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프 지분 공격적 매입 뒤 경영 참여 선언…인수시 금융 계열사 통해 제도 금융권 사냥 가능성
코로나19 확산으로 어수선하던 3월 초, 김광호 회장이 이끄는 KHI는 본격적으로 케이프 경영권 참여를 선언했다. 케이프는 지난 2일 ‘소송 등의 제기, 신청(경영권 분쟁)’ 공시를 통해 KHI 외 1명이 정관 일부 개정의 건과 이사, 감사 보수 한도 승인의 건 등 의안을 상정했다고 밝혔다.
케이프 지분을 10% 넘게 확보하고 있던 KHI는 경영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을 경영참여 이유로 들었다. 김종호 케이프 회장이 회사 실적이 부진함에도 성과급을 포함한 과도한 보수를 챙기고 있다는 것을 대표적인 사례로 제시했다. 오너 일가를 직접 겨냥한 것이다.
최근 김광호 회장이 운영하는 투자회사 KHI가 코스닥 상장사 케이프 지분을 공격적으로 사들이면서 ‘적대적 M&A’ 논란이 불거졌다. 사진=케이프 홈페이지 캡처
김광호 회장 측은 이후 곧바로 추가매집에 들어갔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이 지분 100%를 각각 가진 KHI와 화신통상을 통해 케이프 지분을 3월 중순께 장내 매수해 보유 지분을 13.31%에서 14.37%로 늘렸다. 사실 KHI는 이미 한 달여 전부터 케이프 지분을 공격적으로 사들이고 있었다. 2월에는 포스코-KB조선업투자조합으로부터 케이프 전환사채권 40억 원 어치를 인수하고, 장내에서도 60억 원 어치 주식을 매수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케이프는 대주주 내부 갈등설까지 나돌면서 막장 드라마급 경영권 분쟁이 진행되고 있다. 김종호 회장은 케이프 설립자인 고 백충기 전 회장의 장녀 백선영 씨의 남편, 즉 첫째 사위다. 김종호 회장 부부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고 백 전 회장이 일선에서 물러나는 과정에서 지분을 물려받았다.
그런데 백 전 회장에게는 딸이 한 명 더 있다. 김광호 회장이 등장하기 전까지 케이프의 2대주주였던 백수영 씨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회사 지분 8.15%를 보유 중이다. 백수영 씨는 언니 백선영 씨와 동일하게 12.63%(85만 8600주)씩을 상속받았다. 맏사위 김종호 회장이 회사를 성장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가장 많은 20.99%(142만 7280주)를 증여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 과정에서 동생 백수영 씨가 형부인 김종호 회장이 아닌 김광호 회장과 손을 잡았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 만약 백수영 씨의 지분 8.15%를 합하면 김광호 회장 측 지분은 22.52%로 늘어나 김종호 회장 측 지분 21.69%를 넘게 된다. 여기에 백 씨 측은 장내 매수 형식으로 케이프 지분을 계속 늘리는 중이어서 향후 경영권 분쟁에서 큰 변수가 될 전망이다.
사실 여기까지는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흔한 기업 M&A 스토리다. 그런데 금융권이 긴장하는 이유는 김광호 회장이 노리는 먹잇감은 선박엔진부품 제조업체인 케이프가 아니라 케이프투자증권 등 금융 계열사들 아니냐는 의심 때문이다.
케이프는 케이프인베스트먼트라는 자회사를 통해 30개가 넘는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사모펀드, 벤처캐피털, 증권사 등 투자회사들이다. 특히 과거 LIG증권을 인수해 사명을 바꾼 케이프투자증권은 SK증권과의 합병까지 시도하는 등 만만찮은 내공을 자랑한다.
금융권은 만약 케이프 인수에 성공할 경우 김광호 회장이 이들 계열사를 통해 본격적으로 제도 금융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M&A 귀재’로 이름난 인물인 만큼 금융 계열사들의 자금력을 활용해 금융권 사냥에 나설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개인 자금만 수천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김광호 회장이 금융 계열사들의 자금력까지 등에 업을 경우 예상을 뛰어넘는 행보에 나설 수 있다는 두려움이다.
이미 케이프 계열사인 케이프투자증권이 또 다른 경영권 분쟁의 시발점으로 꼽힌다. 케이프투자증권이 부국증권 지분 100만 주(9.64%)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국증권 최대주주는 김중건 회장으로 회사 지분율은 12% 수준이다. 동생인 김중광 씨와 지분을 합쳐도 24% 수준으로 안정권이라고 볼 수는 없다. 만약 김광호 회장이 부국증권에 손을 뻗으면 이 회사 계열사로 여의도에서 ‘자산운용 명가’로 꼽히는 유리자산운용이 사정권에 들게 될 것이라는 것이 금융권의 시각이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과거에도 김석기 전 중앙종금 회장과 이영두 전 그린화재 부회장 등 M&A를 통해 막대한 돈을 번 인물들이 금융사를 인수했던 사례가 있다”면서 “이들은 모두 제도권에 들어와 더 큰 판을 벌여보겠다는 야심을 품었던 인물들이다. 문제는 사람 욕심은 끝이 없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영복 언론인
샐러리맨 출신 김광호 회장의 M&A 성공신화 김광호 회장은 대기업 샐러리맨 출신이면서 M&A를 통해 천문학적 재산을 축적한 인물이다. 1953년 생으로 선린인터넷고등학교(옛 선린상고)와 서강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37세의 젊은 나이에 두산그룹 해외지사장에 올랐던 그는 1989년 돌연 사표를 던지고 IT기업인 웨스텍코리아를 설립했다. 10년 뒤 벤처광풍이 불던 1999년 웨스텍코리아를 상장시키면서 큰돈을 벌었다. 그는 이 돈으로 윌트론이라는 투자회사를 설립해 본격적으로 M&A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후 2001년에 모나리자, 2005년에 쌍용C&B, 엘칸토 등을 인수하며 재산을 늘려갔다. 2009년에는 웨스텍코리아를 예림당에, 2011년에는 엘칸토를 이랜드에 팔았다. 2013년에는 모나리자와 쌍용C&B를 모건스탠리PE에 성공적으로 매각해 2000억 원대 차익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에는 한국피자헛을 인수했다. |