를 한 사실이 없다”고만 밝혔다. 이어 “향군 상조회 자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사실도 없다”고 덧붙였다. 부동산 매각과 대출을 받은 주체인 컨소시엄 측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컨소시엄으로부터 향군 상조회를 인수한 보람상조는 3월 초 실사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거래 정황을 파악했다. 사진=박은숙 기자
#인수 당사자들, 소송전 예고
지난해 향군 상조회를 컨소시엄에 매각했던 재향군인회와 최근 다시 인수 계약을 맺은 보람상조, 컨소시엄 3곳은 최근 일제히 강도 높은 소송전을 예고하고 있다. 재향군인회는 지난 3월 17일 컨소시엄을 상대로 계약 위반을 했다며 서울남부지방법원에 소송을 냈다. 지난해 컨소시엄에 향군 상조회를 매각하면서 3년간 재매각 금지 조항을 계약에 포함했는데, 이를 어겼다는 주장이다.
재향군인회 관계자는 “인수 후 현금 자산을 불투명하게 활용하거나 빼내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조항 위반은 명백하고 이에 따른 책임을 묻기 위해 소송을 냈다”면서 “지난해 경영진이 컨소시엄으로 바뀐 만큼 부동산 매각 및 상조회 재매각 등 경영 판단에 대해선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보람상조는 추가 실사를 진행 중이다. 금융기관 등을 통해 향군 상조회 선수금과 계약금 등에 문제가 더 있는지 확인도 하고 있다. 향후 컨소시엄을 상대로 법적 조치도 검토 중이다. 인수 계약을 하는 과정에서 협의 없이 향군 상조회 자산을 매각하거나 부채를 만든 점, 재매각 금지 조항이 있었다는 것을 알리지 않은 점 등은 ‘사기’라는 입장이다.
컨소시엄은 보람상조 임원과 향군 상조회 내부 관계자 등을 상대로 지난 3월 18일 무단침입 및 자료유출 혐의로 서울북부지방검찰청에 고발장을 접수했다. 보람상조가 계약금은 냈지만 법인등기가 완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컨소시엄에 알리지 않고 실사 일정을 이유로 사무실에 들어와 자료를 가져갔다는 주장이다.
#상조회 인수 뒤에 비친 ‘기업 사냥꾼’의 그림자
향군 상조회를 둘러싼 의혹과 석연치 않은 정황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관계는 수사기관과 법원에서 가려지게 됐다. 보람상조와 향군 상조회는 이번 일에 대해 어떠한 예단이나 판단 등을 경계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단순한 상조업체들 간의 갈등만으로 볼 일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규모 환매 중단 사태가 벌어진 라임 펀드 사건의 핵심 인물들과 향군 상조회 인수 컨소시엄 일부 관계자들이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서다.
라임 사태의 주요 인물은 라임 펀드를 설계하고 운용을 주도한 이종필 전 라임 부사장, ‘전주’ 노릇을 한 김 아무개 회장, 1조 원의 라임 펀드를 판매한 장 아무개 전 대신증권 반포센터장(PB)이다. 이들은 ‘기업사냥꾼’ 의혹을 받고 있다. 투자자들로부터 받은 펀드 투자금으로 회사를 인수하고, 그 회사 자산을 활용해 내부 자금을 빼돌리거나 주가조작 등을 통해 기업 가치를 부풀려 되파는 방식으로 차익을 내는 방식이다. 최근 향군 상조회에도 이들이 같은 방식으로 접근했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실제 지난해 향군 상조회 인수 과정에 이들이 깊게 연루된 정황이 발견됐다. 일요신문이 김정철 법무법인 우리 변호사를 통해 입수한 녹취록을 요약하면, 장 전 대신증권 반포센터장은 지난해 12월 19일 한 투자자와 만나 “회장님(김 회장)이 향군 상조회를 인수해 라임 정상화 자금으로 활용할 것”이라는 취지로 말한다. 장 전 센터장은 또 “재향군인회는 알짜 사업이 많다. 로비가 됐다. 내일 우선 협상 대상자 결과가 나온다. 재향군인회상조회 컨소시엄으로 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재향군인회상조회인수컨소시엄은 향군 상조회 공개입찰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장 전 대신증권 반포센터장은 지난해 12월 19일 8억 원을 투자한 투자자와의 대화에서 “김 회장이 향군 상조회를 인수해 라임 정상화 자금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법무법인 우리 김정철 변호사 제공
김 회장은 스타모빌리티(구 인터불스)의 실질적 주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법인등기부등본과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을 종합하면, 김 회장이 투자를 하거나 인수합병 등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한 법인들의 전현직 임원들 일부가 향군 상조회 인수 컨소시엄 임원을 맡았다. 스타모빌리티의 전 사내이사가 컨소시엄 대표이사를 맡고, 스타모빌리티 전 대표 딸이 향군 상조회 이사를 맡은 게 대표적이다. 김 회장과 투자로 연관된 회사 2곳과 재향군인회상조회인수컨소시엄이 서울 목동의 같은 건물 같은 층에 나란히 있었다는 점도 확인됐다.
녹취록에 등장한 컨소시엄의 향군 상조회 인수처럼, 상조회 자금 활용과 관련해 실제 실행에 옮겨진 다른 정황들도 포착되고 있다. 스타모빌리티는 지난 3월 18일 회사 자금 517억 원을 횡령했다며 김 회장을 서울 남부지방검찰청에 고소했다. 특히 스타모빌리티는 “김 회장이 횡령한 자금을 향군 상조회 인수 자금으로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하고 있다. 앞서 장 전 센터장이 녹취록에서 “김 회장이 향군 상조회를 인수할 것”이라고 말한 대목과 일치한다.
컨소시엄은 앞서의 석연치 않은 향군 상조회 부동산 매각 및 대출에 더해, 상조회 예치금 인출까지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역시 보람상조에 매각하기 직전 시도됐는데, 예치금을 보관하고 있던 은행이 함부로 인출할 수 없다며 거절하면서 무산된 것으로 전해진다. 역시 녹취록에서 라임 정상화를 위해 향군 상조회 자금을 활용한다는 말과 일치한다. 다만 해당 은행 지점 관계자는 일요신문에 “고객과 관련한 내용은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김 회장과 이종필 라임 전 부사장은 현재 도피 중이다. 라임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은 최근 특별검거팀을 구성하고 이들의 소재를 파악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지난 3월 19일엔 장 전 센터장의 집과 휴대전화 등을 압수수색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