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금리 시대 오며 과거 확정금리 상품 이자 부담… 케이블TV 투자 손실도 재무건전성 악영향
코로나19 여파로 생명보험업계 전반이 어려운 가운데 유독 한화생명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저성장·저출산·고령화 탓에 국내 보험업계가 성장 정체기를 맞았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와 ‘제로금리’가 현실화하면서 생보업계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고정금리 상품을 주로 판매하는 생보사 특성상 낮은 금리는 실적에 큰 타격이다. 보험사는 고객의 보험료로 주식과 채권 등을 운용하는데, 금리가 인하되면 운용수익률이 그만큼 하락하기 때문이다(관련기사 수익 떨어지고 영업 막히고…‘보험’ 없는 보험업계의 눈물).
이 같은 상황임을 감안해도 한화생명의 부진은 그 정도가 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삼성생명, 교보생명과 함께 생보업계 빅3로 분류되는 한화생명의 실적 부진은 다른 두 곳과 비교해 두드러진다. 시장점유율 1위 삼성생명의 지난해 연결기준 당기순이익은 1조 516억 원으로 2018년 대비 39% 감소했다. 그러나 점유율 2위 한화생명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586억 원으로 2018년 대비 86%나 감소했다. 교보생명은 6426억 원으로 오히려 13% 증가했다. 보험사의 자본건전성을 나타내는 지표인 지급여력비율(RBC)도 빅3 중 한화생명만 200%대다. 생명보호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RBC는 삼성생명 363%, 교보생명 372%, 한화생명 225%로 나타났다.
생보업계에서는 한화생명이 유독 어려움을 겪는 까닭은 확정금리상품 비중이 너무 높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한화생명의 확정금리상품 비중은 생보업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화생명 상품을 판매하는 한 보험설계사는 “수년 전에 7%대 고정금리 상품이 판매됐는데, 초저금리 시대를 맞으면서 고객들에게 지급해야 할 이자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생보업계 관계자는 “수년 전 한화생명이 업계 2위 자리를 탈환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고금리 상품을 내놓으면서 매출을 올렸다”고 말했다.
이 밖에 케이블TV ‘딜라이브’ 투자로 지난해 수백억 원의 손실을 입으면서 재무건전성에 빨간불이 들어온 것도 한화생명을 좋지 않게 평가하는 이유다.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지난 3월 16일 한화생명의 신용등급 하향을 검토하겠다는 입장까지 내놓았다.
이러한 현실은 주가에 그대로 반영됐다.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한 지난 설 연휴 직후인 1월 28일 2110원이던 한화생명 주가는 두 달가량 지난 3월 18일 1000원 이하인 970원으로 떨어졌고 지난 24일까지 1000원을 넘기지 못했다. 올해 한화생명 주가 최저점은 지난 23일 895원으로, 이는 1년 전인 지난해 3월 22일 4070원과 비교해 78% 감소한 것이다.
주가와 기업의 순자산 가치를 의미하는 주가순자산비율(PBR)은 지난 25일 기준 삼성생명이 0.23배, 미래에셋생명이 0.17배, 동양생명이 0.11배였으나 한화생명은 0.06배로 타사의 절반 혹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1’ 이하의 PBR은 주가가 장부상 순자산가치에 못 미친다고 해석된다. 즉, 한화생명의 주가가 자본 대비 저평가받고 있다는 의미다.
주가 하락이 계속되자 한화생명의 주요 임원들은 장내 매수를 통해 주가 부양을 시도했다. 우선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가 지난해 12월 19일 30만 주를 장내 매수했다. 하지만 효과는 없었다. 올해 3월에는 여승주 한화생명 대표이사와 김현철 전무 등이 자사주 매입에 나섰지만 역시 소용없었다.
한화생명의 주가는 지난 25일 1275원, 26일 1510원으로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안심할 수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생보업계 다른 관계자는 “채권금리가 상승 추세로 접어들면서 보험주들이 같이 상승한 것”이라며 “이는 단기적인 현상일 뿐”이라고 분석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